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이런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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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은 사뭇 달랐다.
C씨는 평소 부족하다고 느꼈던 골프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추석 연휴 단기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즐겼다.
추석 직전 발표된 성균관의 차례상 표준안은 생각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과거와 모습은 다르지만 오히려 가족과 친지, 조상을 생각하고 마음을 나누는 추석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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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은 사뭇 달랐다. 가족 모임을 고수하지 않는, 확 달라진 어른들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렸다. 명절이면 경남 밀양 시댁으로 한복까지 챙겨 입고 내려가던 A씨는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에 안 내려갔다”고 했다. 뜻밖의 변화는 시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온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 명절을 몇 차례 보내고, 그래도 된다는 걸 확인한 시어머니는 이번에도 “아들만 내려와도 된다”고 했다. 아들 며느리에 손주들까지 내려가면 음식 준비하랴, 잠자리 챙기랴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었는데 이들이 안 내려오니 오히려 당신도 편하다는 걸 알게 되신 듯했단다.
비단 A씨뿐만 아니라 집안 어른들로부터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는 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덕분에 미혼의 B씨는 미뤄놨던 여름휴가를 추석 연휴 뒤에 붙여 해외로 떠났다. C씨는 평소 부족하다고 느꼈던 골프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추석 연휴 단기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즐겼다.
추석 직전 발표된 성균관의 차례상 표준안은 생각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전을 안 부쳐도 된다”고 해준 덕에 집마다 기름 냄새가 사라졌다. D씨는 “간소화 지침 덕에 그 지겹던 전을, 이번 추석엔 하나도 안 부쳤다”며 놀라워했다. E씨는 “튀김이랑 전 없이 차례상을 차렸는데, 아버지가 내년부터는 이것도 하지 말고 여행이나 가자고 하시더라”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명절 음식 준비가 소박해진 데는 사실 지갑 열기가 겁나는 물가 탓도 크다. F씨는 “시금치 한 단에 6000원, 배추 한 포기가 1만2000원이란 소리를 들었다”며 “평생 차례상을 세 줄로 차리던 친정어머니가 올해는 두 줄만 준비하셨더라”고 했다. 추석 상차림이 간소해졌기 때문인지 유난히 이번 추석은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준 것 같다.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추석 풍경이 달라진 건, ‘마땅히 해야 하는 줄 알고 했던 일’들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너도나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명절이라서,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꾸역꾸역 해왔던 일들을 하나둘 걷어내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차례상 차리는 데 힘을 덜 빼자 차례지낸 뒤 가족끼리 둘러앉아 조상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겼다. ‘공부는 잘하니’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와 같은 친척들의 쓸데없는 질문에 뭐라고 받아칠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혼자 시간을 보내자 마음에 없던 여유가 찾아왔다. 추석에 못 만난 친척에게 소박하게나마 온라인으로 선물을 보냈다. 과거와 모습은 다르지만 오히려 가족과 친지, 조상을 생각하고 마음을 나누는 추석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셈이다.
이번 추석, 예년과 다르다고 느낀 것 하나가 더 있다. 밥상머리에서 정치 이야기 듣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추석 밥상 메뉴로 올리기 싫을 정도로 정치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일 게다. 여야는 이마저도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있지만 민심은 정치권에 그야말로 싸늘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지지율을 보면 내심 추석 밥상머리 여론전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아보려던 여야의 노력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또 누가 알겠나. 이번 추석을 통해 명절 때마다 무리수를 써가며 정치 이벤트를 벌여온 여의도의 정치 행태가 달라질지 말이다. 전 부치기가 사라진 것처럼, 어쩌면 반짝 여론 홍보전에 힘 쏟는 대신 묵묵히 민생 챙기기에 매진하는 진짜 정치를 보게 되는 날이 언젠간 올지 모른다.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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