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정진석 비대위..통합 강조했지만 또 '윤심' 논란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베일을 벗었다. 정 위원장은 13일 오전 국회에서 비대위원 6인의 명단을 공개했다. 지난달 26일 법원이 이준석 전 대표가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해 ‘주호영 비대위’가 좌초한 지 18일 만이다.
원내에서는 3선 김상훈(대구 서구), 재선 정점식(경남 통영·고성), 초선 전주혜(비례대표) 의원이 비대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원외 인사로는 김종혁 당 혁신위 대변인,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 김병민 서울 광진갑 당협위원장이 합류했다. 당 상임전국위원회는 이날 오후 비대위원 임명안을 의결했고, 이로써 비대위는 정 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을 포함해 9인 체제로 닻을 올렸다.
박형수 원내대변인은 “지역별 안배와 통합을 고려해 경험과 능력을 갖춘 분들로 모셨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TK(김상훈), PK(정점식), 호남(전주혜), 경기(김종혁), 서울(김행·김병민) 등 지역 균형에 신경을 썼다는 취지다.
하지만 인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오전 10시 첫 발표 뒤 1시간 반 만에 인선이 번복됐다. 당초 명단에 포함된 주기환 전 비대위원이 정 위원장에게 고사의 뜻을 전했고, 본관이 광주인 전 의원이 긴급 투입됐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주 전 위원은 2003년 광주지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측근이다. 6월 지방선거에서는 여당 불모지인 광주시장 후보로 출마해 15.9% 득표율을 얻어 주목받았지만, 아들의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등 잡음도 있었다.
당 관계자는 “주 전 위원이 자신의 합류로 비대위 윤심(尹心) 논란이 더 거세진다는 부담을 느껴 고사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주 전 위원 대신 비대위에 합류한 전 의원 역시 대선 당시 윤석열 선대위 대변인을 지냈다. 최근에는 당 일각에서 윤핵관 대신 떠오르는 초선 ‘신핵관’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에 더해 대표적 친윤계로 꼽히는 검사장 출신 정점식 의원, 대선 당시 윤석열 선대위 대변인을 지낸 김병민 당협위원장 등이 포진하자 당 일각에선 “통합형이 아니라 친윤형 비대위”(재선 의원)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날 “통합의 외양을 갖추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 위원장의 발언이 무색해졌다는 반응도 있었다.
친윤계 논란에 거리를 둔 인선도 없진 않았다. 김상훈 의원은 당 안팎에서 비교적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중앙일보 출신 김행 전 대변인이나 김종혁 대변인도 비윤계 인사다. 김 전 대변인은 6월 지방선거 당시 당 공천관리위원으로 일하며 정 위원장과 호흡을 맞췄고, 김 대변인은 지난 대선 최재형 캠프를 거쳐 현재 혁신위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럼에도 비대위 전체로 보면 친윤계 맏형 격인 정 위원장 등 범친윤 인사들이 과반을 채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때문에 당내에서는 “향후 원내대표 선거 및 전당대회 추진 과정이나 당내 현안 의결 과정에서 윤심이 노골적으로 작용할까 걱정된다”(3선 의원)는 우려도 적지 않다. 당 핵심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당협위원장은 친윤계임과 동시에 김종인계이기도 하고, 초선인 전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캠프 수석대변인으로도 활동하는 등 특정 계파로 몰아가긴 어렵다”며 “계파보다는 당내 안정에 초점을 맞춘 인선”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인선 과정에서는 복수 인사들이 비대위 합류에 난색을 보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실제 정 위원장은 비대위 전환에 회의적인 최재형 의원이나, 유승민계 유의동 의원, 윤희숙 전 의원 등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이들은 결국 고사했다고 한다.
특히 호남 몫의 경우 적임자 물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 위원장이 공언한 ‘주호영 비대위 배제’ 원칙이 깨지기도 했다. 전북 출신 이용호 의원이 고사한 뒤 주호영 비대위에 몸담았던 주기환 전 위원, 전 의원에게 차례로 비대위원직을 제안한 뒤에야 인선이 마무리됐다. 당 초선 의원은 “지난달 가처분 인용으로 주호영 비대위가 좌초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작용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정 위원장은 이날 당직자 인선도 함께 발표했다. 사무총장 김석기 의원, 수석대변인 박정하 의원은 유임됐고, 조직부총장에 초선 엄태영 의원,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에 초선 노용호 의원이 새로 임명됐다.
여당이 어떻게든 혼란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가처분은 여전히 결정적 변수다. 이날 국민의힘 측은 이준석 전 대표가 정 위원장 직무를 정지시켜 달라며 신청한 4차 가처분 심문 기일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기존 14일에서 28일로 연기했다. 다만 이 전 대표가 당헌 개정안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3차 가처분 심문은 예정대로 14일 진행한다.
당내에서는 당헌 개정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친 만큼, 가처분이 기각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 위원장은 이날 “‘사법 자제’라는 선을 넘으면 법원이 정치 위에 군림한다”며 “비상상황에 대한 모호성이 해소됐기 때문에 기각 판단을 자신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가처분이 인용되면 당이 돌이킬 수 없는 혼돈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당 초선 의원은 “14일 법원이 당헌 개정안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면, 당헌 개정으로 탄생한 새 비대위도 시작부터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오후 당이 심문 기일 연기를 요청하자 “소설이 5시간 만에 현실로 됐다”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같은 날 오전 양금희 원내대변인이 라디오에서 “심문기일 연기는 소설 수준”이라고 말한 것을 비꼬았다. 이 전 대표 측은 이날 서울남부지법에 3·4차 가처분신청의 본안 소송도 제기했다. 이 전 대표 변호인단은 “14일 3차 가처분 심문에 이 전 대표가 직접 출석할 것”이라며 “무효인 주호영 비대위에 이어 터를 잡은 정진석 비대위도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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