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6일 만에 복귀한 이승엽.. '최강야구'가 안겨준 선물

이준목 2022. 9. 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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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JTBC <최강야구>

[이준목 기자]

 JTBC <최강야구>의 한 장면.
ⓒ JTBC
 
한국야구의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를 받고 있는 '아기 괴물' 신영우(경남고)가 대선배들을 상대로 154km/h에 이르는 초광속구를 선보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라이온킹' 이승엽은 은퇴 후 1756일 만에 관중들 앞에서 배트를 잡고 타석에 서며 팬들에게 뜻깊은 선물을 안겼다. 18세의 고교 유망주와 46세의 레전드, 한국야구의 전설과 미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이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9월 12일 방송된 <최강야구> 14회에서는 최강 몬스터즈의 11번째 경기인 고교야구 강호 경남고와의 1차전이 펼쳐졌다. 이날 경기는 몬스터즈의 감독이자 한국야구의 '국민타자' 이승엽에게는 영원한 홈그라운드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렸기에 더욱 뜻깊은 의미가 있었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가 BGM으로 깔리는 가운데 라이온즈파크로 돌아온 이승엽이 흑백화면속에서 'KING is back'이라는 자막과 함께 등장하며 오프닝을 장식했다. 이승엽은 일본프로야구 시절을 제외하면 KBO리그에서는 라이온즈 유니폼만을 입고 무려 15년을 활약하며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 등 숱한 역사를 썼다. 현역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승엽은 "제 인생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빼고 논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 이곳은 저에게 정말 소중하고 희노애락이 다 담긴 곳"이라며 친정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2017년 10월 3일, 이승엽은 자신의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 멀티 홈런을 작렬하며 누구보다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승엽은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내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제 다시는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설 수 없구나. 죽을 때까지'라고 생각했다"고 은퇴경기 순간을 회상하면서, 제작진에게 "오늘 여기서 이 유니폼을 다시 입을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입스 극복하고 홈런 친 이홍구
 
 JTBC <최강야구>의 한 장면.
ⓒ JTBC
 
이날 경기는 약 2500여 명에 이르는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으며 <최강야구> 역대 최다관중을 기록했다. 국민타자의 홈그라운드답게 대부분이 이승엽의 지인이거나 초대받은 지역 유소년 야구 선수단으로 남다른 스케일을 과시했다. 이승엽 감독은 1번 정근우(2루수)-2번 류현인(유격수)-3번 박용택(중견수)-4번 윤준호(포수)-5번 이택근(지명타자)-6번 정의윤(좌익수)-7번 이홍구(1루수)-8번 서동욱(우익수)-9번 최수현(3루수)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선발투수는 놀랍게도 심수창이 낙점됐다. 단장인 장시원 PD는 심수창의 현역 시절 라팍에서 승리투수가 된 경험이 전무하다는 기록을 언급하며, 만일 이날 승리투수가 된다면 "2186일 만의 선발승"이라고 언급했다. 이승엽 감독은 어이없어하며 "야구를 안 한 거냐?"라고 짓궂은 농담을 던져 심수창을 당황하게 했다.

심지어 전광열 경남고 감독이 "유희관-송승준이 나오면 이기기 힘들지만, 심수창-이대은이 나오면 자신있다"는 팩트폭행까지 날린 사실을 전해들은 <최강야구> 선수단은 일제히 박장대소했다. 지난 경기 이후 유력한 방출후보로까지 거론된 심수창은 "관중도 많이 오고, 몇 번의 부진이 있었기에 오늘을 보여줄 때가 된 것 같다"며 절치부심했다. 의외로 심수창은 현역 라팍에서 승리투수 경험은 없었지만 자책점 0.87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황금사자기 우승팀인 경남고는 신영우-김정민-김범석 등 U-18 청소년 국가대표를 다수 보유한 고교야구 강팀이었다. 장 PD가 이승엽의 경기 출전 여부를 묻자 이승엽은 웃으며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어깨 상태가 좋지않아 우려를 자아냈던 선발 심수창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도 최대한 맞춰잡는 피칭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프로의 노련미를 보여줬다. 1회를 모두 뜬공으로만 삼자범퇴시킨 심수창은 2회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후속 타자에게 2루수 앞 땅볼로 병살플레이를 유도해내며 기사회생했다.

고비를 넘긴 몬스터즈는 2회말 하위타선에서 반격에 나섰다. 계속된 부진으로 4번에서 6번까지 강등된 정의윤이 볼넷을 얻어낸 데 이어 이홍구가 경남고 선발 박윤성을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선제 투런포를 작렬했다. 이홍구에게는 몬스터즈에서의 첫 홈런이었다.

그동안 부진과 원인불명의 입스 증상 등으로 유난히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홍구는 "여러 감정이 많이 올라왔다. 프로에서는 그런 감정을 잘 못 느꼈는데 여기서는 같이 조언도 많이 듣고 잘하자는 격려도 받았다"라고 밝히면서 "'아직도 야구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이어 이홍구는 수비에서도 뛰어난 송구와 포구 능력을 잇달아 보여주며 강력한 경기 MVP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후 몬스터즈에게 또다른 고비가 찾아왔다. 경남고는 3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선발 박윤성의 뒤를 이어 4회부터는 드디어 에이스인 '괴물' 신영우를 마운드에 올렸다. 프로구단의 유력한 관심을 받고있는 기대주인 신영우는 '파이어볼러'답게 첫 연습투구부터 무려 149 km/h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지며 대선배들을 놀라게 했다.

신영우는 첫 타자 이택근부터 삼진으로 돌려세운 데 이어 두 번째 타자인 정의윤을 상대할 때는 <최강야구> 사상 최고 구속인 154 km/h를 기록했다. 이승엽 감독은 "스피드건이 잘못된 게 아니냐"며 깜짝 놀랐고, 몬스터즈 선수들도 "배트가 공에 밀리는 게 눈에 보였다", "브레이크가 엄청 좋다", "역시 최대어다"라며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신영우는 강속구만이 아니라 변화구까지도 수준급으로 구사했다. 특히 김선우 해설위원은 신영우의 너클 커브를 높이 평가하며 "빠른 공은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구까지 이렇게 구사한다면 프로에서도 A+를 받을 수 있다"며 극찬했다.

신영우는 4회에 볼넷을 하나 내주기는 했지만 아웃카운트 세 개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고교 최대어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어 경남고는 5회초 심수창-이대은에 이어 세 번째 투수로 올라온 유희관을 공략하여 적시타로 한 점을 만회하는 데 성공하며 1-2로 몬스터즈를 압박했다. 150 km/h대 광속구를 과시한 신영우와는 정반대로 느리지만 정교한 제구력으로 승부한 유희관의 피칭이 흥미로운 대조를 이뤘다. 유희관은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다행히 추가실점 없이 리드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1756일 만에 타석에 선 이승엽
 
 JTBC <최강야구>의 한 장면.
ⓒ JTBC
 
몬스터즈 타선은 신영우의 구위에 눌려 6회까지 삼진만 4개를 당하며 단 한 개의 안타로 때려내지 못할 만큼 고전했다. 하지만 7회말에 볼넷 2개로 찬스를 얻어낸 몬스터즈는 1사 1, 2루에서 9번 최수현이 신영우에게 뽑아낸 첫 안타를 적시타로 연결시키며 마침내 추가득점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주자 정의윤의 홈태그를 놓고 경남고가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세이프가 확정됐다.

정근우의 볼넷으로 계속된 1사 만루의 찬스에서 몬스터즈는 류현인의 우중간 적시타와 김문호의 외야플레이로 차곡차곡 득점을 추가하며 5-1까지 점수차를 벌렸다. 유희관은 8회 2사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경남고 타선을 7타자 연속 범타처리하는 노련미를 과시했다. 이승엽 감독은 역시 삼성 라이온즈 출신인 장원삼을 원포인트 릴리프로 투입했다. 1507일 만에 라팍 마운드에서 장원삼은 깔끔하게 삼구삼진을 잡아내며 기대에 부응했다.

8회 2사 1루 상황에서는 이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뜻깊은 장면이 연출됐다. 이승엽 감독이 7번 서동욱의 타석에서 대타로 깜짝 등장한 것. 지난 경기에서 팀사정상 부득이하게 대주자로 출장한 적은 있지만, 그동안 주로 감독 역할에만 충실해왔던 이승엽이 타자로 타석에 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영원한 고향인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레전드인 이승엽과 홈팬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였다.

몬스터즈 선수들은 혹시나 주자가 출루하지 못하거나 병살플레이로 이승엽의 타석이 무산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이승엽이 마침내 타석에 서자 경기장을 메운 관중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환호가 쏟아졌다. 이승엽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은퇴를 하고 유니폼을 입고 다시 많은 관중 앞에서 타석에 들어설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이승엽은 경남고 투수 진석현을 상대로 4구를 공략했으나 내야 정면으로 향한 라인드라이브 아웃을 기록하며 아쉽게 안타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지나간 1756일 만의 타석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돌아온 이승엽은 그제야 한숨을 몰아쉬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JTBC <최강야구>의 한 장면.
ⓒ JTBC
 
이승엽은 "정말 수많은 빅게임을 해봤는데 지금처럼 떨린 적이 없었다"면서 "그만큼 야구를 좋아하는구나, 그만큼 설레였구나, 타석에 서고 싶었구나 하는 마음을 이 떨림을 통하여 느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는 소감을 밝히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몬스터즈는 9회 경남고 출신인 송승준을 마무리로 올리며 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1차전에서 5-1의 깔끔한 승리를 거뒀다. 몬스터즈는 통산 전적 9승 2패로 승률 8할 1푼 8리를 기록했다.

이승엽은 라팍에서의 경기를 마친 소감에 대하여 "너무 떨렸다. 그래서 정말 이기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특히 "7월 25일(경기일) 라이온즈 파크에서 '8회의 대타 이승엽'은 제 기억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경기 MVP로는 결승홈런을 기록한 이홍구가 선정됐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홍구는 "가문의 영광이다. 쉽게 받을 수 없는 만큼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저를 믿고 힘써주신 몬스터즈 선배님들과 제작진에게 감사하다"며 울컥한 듯 목이 메이는 음성으로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경남고와의 경기는 <최강야구>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예능으로서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에피소드였다. 비록 노련한 프로 선배들을 넘지 못하고 패하기는 했지만,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고 과감한 정면승부를 보여준 박윤성과 신영우같은 유망주들의 모습은, 한국야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다. 경기력도 실제 야구의 재미를 느끼기에 가장 적합한, 치열하면서도 깔끔한 접전을 보여줬다. 

또한 입스로 고생했던 이홍구의 부활과 심수창-이대은의 명예회복이 몬스터즈만의 성장 서사를 보여줬다면, 이승엽의 타석 복귀는 야구팬들에게 오랜만에 레전드의 추억을 일깨우는 깜짝 선물이었다. 바로 승부와 성적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에서는 보여주기 힘든 '스토리가 있는 낭만야구'야말로 <최강야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된 희소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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