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불공정 시비 막으려면 건설입찰 혁신하자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대장동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권과 언론에 ‘토건족’이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일선에서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땀 흘려 일하는 대다수 건설기술자의 자존감에 상처를 줬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건설기술자의 사회적 지위 향상, 이미지와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외부 시각의 왜곡과 더불어 짚어 봐야 할 것이 건설업계 내부의 근본적 고질병이다. 통렬한 자성과 포괄적 내부 동의, 그리고 과감한 자기 혁신 없이는 사회적 폄훼에 대한 어떤 항변도 공허할 것이기 때문이다.
건설 산업은 플랜트·조선·방위산업과 마찬가지로 수요자인 발주처의 주문에 따라 결과물을 생산하는 수주 산업이다. 특히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사업에 있어서 평가 공정성을 확보하면서 최적 사업자를 선정하는 입찰제도의 도입과 운영은 매우 어려운 정책임이 틀림없다. 국내에서 공공사업을 수행할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행 입찰제도는 크게 설계·시공을 분리해 발주하는 ‘기타공사입찰(종합심사낙찰제·간이형종심제·적격심사제)’과 기술 난이도가 높거나 상징성이 필요한 시설물에 적용하는 ‘설계·시공일괄입찰(기술형입찰제)’로 나뉜다. 기타공사입찰은 무리한 저가 입찰의 폐단을 막기 위해 2016년부터 수행능력과 가격을 동시에 평가하는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 달리 수행능력평가는 거의 유명무실해졌으며 가격 중심의 ‘운찰제’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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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형 입찰제 도입 취지 변질
심사 로비에 집중, 기술력은 뒷전
업체 선정과 결과 투명 공개를
」
기술형입찰제는 규모가 큰 고난도 프로젝트 시공자 선정을 위해 1996년에 도입된 입찰 방식이다. 시공자가 제안한 설계의 우수성, 참여 업체의 시공 역량 등 기술 평가 점수가 낙찰자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기술력 평가에 있어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오히려 건설 기술력의 퇴행을 초래하고 건설업계의 부정적 인식을 가중하는 주범으로 전락하고 있다.
기술형입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개월 간 많은 엔지니어를 투입해 작성한 수천억 원 규모의 기술제안서 평가를 졸속으로 심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상세 설계에 접할 기회가 적은 교수나 공공기관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 심사위원들에 의해 판가름난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발주처는 심사위원 후보군을 꾸리고 이 후보군으로부터 해당 프로젝트의 심사위원을 최종 선정하는 절차를 밟게 돼 있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선정된 심사위원에게 충실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심사위원 후보군이 구성될 때부터 이들은 지속해서 로비와 영업의 대상이 되며, 특히 특정 프로젝트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되고 나면 로비가 집중된다.
이처럼 기술력보다 영업력이 수주를 결정하는 상황이 되면 설계의 품질이나 새로운 아이디어 발굴보다 심사위원을 상대로 한 영업에 더 집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설계 품질은 떨어지고 투입된 영업비용에 따른 원가 부담으로 부실시공과 안전사고 증가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에 더해 수주 영업을 위해 발주처의 퇴직자를 영입하고 높은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젊은 엔지니어의 고용과 처우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문제가 엔지니어의 위상과 건설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래하고 대학 교육에까지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입찰제도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목적과 필요 사항, 설계 조건 등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발주처 내부 전문가들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한다. 발주처의 책임 아래 한 달 이상 충분한 기간을 투입해 제출된 기술제안서를 검토하고 평가한다. 발주처 내부 심사위원 명단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가 진행되도록 한다.
선진국형 평가 방법을 도입한 뒤에는 평가 과정과 결과에 대해 내외부 감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국내 기술형 입찰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가 가능할 것이고 우리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다. 건설 기술력 향상, 안전사고 예방과 품질 확보,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입찰제도 개선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건설시장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함을 새 정부가 인식하기를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철영 대한토목학회 회장·명지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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