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정부·국회 응답할 때
낳은 참사인데 11년 지나도록
제대로된 배·보상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 고통의 나날
사참위, 활동 마감하며 발간한
보고서 통해 기업·정부 책임
지적하고 8개 권고안 제시
정부와 국회, 무고한 피해자들
억울함 달래줄 지원책 마련에
이제라도 최선 다해야 할 것
‘우리 가족 건강을 지켜줍니다’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무해’ 등의 광고를 믿고 사용한 살균제가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으니 피해자들의 억울함, 원통함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려면 최소한 피해 배·보상이라도 제대로 이뤄져야 할 텐데 대다수에겐 거리가 멀다.
지난달 31일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한 지 꼭 11년 되는 날이다. 강산이 변할 시간이 흘렀는데도 피해자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는 것은 제조·유통 기업과 정부의 탓이 크다. 기업들은 책임을 회피하며 피해자들은 길고 험난한 소송의 길로 내몰았고, 정부는 기업과 소비자들 사이의 문제라며 사태 해결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2017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시행됐고 두 차례 개정을 통해 피해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자 입증 책임을 완화했지만 피해 인정자의 88.3%인 3842명이 여전히 기업으로부터 배·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지난 4월 조정안을 마련했지만 책임이 큰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이 분담액이 과도하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해 조정을 통한 피해 구제에 제동이 걸렸다. 배상 책임을 져야 할 기업들이 배짱을 부리고 피해자들은 불매운동에나 호소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나. ‘기업하기 정말 좋은 나라’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참위는 3년 6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지난 6월 발표한 최종보고서에서 참사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기업들은 살균제가 유해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안전성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제품을 출시했고 사건이 불거진 후에는 증거 인멸·은닉, 흡입 독성 시험결과 은폐 등 진상규명을 저해했다고 밝혔다. 정부 기관들은 위해성 감시 실패와 초기 부실 대응으로 참사를 키웠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유해성 심사를 미루고 관련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 유해성 물질이 살균제 원료로 사용되는 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제품 안전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고 한국소비자원의 제품 위해 감시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2006년부터 급성 간질성 폐 질환이 집단 발병했는데도 역학조사를 제때 실시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통 기업들의 표시·광고법 위반 사건을 부실 처리해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사참위는 “기업과 정부의 책임은 너무나 크고 분명하여 이 책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못 박았다.
사참위는 지난 10일 공식 해산에 앞서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한 종합보고서를 통해 8개의 권고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기업의 참사에 대한 책임 인정과 공식사과 및 포괄적 배·보상 실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공소시효 연장, 피해 입증 책임을 기업으로 전환, 실질적 피해지원을 위한 지원법 개정, 조속한 피해 판정 실시 등이다. 사참위 특별법 제48조에는 권고를 받은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권고 내용을 이행해야 하며 이행 내역과 불이행 사유를 매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국회는 이행 내역이 미진하다고 판단할 경우 국가기관 등에 개선을 요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아니할 경우 책임 있는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무고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외치는 ‘민생’ ‘인권’ ‘상식’ ‘공정’은 부질없는 포장일 뿐이다. 사참위의 권고안을 정부와 국회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이행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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