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의 문화예술 톡] 프리즈가 던지고 간 질문

2022. 9. 14.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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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올여름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가던 차 안에서 네바다주의 광활한 자연 속에 화려한 야광색으로 칠해진 7개의 돌탑을 발견하였다. 각각의 높이 10m가 넘는 돌탑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 설치되어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졌는데, 한 스위스 현대 미술 작가가 광활한 사막 위에 세워진 카지노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달 초 코엑스에서 국제 미술장터 프리즈 서울이 열렸다. 한 미국 갤러리 부스 안에 높이 약 50㎝로 축소된 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미 몇 년째 아트 바젤을 비롯한 메이저 아트 페어에서 보아온 것이다. 예상대로 프리즈 오픈 첫날 전시작 모두가 매진이었다.

「 서울서 처음 열린 국제미술장터
한국미술에 대한 기대감 높아져
작가들도 자기만의 세계 키워야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 관람객들이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보기 위해 영국 런던의 리처드 내기 갤러리 부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작품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특정 작가가 실현해 낸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한 위대한 도전의 의미를 상징하는 작품에 대한 감동을 소유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투자가치가 큰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세계 미술시장에 적극적으로 공급하는 갤러리들과 서양 컬렉터들이 만들어낸 컬렉팅 트렌드에 동참하기 위함이었을까.

이번 프리즈 서울은 무엇을 남겼을까. 기존 메이저 아트 페어에 단골로 참가해온 몇몇 갤러리들은 장소만 서울로 바꾸어 같은 작가들의 유사한 작품들을 가지고 한국의 자본력을 유혹하였고, 한국의 컬렉터들은 이에 적극 호응하였다. 다른 한편 프리즈가 아니었다면 한국인이 접할 기회가 힘든 희귀한 작품을 정성스럽게 전시한 갤러리도 많았다.

2003년 프리즈 아트 페어가 런던에 처음 생겼을 때 마침 나는 런던에 살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주택가를 지나 도착한 아름다운 리전트 공원 내에 세워진 하얀 텐트 안에서 아트 페어가 열린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그 텐트 안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창작의 기운과 매우 실험적인 작품들이 던지는 ‘왜?’라는 질문과 마주하며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아트 바젤을 비롯하여 기존에 명성을 얻고 있었던 세계 아트 페어에 비하면 프리즈만의 젊고 과감하고 실험적인 기운이 있었고 이는 매우 영국적인 아이덴티티와 연결되어 프리즈로 인해 영국 작가들과 미술계는 세계의 중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2년 시작한 프리즈 마스터스를 통해서는 고미술과 근현대 미술의 거장을 소개하는 페어를 첨가하면서 19년의 역사 속에 프리즈의 문화적 위상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서울에서 프리즈와 키아프 공동 개최는 국내외에 커다란 뉴스들을 쏟아내었다.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고 앞으로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으로서 한국이 지닌 잠재성을 증명하였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프리즈’라는 브랜드가 지닌 힘은 한국의 아트 페어인 키아프와 아트 페어 주간이 미래에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다양한 해답을 제공해주었다. 한국 소장자들이 프리즈에서 열심히 작품을 구입할 때 한국을 방문한 해외 컬렉터 중에는 오히려 키아프의 한국 갤러리를 방문하거나 한국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것을 더 즐겼다.

언젠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 한 유럽의 컬렉터는 “제가 어느 날 한국을 여행한다면 제프 쿤스의 작품보다 한국 출신 예술가의 작품을 보며 그 문화적 배경이나 개념 등에 대해 질문하는 게 훨씬 즐거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한국의 문화적 영향은 영화나 드라마, 대중음악 분야에서 보여준 독특한 창작력이 기반이 되었고 이 분야에서 한국은 이제 세계 문화계에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프리즈와 키아프가 이루어낸 문화적 시너지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 공공기관과 미술관, 갤러리, 소장자, 작가들이 힘을 합해 한국에서 열리는 미술 축제의 장으로서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국의 소장자들은 자국의 작가들과 갤러리들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아직 무명이거나 블루칩 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컬렉션에 과감하게 포함할 수 있는 자신감과 창작을 지원하는 사명감도 함께 지니면 좋을 듯하다.

그래서 서양의 컬렉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나만의 톡톡한 컬렉션을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한다. 반면 작가들은 미술 시장에서의 트랜드와는 무관한 고유한 창작에 집중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문화적 담론을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벌써 내년 프리즈/키아프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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