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북한, 모든 상황서 핵 사용 열어놨다

차세현, 정진우, 박현주 2022. 9. 1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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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3축 체계(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 대량응징보복) 강화, 16일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 전략협의체(EDSCG) 개최와 북한의 7차 핵실험 시 “차원이 다른 대응” 압박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 포기 불가(不可)’ 선언과 ‘핵 선제적 사용’을 담은 북한판 핵 독트린(교리)의 법제화로 맞불을 놓았다.

이에 따라 한·미 협의를 통해 지난달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담대한 구상’은 시작부터 험로를 걷게 됐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협상 복귀를 전제로 인프라·산업·경제 등 각 분야의 대북 지원책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그 어떤 극난한 환경에 처한다 해도 미국이 조성해 놓은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형세하에서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우리 정권을 어느 때든 붕괴시켜 버리자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다.

북한은 이날 회의에서 11개 항으로 된 핵무력 정책을 법령으로 채택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중대한 의의가 있다”며 “핵보유국으로서 우리 국가의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됐다”고 주장했다. 향후 비핵화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도 관심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법령 6조에서 김 위원장이 ‘핵 버튼’을 누를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WMD) 공격 감행 또는 임박 ▶국가지도부 등에 대한 핵 및 비핵 공격 감행 또는 임박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감행 또는 임박 ▶유사시 전쟁 주도권 장악 등 작전상 필요 ▶국가 존립과 인민의 생명에 파국적 위기 초래 등이다. 공격 ‘임박 징후’만으로도 핵을 선제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군사적 상황에서도 핵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사실상 모든 상황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법령 3조에는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명시했다.

김정은 “전술핵 운용공간 확장” 7차 핵실험 목표 내비쳐

북한 노동신문은 정권 수립일(9·9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경축행사를 개최했다고 9일 보도했다. 지난 8일 김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가 만수대의사당 정원에서 열린 노력혁신자, 공로자들을 위한 연회에 참석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지난 4월 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김 위원장은 “우리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는데 선제 타격 및 보복 기능을 핵무력의 목적으로 법제화한 것이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전술핵 운용공간을 부단히 확장하고 적용수단의 다양화를 더 높은 단계에서 실현해 핵전투태세를 백방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 주한미군 및 본토 증원 병력을 겨냥하는 전술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는 지시로, 한·미가 사실상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한 7차 핵실험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12일 “북한은 미 본토를 향한 전략핵보다 주한미군과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한층 구체화하고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핵과학자회(BAS)는 최근 북한이 주로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탑재용 핵탄두 20~30기를 완제품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북한은 핵무력 정책의 법제화를 통해 향후 협상의 조건도 대폭 높였다. 상당 기간 북한의 협상 복귀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과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는 2018~2019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두 차례에 걸친 북·미 정상회담에서 시도했던 ‘영변 핵시설 포기’와 ‘대북 제재 완화’와 같은 주고받기식 협상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신 김 위원장이 대화 개시 조건으로 언급한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 변화’는 그간 북한이 주장해 온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와 연결된다. 구체적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및 확장억제 제공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이 포함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는 결국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인데 만약 한·미가 (기존 입장을 고수한 채)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면 북한은 법령이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 등 도발을 할 경우 유엔 제재 및 미국 독자 제재 추진, 확장억제 강화 등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정부 소식통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대담한 구상’ 제안을 주도해 온 정부 입장에선 예상은 했지만 북한의 반발이 현실화되면서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다”며 “앞으로 한·미 공조를 유지하면서 ‘대담한 구상’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을지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국 대북정책의 전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지난 9일 미국의소리(VOA)에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비핵화’에서 ‘핵 위기 관리’로 방향이 바뀔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앞으로 그런 얘기를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한국과 다른 나라 당국자들이 핵무장한 북한의 현실과 그 위협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진우·박현주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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