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대우조선의 470억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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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파업을 벌인 하청노조 집행부 5명을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에게 배상금을 받아내 회사 손해를 메꾸자고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건 아니다.
지난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이 생생한 반증이다.
이를테면 원청기업을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하면 하청노동자는 원청을 상대로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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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파업을 벌인 하청노조 집행부 5명을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액은 51일간 손실된 작업시간(75만)에 시간당 가공비 6만3113원을 곱해 계산했다. 1인당 95억원꼴. 월 4000만원씩 20년, 월 200만원씩이면 400년 동안 갚아야 하는 액수다. 어느 쪽으로도 감당 불가능한 숫자다.
그러니 한가지는 명백하다.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에게 배상금을 받아내 회사 손해를 메꾸자고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건 아니다. 이겨봐야 상대는 돈이 없다. 게다가 소송에는 비용이 든다. 조선업 호황기라지만 대우조선은 아직 적자다. 회사가 어렵다며 하청업체 기성금을 쥐어짜서 결국 파업까지 벌어졌다. 그런 기업이 회삿돈으로 대형로펌 선임해 억대 인지대 물어가며 실익도 없는 소송을 한다. 승소 판결문 받아내자고. 이게 합리적 판단일까.
본때를 보여주자는 거라면 설명은 된다. 다만 그걸 경영상 판단이라고 포장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위력시위를 겸한 다목적 정치행위라고 봐야 자연스럽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노조 말고 그들이 염두에 둔 건 뭘까. 주목할 건 파업 전후로 나온 여권발 메시지들이다. 지난 7월 중순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대국민담화를 시작으로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핵심부에서는 대우조선의 손배소송에 대한 발언이 쏟아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소송을 걸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고, 여당 의원은 “소송이 당연하다는 게 당과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이라고 단언했다. 불가피하다, 안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 원칙이다 등등. 표현은 달라도 그 무렵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가이드라인이든, 신호든, 지시든 뭐라고 부르든 좋다. 메시지는 전달됐고 결국 소송은 시작됐다.
이제 노동자에게는 지옥문이 열린다. 판결 전부터 월급과 전세금, 집, 퇴직금 등 걸 수 있는 모든 것에 가압류가 걸린다. 최저생계비(월 185만원)는 압류에서 제외하지만 그 돈으로는 혼자도 버티기 어렵다. 생활이 바닥을 치면 아이들 교육이 중단되고, 건강이 나빠지고, 부부가 갈라서고, 가정이 깨진다. 급기야 극단선택에 내몰리는 사람이 생긴다. 셈이 빠른 회사는 불행이 만든 틈을 놓치지 않는다. 많은 회사가 손배 철회를 조건으로 노조 탈퇴나 퇴사를 흥정한다. 그렇게 조합원이 빠져나가면 남은 이들의 배상액은 커진다. 더 깊은 수렁이다. 1989년 이래 197건의 노조 손배소송 사건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안타깝지만 불법파업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 그래야 불법이 근절된다. 손배소송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반복하는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맥락을 지운 채 불법파업이 무조건 나쁘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지난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이 생생한 반증이다. 하청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저임금·장시간·위험 노동에 내몰린 건 법이 그들에게 합법적 협상의 무기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상 그들에게는 경기장 입장의 권리도 없었다. 협상 파트너인 하청업체는 결정권이 없는데, 노동자들은 원청을 만날 수조차 없다. 원청을 거론하는 그 순간 파업은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무슨 이런 불공정한 게임이 다 있나.
밀려난 사람들은 결국 제 몸을 무기로 쓴다. 케이지에 몸을 묶고, 타워크레인에 오르고, 옥상을 점거한다. 불법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을 다 면책하자는 게 아니다. 낡은 게임의 룰을 정비하자는 거다. 이를테면 원청기업을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하면 하청노동자는 원청을 상대로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선박 밑바닥에 몸을 묶는 대신 말이다. 잘못된 룰이 불법을 양산한다는 걸 인정할 때가 됐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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