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잡는 최고의 견제왕은 누구?
도루는 심리전이다. 투수와 포수, 그리고 주자가 끊임없이 상대의 눈치를 살핀다. 주자를 잘 묶으려면 투수의 역할이 크다는 게 정론이다. KBO리그 최고 주자들에게 묶은 '도둑 잡는 투수'는 누구일까. 10개 구단 대표 '쌕쌕이'들에게 물었다.
응답자는 SSG 랜더스 최지훈, LG 트윈스 박해민,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 KT 위즈 심우준, KIA 타이거즈 박찬호, NC 다이노스 박민우, 롯데 자이언츠 황성빈, 삼성 라이온즈 김지찬, 두산 베어스 조수행, 한화 이글스 마이크 터크먼이다. 중복 답변을 허용했고, '영업 비밀' 때문에 익명으로 답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지목된 투수는 3표를 받은 삼성 데이비드 뷰캐넌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유일하게 복수의 선수가 꼽았다. 삼성에서 함께 뛰다 이제 상대편으로 맞이하게 된 박해민도 알버트 수아레즈(삼성)와 함께 뷰캐넌에게 표를 던졌다.
뷰캐넌의 강점은 빠른 동작이다. 투수들은 주자가 나가면 와인드업(힘을 모으기 위해 양팔을 뒤로 제치는 동작)을 생략한다. 그리고 오른손 투수 기준으로 왼 다리를 높이 들지 않고 평소보다 빠르게 던진다. 왼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때문에 미국에선 '슬라이드 스텝'이라고 부른다. 한국과 일본에선 보통 '퀵모션'이라고 한다.
뷰캐넌도 주자가 없을 땐 왼다리를 허리 이상까지 키킹을 하지만, 주자가 있을 때는 들지 않고 던진다. 퀵모션 투구시간은 1.0~1.2초대에 형성된다. 1.3초만 돼도 리그 정상급인데 훨씬 빠르다.
빠른 주자가 1루에서 2루까지 가는 데는 3.4초 정도 걸린다. 도루를 막기 위해 배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투구가 홈에 도달하는 데 0.4초가 걸린다. 포수의 송구가 2루까지 가는 팝타임이 1.8~1.9초이고, 야수의 태그동작에도 0.2초 정도가 소요된다. 남은 시간은 0.8~0.9초. 이론상으론 투수가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뷰캐넌처럼 퀵모션이 좋으면 뛰기가 어렵다.
KIA 박찬호는 "퀵모션이 빠르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살 수가 없어서 시도가 어렵다"고 말했다. KT 심우준도 "공을 던지는 동작 자체가 빠르니까 주자일 때도 어렵고, 타석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했다.
실제로 주자들은 뷰캐넌이 투수일 때 좀처럼 뛰지 않는다. 뷰캐넌이 처음 한국에 온 2020시즌엔 단 한 명의 주자도 2루도루를 시도하지 않았다. 올해는 223번의 도루 기회 중 6번 시도가 있었다. 시도율은 2.7%로 선발투수 중 KT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1.5%), 삼성 원태인(2.0%)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았다.
뷰캐넌을 제외하고는 9명의 투수가 각자 한 표씩을 받았다. 드류 루친스키(NC), 수아레즈, 데스파이네, 오원석, 서진용(이상 SSG), 정철원, 최원준(이상 두산), 고우석(LG), 원태인이다.
박민우는 "공을 글러브에 넣지 않고, 견제구가 빠른 선수가 어렵다"고 했다. 박해민은 "수아레즈는 공을 글러브에 넣지 않는 스타일이라 견제동작도 빠르다. 눈으로 견제하는 능력도 좋다"고 설명했다. 최지훈은 "루친스키는 투구동작과 견제동작이 같아서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혜성은 "공이 빠른 투수가 아무래도 경계된다. 고우석은 견제구도 빠르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견제는 왼손투수가 유리하다. 1루주자를 등지는 오른손투수와 달리, 주자의 움직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견제 능력으로 이름을 날린 송진우, 봉중근, 류현진 모두 좌완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지목된 투수들은 오원석을 제외하면 모두 우완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4명이 외국인투수인 것도 눈에 띈다. A팀 작전코치는 "아무래도 외국인투수들은 집중분석 대상이 된다. 뽑을 때부터 퀵모션이 좋은 투수를 눈여겨보고, 하지 않았던 투수들도 한국에서 익힌다. 오른손투수들이 견제에 더 신경쓰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라고 했다. 실제로 루친스키는 한국에 온 뒤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받아들여 슬라이드 스텝을 가다듬었다.
주자들은 도루의 책임이 포수보다는 투수 쪽이 크다는 데 공감했다. 박찬호는 "전력분석 때도 포수는 신경쓰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포수도 늘 정확한 송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박민우는 "개인적으로는 90%는 투수에게 도루 허용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포수 출신 김태형 두산 감독은 배터리의 호흡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김 감독은 "정철원은 퀵모션(도루시도율 1.3%)이 좋다. 투수가 투구폼을 뺏기면 포수가 주자를 잡기 어렵다. 다만 포수의 역할, 특히 어떤 볼 배합을 하는지도 중요하다. 주자가 100% 뛰려고 할 때 변화구 사인을 주면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 이정재, 연인 임세령과 손 꼭 잡고 에미상 레드카펫 밟았다
- 차 밑서 브레이크 '싹둑'…CCTV 속 그놈, 아내 내연남이었다
- "살다살다 이걸 구독하다니"…39일만에 1억 대박난 영상 정체
- "포상금 2억 준다" 깡통전세에 서울시가 내놓은 특단 대책
- 후배 장례식장서 록밴드 '락골당' 기획…'국민약골' 이윤석의 꿈 [속엣팅]
- 살 떨리는 독일 패착...문재인도 성공했다면 한국 안보위기 휘청였을 것
- 추억 되새긴 아들 기적…부친이 판 땅 되사 '해남 명소' 일궜다
- [단독] 빚더미 오른 지방기관 비율…이재명의 경기도가 1위
- 어느날 통째 사라진 조부 묘…독립영웅 후손 울린 '기구한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