"현대차 역차별 당했다"..'동맹' 외치던 바이든, 선거 앞 돌변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기차를 사는 사람에게는 7500달러(약 1040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입법 기념 행사에서 미국산 전기차를 구입하는 자국민의 혜택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미국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는 현대자동차그룹 등 타국 기업에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안중에도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일성으로 ‘America is back(미국이 돌아왔다)’을 외쳤다. 국제사회의 리더로 규범과 질서를 수호하고, 전임 트럼프 행정부 당시 단절됐던 동맹국 및 우방과 관계 복원에 나서겠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물가 상승과 지지율 하락이 맞물린 정치·경제적 위기 상황에 결국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꺼내 들었다.
공급망 경쟁 속 바이든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입법 기념 행사 연설을 통해 “법 통과로 미국산 전기차의 세계 시장 비중이 3배로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등 최근 연일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를 띄우고 있다. 이는 “백악관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공감하고 있다”(지난 6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특파원 간담회)는 한국 정부 설명과는 배치되는 행보다.
미국이 시행한 IRA와 반도체·과학법은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 공급망 경쟁에 대비해 자국의 경제안보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명분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건 법안이다. 특히 반도체·과학법은 미국 반도체 산업에 총 527억 달러(약 69조원)을 투자하는 내용과 함께, 세액 공제 등의 형태로 보조금을 지원받은 기업에 대해 향후 10년간 제조시설 확충 등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를 할 수 없도록 가드레일 조항을 뒀다.
이 법안은 지난 7월 공화당 의원 24명의 찬성표를 끌어내며 ‘초당적 법안 통과’란 평가를 받았다.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 역시 경제안보 시대에 미국 바이오 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한 조치다. 사실상 행정부와 의회가 합심해 미국 우선주의적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셈이다.
'프렌드 쇼어링' 실종된 '미국 우선주의'
문제는 이같은 미국 우선주의적 법안과 행정명령이 동맹국인 한국 기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짓기로 한 전기차 공장이 가동되기 전까진 보조금 제외로 인한 피해가 가시화했다.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의 경우 미 제약사 의약품 위탁생산 맞았던 SK바이오사이언스·삼성바이오로직스 등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공급망 경쟁에 맞서 ‘프렌드 쇼어링(동맹·우방 중심 공급망 재편)’을 강조해 왔고, 한국은 그 핵심 파트너로 여겨졌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한 것 역시 공급망 재편 시대의 한·미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양국의 이같은 협력 의지는 공동성명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며 회복력 있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위해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문구로 담겼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에선 ‘지금이 중국의 부상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는 다급함과 시급함이 있는 만큼 미·중 공급망 경쟁에 대처하는 ‘미국 우선주의’ 전략은 사실상 행정부와 의회가 한 몸처럼 지지하는 상황”이라며 “다만 말로는 동맹 규합을 통한 공급망 재편을 원칙으로 앞세우고 실제론 동맹국을 역차별하거나 이용하는 데 대해선 한국 정부 역시 국익 보호 차원에서 강경하게 대응하고 피해 최소화 전략을 고심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중간선거 끝나도 '미국 우선주의' 계속될 것"
바이든 행정부의 연이은 미국 우선주의적 정책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의 향수에 젖어 있는 노동자층 등 유권자의 표심을 달래기 위한 정치 공학적 행보이기도 하다. 다만 중간선거 이후 미국은 곧장 2024년 대선 시즌에 돌입하는 데다 미·중 공급망 경쟁 역시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미국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기조는 계속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는 시기인데,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국제사회의 리더로 동맹을 규합하는 온건한 가치 외교 노선보다는 표심과 직결되는 ‘미국 우선주의’ 전략에 무게를 실을 가능성이 크다”며 “중간선거 이후 새 의회가 초당적으로 합의한다면 그 내용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적 법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맹 아닌 국익 관점서 미국과 협의"
관련 사정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전기차와 반도체, 바이오는 공급망 재편 경쟁의 핵심 소재이자 한국 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분야란 점에서 한·미 동맹의 관점이 아닌 국익의 관점에서 미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며 “다만 IRA의 경우 이미 미 의회를 통과한 법안이기 때문에 그 내용 자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고, 제한된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차선책을 마련해 미국 측에 협조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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