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용산과 네옴시티
지난 7월 사우디아라비아는 ‘네옴시티’ 계획을 발표했다. 친환경 선형 도시와 해변 산업도시 그리고 산악 지역에 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내용이었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상업·주거 도시인 ‘더 라인’이다. 시나이반도 사막을 가로질러 홍해에 이르는 170㎞ 길이의 선형 도시를 만드는 구상이다.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거리다. 폭은 겨우 200m에 불과하니 선도 아주 가느다란 선이다.
500만명을 위한 도시가 50m 높이의 벽 안에 콤팩트하게 담긴다. 학교, 직장, 상점, 공원 등 삶에 필요한 모든 시설은 걸어서 5분 안에 닿는다. ‘걷기’가 주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사막 기후를 조절해 연중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데 태양광·풍력 등 재생 에너지로 모두 충당한다. 석유 부자 나라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배제한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일정과 1조 달러에 달하는 예산 조달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으니 인류 최대의 도시사업이 가까운 미래에 성사될지도 모를 일이다.
계획은 단순하고 생경해 정신 나간 건축가의 미실현 스케치만큼 허술해 보이지만 동시에 여러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첫째, 자원 고갈 이후의 대책으로 도시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미래의 삶과 산업의 형태를 상상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도시는 단순히 사람이 모여 사는 장소일 뿐 아니라 혁신과 문화가 태어나는 공간이다.
둘째로는 도시가 가장 친환경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친환경 척도로 거론되는 탄소 배출에 있어 도시는 많은 탄소를 배출하기는 하지만 1인당 탄소 배출은 전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선입견과 달리 도시는 효율적이며 환경친화적 삶의 형태다. 셋째로 여러 첨단 기술을 적용하지만 네옴이 제시한 미래의 모빌리티는 예상과 달리 걷기다. 걷기는 가장 원초적이면서 효율적이며, 교류와 소통이라는 도시의 미덕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모든 생활 편의시설에 걸어서 5분 내인 도시는 가능하지만 자동차로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며칠 간격으로 서울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발표했다. 미래 구상을 옮기자면 용산 정비창 일대 초고층 마천루 사이에 드넓은 공원과 녹지가 펼쳐지고,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이 앞다퉈 입주하고 싶어 하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와 연구·개발(R&D), 마이스(MICE), 주거, 여가·문화생활까지 도시의 모든 기능이 이 안에서 이뤄지는 ‘직주혼합’ 도시로 조성하겠다고 한다. 용산이 서울의 마지막 남은 성장 엔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요약하자면 네옴과는 정반대 방향이며 너른 녹지에 마천루가 들어선 구역을 상상하는 듯하다.
두 사업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사막 빈 땅에 짓는 네옴과 기존 도시 내 대규모 공지라는 태생적 차이가 있지만 둘은 모두 콤팩트 도시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고 강화한다. 그러나 네옴이 미래에 대한 산유국의 절박함과 해결책을 담고 있는 데 반해 용산은 다소 한가롭고 안이하다. 그건 네옴이 제시한 질문에 대한 용산의 답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미래 삶의 형태에 대한 답은 ‘마천루와 녹지’다. 환경 문제에 대한 대책도 ‘마천루와 녹지’다. 시민 간 교류를 활성화해 혁신을 이루는 방안도 ‘마천루와 녹지’다. 그 외에 어떻게 아시아의 실리콘밸리가 되는지 구체적 구상은 없다. 마천루와 녹지는 필연적으로 자동차 중심인데도 말이다. 성장 엔진은 기껏해야 부동산 건설업자의 것으로 머물고 만다.
용산 계획은 “저 푸른 초원 위에 멋쟁이 높은 빌딩”으로 대표되는 70년대식 철 지난 유행가이며 소위 시장의 요구다.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 조짐은 탐욕적 시장의 요구보다는 도시 본래의 모습과 가치에 집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 삶을 상상하고 대응을 고민하고 혁신을 유도하는 도시적 해법을 제시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다. 용산의 분발을 빈다. 우리의 미래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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