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 뒤 '도살장'..용핵관 비서실장 "지지율 50% 넘기자"

현일훈 2022. 9.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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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는 백 라이트(back light)일 뿐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의 파워 게임에서 기선을 잡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백 라이트, 무대 뒤에서 주인공인 윤석열 대통령을 비추는 조명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그를 잘 아는 이들에 따르면 이는 김 실장의 지론에 가깝다. 대통령실 물갈이 주장이 들끓던 지난 8월 초, 윤 대통령에게 “참모는 바둑알”이라며 “돌을 내주는 대신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기자쟁선·棄子爭先)”고 건의하고, 이어 수석들을 따로 불러 “착각 마라. 비서는 사퇴할 자유조차 없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8월 18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국정운영 동력 확보를 위한 대통령실 직제 개편과 인적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렇듯 연신 몸을 낮추는 그이지만, 그럴수록 여권에선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요구가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대선 승리의 공신이었던 ‘윤핵관’의 2선 후퇴 국면과 맞물려 그를 중심으로 한 관료·검찰 중심의 ‘용핵관’(용산 핵심 관계자)이 신흥 권력으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도 여권에선 나온다.

김 실장 또한 전면에 나서는 횟수가 늘고 있다. '피바다’, ‘도살장’이란 표현을 불렀던 대통령실 물갈이를 주도한 게 그다. 지난 7일 인적 쇄신 작업과 관련한 브리핑을 직접 한 김 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기회는 드릴 수 있지만, 보장은 해줄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대신했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통화에서 “누구보다 후배를 아끼는 게 김 실장이다. 지금 괴로움 속에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획예산처에 근무하던 2005년, 그는 직원 여론조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로 뽑힌 적도 있다.

밖으로는, 대통령실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 운영위에서 야당의 ‘사적 채용’ 공세에 “제가 대통령실 근무가 5번째인데 과거에도 채용 방식이 다 그랬다”고 일축했다. 그를 두고 정치권에선 “더듬수로 야당 공격을 받아 넘기고,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허허실실’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래전부터 그를 봐 온 이들은 “리더십이 아주 강했다”, “공부벌레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그의 경기고 동창인 A씨는 이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A씨에 따르면 김 실장은 고교 2학년 시절 느닷없이 “책들 덮어라. 목포로 간다”며 반 친구 7명을 데리고 목포행을 감행해, 당시 주변이 뒤집혔다고 한다. 김 실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올해 초 만났을 때도 김 실장이 ‘이제부턴 내 인생을 즐기고 싶다’며 새로 차도 뽑고, 비싼 카메라도 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달 공개된 그의 재산목록에는 '2022년식 GV70'이 나와 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8월 23일 오후 국회본청에서 열린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보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랬던 그가 왜 비서실장 자리를 수락한 걸까. 김 실장은 56년생으로 윤 대통령(60년생)보다 4살이 많다. 여기엔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란 책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기프트)’이라는 문구를 읽고는, “내 능력을 사회에 다 돌려주고 가자”고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주변에 설명했다고 한다.
김 실장의 목표는 뭘까. 그는 최근 지인들에게 이런 속내를 밝혔다고 한다. “어쩌어찌하다 용산까지 오게 됐는데요. 언젠가는 떠나야지요. 그런데 떠나더라도, 제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대로 높여놓고 나서 떠나고 싶은 게 제 솔직한 마음입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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