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나노 경쟁 속 저가형 반도체의 공급망 역습?(종합)
파운드리 업계 3나노 경쟁 속 저가형 반도체 수요 증가
중국 중심 저가형 반도체 확대..전문가 "우려할 정도 아냐"
[아시아경제 김평화 기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중심으로 3나노미터(㎚, 10억분의 1m) 공정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28㎚ 공정 이상의 저가형 반도체가 초미세 공정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 병목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운드리 주요 사업자가 고부가가치 사업에 집중하는 사이 저가형 반도체 수요 증가가 공급 부족 사태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전망에서다. 중국이 이 같은 상황에서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 평가다.
1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대만에서 열린 TSMC 연례 기술포럼에 참가해 저가형 반도체 부족에 따른 공급망 차질 문제를 짚었다. 웨이저자 CEO는 "50센트(677원)~10달러(1만3531원) 가격대의 저가형 반도체가 6000억달러(811조8600억원) 규모의 세계 반도체 산업을 둔화시킨다"고 강조했다. 초미세 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제조하는 네덜란드 ASML이 장비에 포함하는 10달러짜리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고도 했다.
EUV는 차세대 노광 기술로 반도체 웨이퍼 위에 회로 모양을 새기는 공정에 쓰인다. 회로를 얼마나 미세하게 그리느냐에 따라 반도체 성능이 달라지다 보니 초미세 공정일수록 EUV 장비 사용이 필수다. 해당 EUV 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한 곳이 ASML이다 보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자 간 장비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 유럽 출장길에서 네덜란드를 찾은 주요 배경도 EUV 장비 확보였다. 최근 삼성전자와 TSMC가 3㎚ 공정 시대를 열었지만 저가형 반도체가 발목을 잡은 셈이다.
저가형 반도체로는 차량에 주로 쓰이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과 가전, IT 기기 등 각종 제품에 포함되는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이 있다. 28㎚ 이상 성숙 공정에서 생산되는 데다 제품별 생산 조건이 다르다 보니 수익성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자연히 파운드리 사업자로선 레거시 공정보단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첨단 공정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저가형 반도체 수요는 성장세다. IT 산업 컨설팅 업체인 IBS에 따르면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28㎚ 이상 성숙 공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3분의 2 정도(2020년)다. IBS는 28㎚ 공정 반도체 수요가 2030년까지 281억달러(29조4975억원) 규모로 3배 이상 늘어난다고 봤다. 최근 저가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8인치, 12인치 파운드리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성숙 공정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시장 대내외 영향으로 사이클 변동 차이가 있을 뿐 장기적인 수요는 견조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차량용 MCU 공급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것처럼 또 다른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성숙 공정이 파운드리 주요 사업자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틈새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SMIC 등 중국 파운드리 사업자는 미국 제재로 첨단 EUV 장비 등을 수입하지 못하다 보니 성숙 공정 비중이 높다. 반도체 최대 소비국인 중국 특성상 수요 대응 목적도 있다. IBS는 이 같은 영향으로 중국의 28㎚ 반도체 생산량이 세계 생산량의 15%(2021년)에서 40%(2025년) 비중으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SMIC는 이달 중국 톈진에 75억달러(10조1483억원)를 투자해 성숙 공정 기반의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중 갈등이 악화하는 가운데 중국 중심의 저가형 반도체 공급 확대가 전체 반도체 공급망에 악영향일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영향 정도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밥솥에도 온도 제어를 위해 반도체를 사용하는 만큼 저가형 반도체 수요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때에 따라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며 "다만 중국 비중이 늘어난다고 해도 다른 선진국 생산 비중이 여전히 있는 만큼 위기감까지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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