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속이고 3만명 살렸다…'고스트 아미'의 깜짝 비밀무기 [이철재의 밀담]
지난 2월 일어난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동안 재블린과 같은 대전차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서 구세주로 추앙받았다. 최근엔 러시아의 후방 기지ㆍ탄약고ㆍ보급소를 정확하게 타격하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ㆍ하이마스)이 ‘차세대 아이돌’로 급부상했다.
러시아는 당장 하이마스 사냥에 나섰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일(이하 현지시간) “6문의 하이마스를 파괴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지난달 30일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가짜 하이마스에 러시아가 정밀 유도무기를 낭비하고 있다. 나무로 만든 가짜 하이마스는 진짜와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러시아가 드론을 날려 하이마스를 찾은 뒤 잠수함이나 구축함에서 3M-54 클럽(칼리브르) 순항미사일을 쐈는데, 표적이 모두 가짜였다는 얘기다. 토드 브리아시엘 미국 국방부 대변인 대행은 “미국이 제공한 하이마스는 모두 무사하다”고 말했다.
작계대로 전쟁이 안 풀리면서 요즘 칼리브르와 같은 러시아의 정밀 유도무기 재고가 간당간당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10발이 넘는 칼리브르를 가짜 하이마스에 낭비한 셈이다. 익명의 미국 관리는 “러시아가 타격했다고 주장하는 하이마스 숫자는 심지어 우리가 보내준 물량(16문)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의 연구원인 조지 바로스는 “미끼를 쓰는 기만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오래됐다”고 설명했다.
바로스의 말처럼 동양에는 예부터 의병지계(疑兵之計)란 전술이 내려왔다. 군사의 수가 많은 것처럼 적을 의심하게 만드는 계략이다.
민속놀이인 강강술래의 기원 중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는 구전(口傳)이 있다. 아군 병력이 적어 고심하던 이순신 장군이 남장한 부녀자 무리를 모아 불을 들게 하고 해안가를 돌며 ‘강강술래’를 외치게 했더니, 왜군이 군사가 많은 걸로 착각하고 달아났다는 얘기다.
2차대전에서도 난무한 의병지계
의병지계는 현대전에서도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선 적을 속이는 군사용 디코이(decoy) 또는 더미(dummy)가 등장했다.
독일은 1940년 5월 네덜란드ㆍ벨기에ㆍ룩셈부르크를 침공하면서 짚을 가득 채운 꼭두각시를 대도시에 떨어뜨렸다. 공수부대의 강하 작전으로 보이게 만들어 혼란을 일으키려는 목적이었다.
연합군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상륙지점인 노르망디를 감추려고 조지 패튼 장군이 파 드 칼레로 쳐들어가는 것처럼 속인 퀵실버(Quick Silve) 작전을 벌였다. 독일의 정찰기가 모형 차량과 모형 상륙정을 촬영하도록 했고, 엄청난 양의 무전을 보내 군사 작전이 임박한 것처럼 꾸몄다.
현대판 의병지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부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미국 육군의 제23 특수부대 본부다. 별명은 고스트 아미(Ghost Armyㆍ유령부대).
1100명 규모의 고스트 아미는 화가, 광고 전문가, 무대 장치 디자이너, 엔지니어, 무선 기사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꾸려졌다. 이들의 주특기는 기만작전. 고스트 아미가 독일군에게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는 것처럼 속이면 다른 부대가 전혀 엉뚱한 곳으로 공격하는 작전이었다.
고스트 아미는 전차ㆍ야포ㆍ트럭ㆍ전투기 모양의 대형 풍선을 만들어 불고, 장비 소음을 스피커로 틀거나, 갑자기 무전을 많이 보내는 방법을 주로 썼다.
라인강 도하 작전 때 고스트 아미는 전혀 엉뚱한 곳에 2개 사단이 모인 것처럼 위장해 독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고스트 아미의 활약 덕분에 미군은 큰 피해 없이 라인강을 건너갔다. 고스트 아미가 3만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추정도 있다.
고스트 아미의 존재는 1996년까지 비밀로 묶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하자 미국은 고스트 아미를 소련과의 ‘제3차 대전’에 투입하려면 이들을 감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목재 미그 전투기에 속은 나토
디코이가 한몫을 단단히 한 전쟁이 있다. 99년 3~6월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탄압하자,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는 공군력을 동원해 세르비아를 연일 폭격했다. 얼라이드 포스(Allied Force) 작전.
세르비아는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나토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나토 조종사들은 나중에 “지상에 목표물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일방적 공습이었다.
나토의 압박에 결국 세르비아가 손을 들면서 평화 협정이 맺어졌다. 그런데….
세르비아군이 코소보에서 철수하자 나토가 매우 놀랐다. 넉 달 간 공습으로 씨를 말렸다고 믿었던 세르비아군의 전차ㆍ장갑차ㆍ야포가 도로에서 긴 줄로 귀국하고 있는 장면에서다. 얼추 세보니 전차 250여대, 장갑차 450여대, 야포 600여문의 전력이었다.
나토는 공습 작전으로 코소보 주둔 세르비아군에서 전차 120대, 장갑차 220대, 야포 450문, 항공기 121대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후 분석에 따르면 세르비아의 피해는 전차 13대, 장갑차 6대, 야포 6문에 불과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나토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신나게 때린 목표물은 거의 대부분이 디코이였다.
나중에 세르비아는 디코이 미그-29 전투기를 제작하는 장면을 공개하면서 나토를 조롱했다. 나무로 뼈대를 만든 이 디코이 전투기는 철판을 덧댔다. 레이더 전파를 반사해 일부러 탐지되도록 한 장치였다. 꽁무니엔 등유를 태우는 곳도 있었다. 배기가스를 내뿜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었다.
조종사이면서 화가, 만화가로도 활동했던 세르비아 공군의 조르데 이바노프 중령이 만든 작품이었다. 그는 디코이 미그-29로 나토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세르비아의 항공 마니아의 도움을 구했다. 이들이 만든 모형의 90%는 나토에 의해 파괴됐다고 한다.
가짜 전차와 장갑차, 야포는 기본이었다. 주요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벌판에 플라스틱으로 길을 만들고, 그 위에 가짜 다리를 세우기도 했다.
세르비아는 전쟁에 졌지만, 디코이 미그-29를 자랑스럽게 박물관에 전시하면서 나토를 조롱하고 있다.
진짜와 점점 닮아가는 디코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i2K 디펜스는 군사용 디코이 전문 기업이다. 역사가 25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 회사 웹사이트엔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각종 무기 디코이가 나온다.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의 디코이도 있다. 모두 대형 풍선이다.
이 회사는 하늘에서 실제와 97% 정도 똑같이 보인다고 자랑한다. 미군이 훈련용 표적으로 이 회사 제품을 많이 사 간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군사용 디코이를 개발한 회사가 있다. 구명조끼와 낚시용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씨울프는 2017년 서울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ADEX)에서 비닐로 만든 K1A1 전차를 공개했다.
디코이 K1A1은 공기를 채우면 실제 K1A1과 크기와 모습이 똑같다. 4명이 20분이면 설치 또는 철거할 수 있다. 적외선 탐지에 일부러 걸리도록 열을 내는 장치도 들어 있다.
최근 군사용 디코이는 나무나 금속으로도 만들어진다. 또 씨울프의 디코이 K1A1과 같은 발열 장치를 갖추고, 적외선이나 레이더에 실제 무기ㆍ장비처럼 걸리도록 한다. 센서가 발달하면서 모양만 닮아선 적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밀리터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필요한 전략 중 하나가 상대를 기만하는 것”이며 “기만은 적을 속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속임수를 판별하기 위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코이와 더미도 첨단 기술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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