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조사만 했는데도..文정부 태양광 비리 1847억 쇼크

박태인, 김은지 2022. 9. 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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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이 태양광 비리 등을 포함한 1차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관련 보고를 받고 "세금이 밑빠진 돗에 물 붓기처럼 새어나가고 있다"며 전수 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 8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한 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허위 세금 계산서를 발행해 공사비를 부풀리고, 가짜 서류로 불법 대출을 받거나, 무등록 업체와 계약을 하는 등의 ‘태양광 지원사업’ 비리 1차 점검결과가 발표됐다. 국무조정실(총리실)은 13일 문재인 정부에서 5년간 약 12조원이 투입된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에 대한 표본조사 결과 2267건의 불법 집행으로 2616억원의 세금이 잘못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이중엔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과 전기장비 구매 담합 사례도 포함됐지만, 70%의 사업비(1847억원)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비리에 집중됐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대체 에너지 사업 지출 비중이 5년간 급격히 늘어나서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 에너지의 90%가 태양광 사업으로 사실상 태양광 비리 조사에 가까웠다”고 했다. 이번 조사는 국민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한 기금으로 운용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 대한 첫 운영실태 조사이기도 했다. 관련 브리핑을 맡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태양광 지원사업의 경우 1차 점검대상 중 다수 사업에서 부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한덕수 “세금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처럼 새고 있다”


이날 발표된 액수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조사가 인력 등의 이유로 전국 226개 기초단체 중 단 12곳, 전체 사업비 12조원 중 2.1조원만 우선 표본으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 전수 조사가 진행되면 불법·부당 집행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다.

국무조정실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관련 보고를 받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태양광 사업에 나랏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새고 있었다”고 탄식하며 남은 지자체와 관련 자금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날 국무회의에선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고 이번 비리로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지는 말라”는 당부도 했다. 또 다른 국무조정실 고위 관계자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보고를 받으니 말 그대로 쇼킹한 상황”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태양광 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 관계자도 “비위와 관련된 자들을 수사 의뢰하고 추가 인력을 파견받아 남은 자금에 대한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8년 8월 경북 청도군 산비탈에 설치됐던 태양광 발전시설이 폭우와 산사태에 무너진 모습. 위 사진은 이번 조사결과와 상관 없음. 뉴스1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국무조정실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약 11개월간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국무조정실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선 대선과 코로나가 겹쳐 조사가 지지부진했다”며 “새 정부 출범 뒤 속도가 붙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탈원전’을 밀어붙인 지난 정부 눈치 보기로 조사가 지연됐다는 해석도 나왔다.


표본 조사에서만 2600억 적발


이번 표본조사에선 태양광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부실과 다수의 불법이 확인됐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최근 3년간(19~21년) 실시한 태양광 금융지원사업 서류 조사결과 6509건 중 17%에 해당하는 1129건에서 무등록업체 계약 및 하도급 규정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표본대상 중 4개의 지자체가 운영한 395개의 태양광 지원 사업 중에선 25%인 99개 사업에서 201억원에 달하는 허위세금계산서가 확인됐고 이에 따라 141억원이 부당하게 대출됐다. 공사비를 부풀려 과도한 대출(71억원)을 받거나 전자세금계산서가 아닌 종이 계산서(70억)로 불법 대출을 받은 사례도 적발됐다.

구체적인 사례를 뜯어보면 태양광 설치업체와 관련 사업자가 공모해 견적을 부풀리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통해 지출보다 많은 대출을 받아 정부의 눈 먼 돈을 타내는 방식이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본 투자금액이 ‘0원’인 경우도 있었다. 방 실장은 “허위세금계산서를 통해 부풀려 받은 돈으로 발전 사업자들이 돈 한 푼 내지 않고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다”며 “거기서 발생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팔아 대출금을 갚으며 자기 자본 없이 사업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행법상 버섯재배시설에 태양광 설치가 가능한 점을 활용해 농지에 가짜 버섯재배시설이나 곤충사육시설을 지은 뒤 그 위에 태양광시설을 짓고 대출금을 받은 사례가 20여곳에 달했다. 이들이 받은 대출금만 34억원이었다.

지난 2018년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서 연설을 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방문규 “준비 없는 신재생 드라이브의 결과”


이외에도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의 허점을 활용, 공사 규모를 쪼개 각급 공사비를 낮춰 수의계약을 맺거나 결산서를 허위 작성하고, 233억원에 달하는 미집행 지원금을 회수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지원사업인 융복합 사업과 관련해서 4대 보험료를 정산하지 않아 256억원의 세금이 낭비되기도 했다. 전기장비 구매 과정에서도 들러리 업체를 내세우는 등 16건 총 186억원 상당의 담합 및 특혜 의심사례가 발견됐다.

국무조정실은 한 총리의 ‘전수 조사’ 지시에 따라 10조원가량의 남은 자금 실태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이미 대출이 이뤄졌거나 보조금이 지급돼 자금 회수가 어려운 경우도 상당해 고심이 깊다. 방 실장은 브리핑에서 태양광 비리가 많이 발견된 이유와 관련해 “아무래도 (지난 정부에서) 강하게 신재생 에너지 정책 드라이브를 걸다보니 사업계획을 탄탄하게 준비할 여유가 없어 이런 부실집행 사례가 대거로 확인된 것이 아닌가”라고 답했다. 이어 “단기간의 대규모 자금을 집행할 경우 사전기획과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 국무조정실 고위 관계자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대한 투명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려는 차원에서 진행됐을 뿐 그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윤석열 정부에선 보다 투명하고 철저한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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