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남편, 이 집의 비밀
[김상목 기자]
1_사람에겐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들에서 풀을 뜯는 짐승조차 쉴 곳이 있는데, 로마를 위해 싸우고 죽는 병사들은 공기와 햇빛 말고는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집도 안식처도 없이 처자식과 함께 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중략) 그들은 세상의 주인이라고 불리지만 그들에게는 자기 것이라고 부를 흙 한 덩이도 없습니다!"
이 연설은 기원전 134년, 당시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되어가던 강대국 로마에서 벌어지고 있던 사회현상을 잘 보여준다. 로마의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농지법 개혁을 요구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로마는 최고 권력기관인 원로원 의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대지주들의 토지독점으로 인한 폐해가 극심해지고 있었다. 그라쿠스 형제는 이런 현실을 개탄하며 일정 면적 이상의 토지 소유를 규제하고 자영농을 육성하는 농지법 개혁을 입안했다.
자영농은 곧 로마가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끝내 승리할 수 있게 한 주역인 병역자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산해 무산계층이 된 이들은 징집당할 의무가 사라진다. 즉 병역과 납세의무에서 벗어난 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나버린 것이다. 이런 잉여자원을 다시 시민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다. 지금으로 치면 중산층 시민을 재건해야만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던 티베리우스와 동생 가이우스는 보수층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하지만 로마는 이후 한 세기 동안 외부로는 정복전쟁을, 내부로는 끊이지 않던 내전으로 영원한 전쟁 상태에 처한 끝에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하게 된다. 시민계층이 붕괴된 민주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이다.
20세기 전반의 대작가 잭 런던과 조지 오웰은 각각 실제 빈민굴에서 노숙인으로 생활하며 르포 문학의 정수를 남겼다. 이들이 기록한 도시빈민과 하층 노동자의 생활조건과 주거환경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던 영국의 빈부격차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고발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특히 대도시 빈곤층의 잠자리에 대한 묘사는 한 세기를 뛰어넘어 오늘날 한국의 주거 빈곤 현실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근접성을 발휘할 정도다. 잭 런던의 1902년 르포르타주, <밑바닥 사람들>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자, 내 주장은 이렇다. 하루 일을 끝낸 사람은 최소한 자기 방은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방에서 문을 잠그고 있을 수 있고 자기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야 한다.(중략) 간단히 말하면 세상에서 유일 자기만의 장소, (중략) 그러면 그는 더 나은 시민이 될 것이고 더 나은 일을 할 것이다."
그라쿠스 형제로부터 2천년이 지났음에도 초강대국의 수도에서조차 여전히 빈민들에게 주거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다시 100년이 흘러 세계 10대 경제대국 한복판의 청년세대에게도 주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다.
▲ "홈리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그린나래미디어㈜ |
단란한 가족이 근사한 신축 아파트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것은 착시효과다. 이 가족은 모델하우스 구경을 와서 우리도 이런 데 살아봤으면 하는 표정으로 못내 자리를 떠나고 만다. 이 가족의 구성원, '한결'은 배달대행을 하고 '고운'은 전단지 알바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활 중이다. 한결과 고운에겐 아직 분유를 먹어야 하는 어린 자녀 우림이 있다. 이들 세 식구는 낮에는 각자 떨어져 일하고 밤에 일을 마치고 만나면 트렁크와 캐리어를 끌고 찜질방을 전전한다. 현실에서 젖먹이 아이가 있다면 하다못해 단기 원룸이라도 구해서 생활하겠지만, 본 작품의 연출 방향은 현실 고증에 충실하기보단 극적으로 열악한 등장인물들의 주거환경을 강조하는 설정으로 보인다. 영화의 초반은 이 가족의 팍팍한 일상을 재구성하는 형식을 띈다.
물론 이들이라고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건 아니다. 어렵게 한푼 두푼 돈을 모아 더 이상 찜질방 신세는 면하고자 부동산과 계약해 보증금도 걸어둔 상태다. 최소한 반지하 셋방 정도는 얻으려 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는 사기를 치고 잠적해 버린다. 이들이 들어가 살아야 할 집은 알고 보니 재개발로 인한 철거대상구역이었다. 그 지역 주민들은 보상대책을 요구하며 시위중이지만, 그 풍경은 숟가락 하나 꽂을 방도 없는 처지에서 사기까지 당한 걸 깨달은 고운에겐 아무 감흥도 줄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찜질방에서 잠시 고운이 젖병을 가는 사이 사고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우림이 병원 신세까지 진다. 모아둔 돈 한 푼 없는 한결은 병원비 해결을 위해 돈을 구해야 하는 지경에 처한다. 그렇지만 어려울 때 돈을 빌려본 이들이라면 안다. 형편이 힘들수록 돈 구하기도 더 어렵다는 현실을. 그런 이들은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칠 테다. 사기꾼도 아직 잡히지 않고 아이 병원비 30만 원 구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 어린 부부는 미칠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한결이 고운을 어딘가로 데려간다. 배달하다 친해진 할머니가 한 달간 외국여행을 간 사이 집을 봐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찜질방 전전할 수 없다고 치를 떨던 고운은 이 느닷없는 행운이 낯설지만 당분간 옆 사람 코골이에 신경을 안 써도 되겠다는 사실에 대체로 만족한다. 눈치 보며 잠들지 않아도, 아이 울까봐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너무 조용해서 낯설다고 즐거운 푸념을 할 정도다.
하지만 이 집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결은 고운에게 계속 무엇인가 숨기는 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한사코 2층에는 올라가지 못하게 막으며 수상한 태도를 거듭 드러낸다. 고운에게 거실에 걸려 있는 집주인 할머니의 초상은 사람 좋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계속 꺼림칙하다. 대체 어떤 비밀이 이 집에 감춰진 걸까?
▲ "홈리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그린나래미디어㈜ |
'고딩엄빠'를 주인공으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요즘 화제다. 십대에 아이를 낳은 고등학생들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전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이라면 덜할 텐데 심지어 MBN <고딩엄빠>는 '예능'을 표방한다. 그 때문에 참신한 소재로 음지에 있던 사안을 부각시켜 큰 관심을 얻는 동시에 적지 않은 논란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홈리스>의 두 주인공은 얼핏 보면 딱 해당 방송 출연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어린 나이에 자녀 양육을 책임지면서 겪는 고충과 스트레스가 특히 그렇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시선이 방송 속 어린 부모에게 부정적인 것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도 불편한 시선이 가해질 게 뻔하다. 어쩌다 저 지경이 된 걸까?
한결과 고운은 둘 다 '흙수저'의 전형적 설정이라 할 캐릭터다. 한결에게 서로 연락을 두절하고 지내는 쪽방에 사는 아버지가 유일한 가족이다. 엄마인 고운은 어릴 적 입양 간 집이 6살 때 망해서 자신만 남기고 양부모가 야반도주한 과거가 있다. 아마 둘은 가출해 거리를 전전하다 만났을 테고 동거하다 임신 후 앞뒤 잴 겨를도 없이 아이를 낳았을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하지만 둘은 흔히 세간이 갖는 편견처럼 철없는 십대 부모들은 아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서로 의지해 가며 어떻게든 잘 살고 싶은, 꿈을 잃지 않은 청년들이다. 하지만 영화 속 설정 그대로 이들에겐 급한 도움을 청해볼 가족도, 공적 지원을 알아볼 여력이나 지식도 모두 부재한 상태라는 것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청소년기를 그룹홈이나 보육원에서 최소한의 울타리로 생활하더라도 성년이 되자마자 약간의 정착지원금과 함께 자립을 강요당하는 '보호종료아동' 문제가 근래 다시 사회적으로 조명되고 있지만, <홈리스> 속 한결과 고운에게 제도적 보호는 더 취약한 상태로 묘사된다.
할머니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주인공들은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불길한 기분에 여기 살아도 되나 싶지만 '집'이 선사하는 안도감을 누린 이상 다시 또 찜질방이나 반지하 방은 생각도 하기 싫다. 당당하게 백주대낮에 권리를 주장할 순 없지만 절대로 놓치긴 싫은 대상이 발생한 셈이다. 고운은 자꾸만 할머니의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찬 집 내부구조를 바꾸고 싶어 하고 한결은 이를 막다가 다툼이 발생한다. 좀 더 결단력이 강한 고운은 공간에 대한 집착과 욕망도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결은 뭔가 상황이 자신이 의도했던 것을 초월하기 시작한 걸 깨닫지만 잘못 꿰어진 단추는 되돌릴 수 없다.
아마 이들이 여태까지 흔한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하지 않았던 것은, 지금은 고생하더라도 열심히 살면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겐 자신들이 지긋지긋하게 겪은 유년시절의 전철을 밟게 할 수 없다는 향상심도 작용했을 테다. 하지만 이 집에 들어오기 직전 상황은 그런 희망을 품고 버텨왔던 부부에게는 (마치 잔인한 운명이 조롱이라도 하듯)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사흘 굶으면 옆집 담 넘는다고, 관객은 잔인하게도 한결이 언제 범죄를 저지르고 파멸로 진입할지 재어볼 상황이 거듭 이어진다. 너무 설정 티 난다 할 만큼 제법 연 타석으로 불행이 소용돌이친다. 물론 영화 속 주인공들이 처한 사실상 고립된 상황에선 극단적인 경우가 안 생기라는 법도 없다. 몇 십만 원 빌릴 데 없어 고개를 숙여야 한다. 게다가 생계수단인 (그나마 그것도 사무실 소유인) 스쿠터도 망가진다. 아이는 계속 여기저기 아프다.
그런 지경에서 (비록 석연찮은 사연을 품고 있지만) 처음으로 자신들이 점유하게 된 이 오래된 단독주택은 어느새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조건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닫게 된다. 자기들 같은 사람을 등쳐먹는 사기꾼 가족은 명품을 들고 다니는데 왜 우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림이는 찜질방을 전전해야 한다는 말인가. 세상은 불공평하다! 고운은 분노와 욕망에 휩싸인다. 어차피 가족도 없는 독거노인 할머니의 텅 빈 집에 당장 방 한 칸 절실하던 우리가 들어와 사는 게 사회적으로 봐서도 마땅한 일 아닌가. 그렇게 집을 향한 소유욕에 눈뜨면서 이 부부에겐 명확한 변화가 감지된다. 과연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 "홈리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그린나래미디어㈜ |
<홈리스>가 선보이는 영화 속 세계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모사판인 동시에 그라쿠스 형제가 경고하던 내용의 디스토피아 구현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어쩌면 한반도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정작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온전한 자기 것이라곤 허름한 집 한 채는커녕 단 한 평의 땅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을 통해 수저계급론과 주거난의 세태를 형상화한다. 공적 시스템의 지원이 부족할 때 최후의 보루가 되어왔던 가족 찬스조차 원천적으로 봉쇄된 한결과 고운 가족에게 그저 착하게 살기를 요구하는 건 강요와 기만일 뿐이다. 이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 역할과 의무를 기대하기 위해선 우선 그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고대 로마의 무산계층이나 2020년대의 우림이네나 처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 수 없다면 사회 근간은 유지되기 힘들다. 영화 속에서도 결국 피해를 입는 이들은 오히려 주인공들을 선량한 마음으로 도왔던 이들이란 것은 무척이나 징후적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근접하는 고증보다는 압축된 현실의 상징화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접근법을 취한다. 장르영화 스타일 연출과 약간의 판타지 설정은 주인공들의 불안이 증폭되어가는 묘사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어 감칠맛을 더한다. 아직 얼굴이 그리 익지 않은 주인공 역 배우들은 영화 속 캐릭터와 제법 싱크로가 높다. 실내극에 가까운 작은 이야기이지만 작위적이거나 거친 질감보다는 시대를 풍자한 우화에 가깝게 다가온다.
결국 집이 필요한 이들에게 주어져야 마땅한 삶의 공간이 아니라 재테크 가치가 지상과제로 떠받아들어지는 사회에서 한결과 고운 같은 이들에겐 어떠한 미래도 있을 리 없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들이 지금 누리는 찰나가 영속되지 못함을 알면서도 과연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번민한다. 그 풍경을 접하자니 저절로 안쓰럽고 이 가족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집이 소유가 아니라 점유 혹은 공유의 대상이 된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영화 속에서 아련한 꿈처럼 지나가고 만다. 하지만 왜 그런 꿈은 굳이 공상으로만 그쳐야 하는 걸까?
<작품정보>
홈리스 Homeless
2020|한국|드라마/가족
2022. 9. 15. 개봉|83분|12세 관람가
감독 임승현
주연 전봉석(한결 역), 박정연(고운 역)
출연 신현서(우림 역), 송광자(예분 역), 장준휘(배달사무소 사장 역),
김현정(사회복지사 역)
제작 (주)타이거시네마,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DGC)
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그린나래미디어㈜
2020 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CGV아트하우스상
2021 5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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