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통행료 면제, 반갑지만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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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법제화한 때는 2017년.
당시 문재인정부는 명절마다 고속도로가 저속(低速)도로가 되는데도 통행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선거 공약으로 면제를 약속했고 당장 실행에 옮겼다.
명절에 통행료를 면제하면 국도를 이용할 사람까지 고속도로로 몰려 더욱 혼잡이 조장된다는 논리까지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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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경기 남양주 집에서 전남 완도 처가까지 평소 5시간 걸리던 거리가 30분 더 걸리는 수준이었다. 정체를 예상하고 새벽에 출발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습적으로 막히는 구간에서 약간 더 정체된 정도. 돌아오는 귀경길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대체휴일 덕분에 이동이 분산돼 그런지 평소보다 오히려 빨리 도착했다. 신기한 일이로구나 싶었다.
그러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며 더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하이패스 단말기에 “통행료는 0원입니다”라는 기계음이 들렸다. 단말기가 고장났나 싶어 아내에게 물으니 금세 검색해보고 말했다. “이번 연휴엔 통행료가 면제라는데?” 평소 뉴스를 꼼꼼히 살펴보는 편인데 모르고 있었다니.
돌아보면 역시 신기한 일이다.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법제화한 때는 2017년. 당시 문재인정부는 명절마다 고속도로가 저속(低速)도로가 되는데도 통행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선거 공약으로 면제를 약속했고 당장 실행에 옮겼다. 그때 야당이었던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은 분명 이 정책에 반대했다. 반대 이유도 또렷했다. 가장 큰 이유는 도로공사가 적자인데 재정을 악화한다는 것이고, 그리해 입은 손실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명절에 통행료를 면제하면 국도를 이용할 사람까지 고속도로로 몰려 더욱 혼잡이 조장된다는 논리까지 동원했다. 이런 반대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 추경호 경제부총리다. 당시 야당 의원이었다. 아무리 이쪽저쪽을 막론하고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견강부회가 일반화된 시대라지만 이래도 되는 것일까?
물론 명분은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동을 통제한다며 2년간 명절에도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았다. 이번에 3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명절’을 맞았으니 축하(?)하기 위해 통행료를 면제했다는 것이다. 최근 물가가 급상승해 서민 경제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실시한 정책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거칠게 표현하자면, 정부 마음으로 ‘받고 싶으면 받고, 안 받고 싶으면 안 받는’ 본질엔 변함없다. 가장 나쁜 복지는 이런 것이다.
사실 이런 건 복지도 아니다. 이것을 복지라고 표현하는 일은 자유시장경제가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구축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숭고한 가치에 대한 경멸이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다. 경쟁에 도태된 약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튼튼히 하는 것이 복지의 본질이다. 명절 때 정부 맘대로, 사회적 약자가 아닌 대다수 국민을 대상으로, 통행료를 받을까 말까 결정하는 것이 그 무슨 복지란 말인가. 고속도로가 저속도로가 되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에게 서비스를 만족시켜주지 못했으니 ‘환불’하는 차원에서 통행료를 면제한다는 논리 또한 어불성설이다. 빨리 달릴 때가 있으면 막힐 때도 있는 법. 재화나 서비스가 기본 기능에 심각하게 역행하지 않는 한, 가격에는 그런 비용까지 반영돼 있는 셈이다.
명절 연휴가 주말과 겹치면 손해 보는 느낌이라며 대체휴일까지 만들어놓았으면 그걸로 족하다. 사실 그 제도는 잘 만든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선택적으로 면제해 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기회를 자꾸 만들려는 이유는 뭘까? 공짜라고 좋은 것이 아니다. 던져주고 “어때, 좋지?” 자랑하는 모든 것은 결국 길들이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낼 것은 내고 요구할 건 요구해야 ‘자유’로운 국민 아닐까. 그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숱하게 말하는 자유의 본질에도 부합할 것이다. 포퓰리즘은 멀리 있지 않다. “자기도 공짜를 누렸으면서 말이 많네”라거나 “그럼 당신이나 돈 내고 이용하든가”라는 조롱과 폭언이야말로 포퓰리즘이 이루려는 최종 목적이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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