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클럽'의 힘, 포항-인천이 조용한 승자인 이유
[이준목 기자]
K리그1 포항 스틸러스와 인천 유나이티드가 나란히 '극장골' 명승부를 선보리며 파이널A 동반 진입을 자축했다. 올해 K리그 돌풍의 주역인 두 팀은 파이널라운드를 앞두고 다음 시즌 AFC 아시아 챔피언리그 티켓이 걸린 3위 자리를 놓고 더욱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포항은 11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2 31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동해안 더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노경호의 역전 결승 골을 앞세워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울산은 전반 36분 아담의 시즌 5호골인 페널티킥 득점으로 먼저 기선을 제압했다. 하지만 포항은 후반 3분 고영준의 득점으로 균형을 맞췄다. 일진일퇴의 공방을 이어가던 양팀은 울산 조현우와 포항 강현무, 두 골키퍼들의 연이은 선방쇼로 추가득점에 실패했다.
무승부의 기운이 짙어가던 후반 추가시간, 마지막 역습 찬스를 잡은 포항은 이호재의 헤더가 골대를 맞고 나왔으나 루즈볼을 잡아낸 노경호가 페널티박스 중앙에서 호쾌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기어코 골망을 흔들었다. 조현우가 몸을 날렸으나 각도와 스피드, 모두 손을 쓸 수 없었던 완벽한 골이었다. 지난 시즌 프로무대에 데뷔한 미드필더 노경호의 K리그1 데뷔 골이기도 했다. 노경호의 버저비터 극장골과 동시에, 경기는 포항의 승리로 종료됐다.
승점 51점(14승 9무 8패)을 쌓은 포항은 3위 자리를 굳힘과 동시에 2위 전북 현대(15승 10무 6패, 승점 55)을 4점차로 추격했다. 반면 울산은 18승 8무 5패, 승점 62점을 기록하며 전북과의 승점차를 더 벌릴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7점차를 유지했다.
울산이 동해안더비 라이벌인 포항만 만나면 경기가 꼬이는 것은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포항은 팀간 역대 전적에서 64승 51무 58패로 울산에 앞서 있다. 특히 포항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울산의 우승 도전에 여러 번 발목을 잡은바 있다..
포항은 2013년에도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리던 울산을 최종전에서 김원일의 추가시간 극장골로 1-0으로 제압하며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019년 파이널A 최종 38라운드에서도 최종전에서 포항을 또 만난 울산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가능했으나 1-4로 충격적인 완패를 당하면서 전북 현대에 역전 우승을 헌납해야했다. 2021년 ACL 8강전에서도 포항이 승부차기 끝에 울산을 5-4로 꺾고 결승진출까지 성공한바 있다.
두 팀 모두 K리그의 명문이지만 2000년대 이후 울산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포항보다 앞서있던 시즌이 더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울산이 2005년 이후 리그 무관이 길어진 이유도 포항이 적지않은 지분을 차지한다.
포항은 올시즌도 울산과의 상대전적에서 2승 1패로 우위를 점했다. 울산으로서는 파이널라운드에서 또다시 만나게될 포항을 넘지못하면 끝까지 우승을 낙관하기 어렵다. 포항은 지난 시즌 리그 9위에 그친 아픔을 털어내고 2년만에 파이널A에 복귀했다.
한편 인천은 같은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겼다. 인천은 정규 시간까지 수원에 1-3으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 추가시간에만 김대중-김민석이 내리 2골을 몰아치는 놀라운 집중력을 선보였다.
특히 마지막 극장골을 성공시킨 김민석은 2년차로 올시즌 리그에 첫 출전하여 12분만에 기적같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여러모로 포항의 노경호 드라마와 닮은 꼴 명장면이 같은 날에 펼쳐졌다.
이로서 12승 12무 7패, 승점 48점을 기록한 인천은 7위 수원FC(승점41)과 7점차로 최소한 정규라운드 6위를 예약함에 따라 울산-전북-포항에 이어 4번째로 파이널A행을 확정했다. 2013년 이후 무려 9년만의 쾌거다.
반면 파이널B행이 확정된 수원은 또다시 다잡은 승리를 허무하게 놓치며 수원은 8승 10무 13패, 승점 34점에 그치며 9위에 머물렀다. 강등권은 10-11위 김천-대구와 승점차가 3점에 불과하여 1부리그 잔류를 놓고 피말리는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인천은 2010년대 들어 매시즌 강등권을 오가며 파이널B에서 잔류를 위하여 사투를 벌이는 하위권팀 이미지가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끝내 1부리그 잔류에 성공하는 질긴 생존력으로 '잔류왕' '생존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20시즌 도중 조성환 감독이 부임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인천은 첫해 11위로 다시 한번 1부 잔류에 성공한 데이어, 2021시즌에는 8위로 반등하며 모처럼 승강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2022시즌에는 돌풍의 주역으로 거듭나며 아무도 예상하지못한 4위로 파이널A 진출이라는 대반전을 이뤄냈다.
시즌 중반 간판 공격수 무고사의 이적이라는 악재를 극복하면서 이룬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만년 하위권 인천을 환골탈태시킨 조성환 감독은 인천 팬들에게 조버지(조성환+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극찬을 받았다.
포항과 인천은 올해 K리그1의 '조용한 승자'로 꼽힌다. 리그 우승 타이틀을 놓고 경쟁중인 울산과 전북, 강등권을 헤메고 있는 성남이나 대구에 비하면 오히려 주목을 덜 받았지만, 실속있는 행보로 차근차근 승점을 챙기며 상위권을 지켰다. 빅클럽으로 꼽히는 울산과 전북에 비하여 투자 규모가 훨씬 적고 시즌 중반에 주축 선수들을 잇달아 내줘야하했던 설움에도 불구하고, 유망주들 육성과 감독의 용병술로 빈 자리를 메워내면서 작지만 강한 '강소클럽'만의 저력을 보여줬다는게 두 팀의 공통점이다.
이제 두 팀은 다가오는 파이널라운드에서 ACL 티켓이 걸린 3위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선두권인 울산-전북을 따라잡기에는 격차가 있지만, 언제든 이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저력을 갖췄기에 순위 판도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포항과 인천의 깜짝 선전은 자칫 맥빠진 순위싸움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K리그1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호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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