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변화보다 안정 고집, 과연 히든카드는 있을까

이준목 2022. 9.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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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대비한 9월 A매치에 나설 선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벤투호는 23일 코스타리카와 고양종합운동장에서, 27일엔 카메룬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평가전에 나선다.
ⓒ 연합뉴스
 
9월 A매치 평가전(23일 코스타리카, 27일 카메룬)에 나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벤투호'의 명단이 발표됐다. 이번 2연전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 평가전이기에 사실상 '미리보는 최종엔트리'로 여겨질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벤투 감독은 9월 1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번에도 변화나 경쟁보다는 '안정'에 방점을 찍은 방향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월드컵 본선진출국들은 이번 9월 A매치 평가전을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엔트리 숫자를 대폭 늘려서 마지막까지 경쟁을 유도하거나, 아예 월드컵 출전이 유력한 주전급 선수들은 다수 배제하고 새로운 자원들의 발굴에 초점을 맞춘 팀도 있다.

이에 비하여 벤투 감독은 월드컵 엔트리 숫자에 맞는 26명만 딱 채워서 발탁했고, 새로운 얼굴도 거의 없었다. 벤투 감독도 이번 9월 평가전 명단 중 다수가 월드컵 최종엔트리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변화와 실험에 인색한 벤투 감독의 보수적인 성향을 또 한번 드러낸 대목이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의 윤곽은 거의 드러났다. 벤투호 출범 이후 지역예선을 거치며 꾸준히 중용받았던 선수들 다수가 이번에도 큰 이변없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최전방 공격수 자리는 황의조(올림피아코스)-조규성(전북) 쌍두마차 체제로 굳어졌다. 벤투 감독은 이번에도 두 선수 외에 '제3의 스트라이커' 자원을 아예 후보조차 뽑지 않았다.

가용자원이 가장 풍부하다고 평가받는 2선은, 부동의 에이스이자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필두로 이재성(마인츠)과 황희찬(울버햄튼)이 주전으로 분류되며 벤투 감독의 신임을 얻고 있다. 이들을 뒷받침할 백업 자원으로도 권창훈(김천 상무)-정우영(프라이부르크)과 나상호(서울) 등 익숙한 멤버들이 다시 부름을 받았다. 이 중 손흥민과 황희찬은 유사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도 활용 가능하다는 것을 벤투 감독은 염두에 둔 구성으로 보인다.

반면 그만큼 아쉬운 탈락자들도 2선에서 대거 발생했다. K리그1에서 절정의 골감각을 과시하고 있는 이승우(수원FC)는 지난 동아시안컵에 이어 이번에도 벤투 감독의 외면을 받았다. 역시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김대원(강원), 지역예선에서 중용받았던 송민규(전북 현대), 유럽무대 진출 이후 오히려 출전기회가 줄어든 이동경(한자 로스토크)과 이동준(헤르타 베를린) 등이 모두 낙마하며 사실상 월드컵 출전이 멀어졌다. 다만 6월 A매치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엄원상(울산 현대)은 부상 때문에 제외된 사례이기에 향후 재발탁의 여지는 남아있다.

중원에서는 벤투 감독의 플랜A인 정우영(알 사드)-황인범(올림피아코스)이 건재한 가운데, 백승호(전북)도 변함없이 이름을 올렸다. 벤투호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를 해결해줄 자원으로 손준호(산둥 타이산)가 가세한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손준호는 그동안 벤투 감독이 여러 차례 발탁을 추진했으나 대표팀 소집 때마다 부상이나 소속팀의 반대로 무산됐던 사례이기에 이번이 월드컵 출전을 위한 마지막 기회다. 2·3선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김진규(전북)와 고승범(김천) 등은 지난 동아시안컵에서의 부진과 손준호의 복귀 등이 맞물리며 9월 명단에서 제외됐다.

골키퍼 자리는 벤투호 부동의 투톱인 김승규(알 샤밥)-조현우(울산) 체제에 세 번째 옵션으로는 송범근(전북)이 낙점을 받았다. 이변이 없는 한 골키퍼 3인은 이대로 최종 엔트리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포백 수비진은 센터백 김민재(나폴리)-김영권(울산), 왼쪽 풀백 김진수(전북)가 주전 자리를 굳히고 있다. 센터백 백업 자원으로는 조유민(대전)과 권경원(감바 오사카)이 이름을 올리며 경쟁자였던 박지수(김천)와 정승현(울산) 등이 탈락했다. 김진수의 백업인 홍철(대구) 역시 벤투호 단골 멤버다.

수비진에서 주전 자리가 아직 불확실한 것은 오른쪽 풀백이다. 김문환(전북), 김태환(울산), 윤종규(서울)가 이름을 올렸지만, 이들 중 누구도 아직 대표팀에서는 확실한 주전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벤투 감독의 꾸준한 부름을 받았던 베테랑 이용(수원FC) 등은 이적 이후에도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9월 명단에서도 외면받아 월드컵 출전이 멀어지고 있다.

변화가 거의 없었던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 그나마 새로운 활력소로 꼽힌 것은 두 명의 '영건'이었다. 이강인(마요르카)과 양현준(강원FC), 2000년대생 출신의 두 유망주가 벤투호에 깜짝 발탁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2001년생 이강인은 지난해 3월 한일전 이후 1년 6개월 만에 A대표팀으로 복귀했다. 최근 소속팀에서 1골 3도움으로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쌓으며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이강인은 현재 벤투호에 부족한 창조성과 플레이메이킹을 더해줄 멤버로 기대되고 있다.

2002년생으로 막내인 양현준(강원FC)은 K리그 2년차로 이번 시즌 8골 4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축구의 차세대 윙어로 주목받고 있는 자원이다. 지난 7월 토트넘 홋스퍼와의 친선경기에서 K리그 올스타로 출전하여 과감한 돌파로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해외 무대에서 관심까지 받고 있는 양현준은 이번이 생애 최초의 국가대표팀 발탁이다.

다만 이 두 선수가 실제로 벤투호에서 얼마나 중용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부분의 축구 미디어에서 이강인을 발탁하라고 벤투 감독을 압박하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 달리, 이강인은 전술적으로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선수다. 대표적인 문제가 수비가담과 활동량이다. 이강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던 U20 대표팀이나 소속팀 마요르카는 그를 전술의 핵심으로 삼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었지만, 대표팀에서는 이강인 위주로 전술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강인의 주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나 투톱에서의 세컨드 스트라이커다.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이강인보다 화려함은 떨어져도 더 다재다능하고 이타적인 이재성-권창훈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대표팀은 월드컵같은 국제대회에서는 팀밸런스상 투톱을 구사하기가 사실상 어려운데다가, 설사 가동한다고 해도 손흥민이나 황희찬이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애매한 포지션 문제로 인하여 이강인은 벤투호에서는 선발보다는 '조커' 자원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벤투 감독이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보고 이강인의 전술적 활용법에 대한 힌트를 찾아냈을지가 관건이다.

또한 양현준은 월드컵 최종엔트리를 앞둔 상황에서 현재보다는 미래 자원으로 꼽힌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만일 엄원상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어도 양현준이 이번에 대표팀에 발탁되었을지는 미지수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워낙 뛰어나 발탁할 명분이 충분했던 이강인을 제외하면 벤투 감독이 기존의 구도에서 변화를 준 부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9월 A매치에서의 경기운영이나 최종엔트리 역시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벤투 감독이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난 대표팀의 약점과 한계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답을 전혀 내놓지 못하면서 여전히 고집만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소속팀에서 장기간 골침묵에 시달리고 있는 손흥민이나, 부동의 중앙수비수 김민재같은 핵심 선수들이 부상이나 부진에 빠졌을 때 벤투호에게는 과연 '플랜B'가 있는지 의문이다.

소속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만 중용하며 '경쟁'의 가치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이승우, 주민규, 김대원 등은 몇 년째 K리그에서 꾸준한 성적을 보여줘도 아예 기회조차 얻지못하는 반면, 권창훈, 나상호, 김문환, 윤종규, 백승호 등 최근 활약상에 의문부호가 붙는 선수들이 변함없이 신뢰를 얻으면서 선수선발의 기준과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벤투 감독은 6월 남미 4연전이나 7월 동아시안컵 도요타 참사(한일전)처럼, 수준 높은 상대를 만났을 때도 '빌드업과 점유율 위주의 축구'가 통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을 심어주지 못했다.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는 한국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위이며 가나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최상의 전력으로 만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호들을 상대로, 매번 '뻔한 선수-뻔한 전술'로만 일관하는 벤투호의 경직성에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9월 평가전은 월드컵을 앞두고 최정예 멤버가 모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벤투호는 지난 동아시안컵 졸전의 분위기 전환은 물론이고, 월드컵을 대비한 또다른 비장의 '히든카드'를 준비하는 기회로 삼아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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