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건강 살피던 일지, 문화재 되다

이종길 2022. 9. 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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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천(雙泉) 이영춘 박사(1903∼1980)는 한국인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다.

해방 직후 전북 군산에 개정중앙병원을 마련하고 농민 치료에 헌신했다.

문화재청은 '자혜진료소 일지', '개정중앙병원 일지', '농촌위생연구소 일지' 등 기록물 세 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보존·관리한다고 7일 전했다.

개정중앙병원 일지는 진료소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입원·수술환자들을 위해 작성한 진료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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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영춘 박사 진료기록물 세 건 국가등록문화재 보존·관리
연간 농민 3만명 무료 진료..전라도 일대 누비며 왕진도
이영춘 박사[사진= 이영춘박사추모사업회]

쌍천(雙泉) 이영춘 박사(1903∼1980)는 한국인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다. 해방 직후 전북 군산에 개정중앙병원을 마련하고 농민 치료에 헌신했다. 농촌이 건강해야 민족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화호중앙병원, 개정간호학교, 농촌위생연구소, 개정보건소 등을 추가 개설해 진료사업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그는 농촌사회 변화를 꿈꾸며 교육에도 힘썼다. 일심영아원과 일맥영아원을 세워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육했고, 학생들의 건강을 지키고자 처음으로 양호실을 도입했다.

남다른 이웃사랑은 군산 구마모토농장 의무실(자혜진료소)에 진료소장으로 부임한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박사는 이듬해부터 연간 농민 3만명을 진료했다. 전라도 일대를 누비며 왕진도 다녔다. 그래서 간호사를 뽑을 때 자전거 타는 시험을 봤다. 진료비는 전액 무료였다. 고통받던 민초들에게 희망을 전하며 구체제 종식을 이끌었다.

그는 과학적 접근으로 농업 생산성도 끌어올렸다. 당시 농사에는 거름으로 인분이 쓰였다. 발효되는 속도가 더뎌 기생충과 병균이 들끓곤 했다. 농사를 망치고 농민의 질병까지 유발했다. 이 박사는 사비를 들여 시멘트로 발효통을 만들었다. 수월한 발효를 유도해 수확량을 늘리는 동시에 농민들의 건강을 지켰다.

이 박사는 농촌위생연구소를 통해 다양한 보건 문제도 파악했다. 농촌사회와 농민 생활 전반에 대한 조사부터 진행했다. 그렇게 발표한 연구논문은 마흔일곱 편.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 맞춤형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피폐한 생활 환경을 개선했다.

농촌위생연구소 일지

그 단서가 된 진료 기록물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된다. 문화재청은 ‘자혜진료소 일지’, ‘개정중앙병원 일지’, ‘농촌위생연구소 일지’ 등 기록물 세 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보존·관리한다고 7일 전했다.

자혜진료소 일지는 진료소장으로 부임한 뒤 구마모토농장 소작인 2만여 명(약 3000가구)을 진료하며 쓴 기록물이다. 개정중앙병원 일지는 진료소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입원·수술환자들을 위해 작성한 진료기록이다. 당시 농촌 주민 건강 상태, 의료 실태 등이 확인된다.

농촌위생연구소 일지는 농촌위생사업 활동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농촌위생사업이란 농촌사회에 만연했던 기생충, 결핵, 전염병 등으로부터 농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펼친 예방 활동이다. 의료체계가 구축되기 전 농촌 보건위생 체계를 갖춘 드문 사례로 꼽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공중보건 의료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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