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좀 치워버려".. 교대생 43명 실종사건의 진실 [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림수진 기자]
▲ 지난 8월 26일은 2014년 9월 26일 43명의 학생들이 실종된 이후 아흔 다섯 번째 26일이었다.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매달 26일에 모여 실종자들의 생환을 간절히 바라며 시위한다. 그들의 외치는 구호는 "산 채로 끌려갔으니, 제발 살아있으라! ¡Vivos se los llevaron!, ¡Vivo los queremos!"로 한결같다. 당일 아들의 사진을 들고 나온 한 어머니가 빗속 차가운 일기 가운데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 Imagen 뉴스 |
지난 8월 26일 오후, 비가 내리기 시작한 멕시코시티의 기온은 영상 10도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수백 명이 멕시코 수도 도심에 모여 8년 전 공권력에 의해 산 채로 끌려간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43명 학생들의 생환을 기원했다. '제발, 살아 있으라'는 구호를 외치고 또 외쳤다. 차가운 빗속의 외침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 8월 30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실종자의 가족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세계 강제 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실종자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매년 8월 30일은 유엔(UN)이 지정한 '세계 강제 실종 희생자의 날'이다. '강제 실종'은 국가기관 혹은 국가 역할을 자임하는 단체에 의해 체포 또는 납치돼 실종되는 것을 의미한다. 2022.08.31 |
ⓒ 연합뉴스 |
사라져버린 43명의 교대생
2014년 9월 26일, 멕시코 남서부에 위치한 게레로(Guerrero) 주 이괄라(Iguala) 시에서 무장 세력이 다섯 대의 버스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그 자리에서 수 명이 즉사하고 나머지는 진압되어 끌려갔다. 이후 일부는 풀려났지만 그들 중 43명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생사의 흔적마저 찾을 수 없다.
잡혀간 이들이 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괄라 시에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실종된 43명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지던 중 열흘 만에 암매장된 시신 28구가 발견되었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조사 결과 학생들의 시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원을 특정할 수도 없었다.
학생들이 생존해 있을 것이란 희망과 함께 멕시코 사회는 안도했다. 하지만 땅을 팔 때마다 수십 구씩 쏟아지는 신원미상 시신들에 외신들은 경악했다. 수색이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시신과 뼈 조각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실종된 학생들은 아니었다. 43명의 실종 사건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묻혀버렸을 누군가의 죽음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봉인된 판도라 상자가 열려버린 듯했다.
시신이 나올 때마다 안도와 경악이 뒤섞였다. 이미 같은 해 상반기 게레로 주에서만 60여 구의 신원미상 사체들이 발견된 바 있기에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정부 입장에선 외신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마음이 급해진 엔리케 페냐 니에토(Enrique Peña Nieto) 대통령(2012-2018)은 연방경찰을 투입하고 최측근이었던 무리죠 카람 (Murillo Karam) 검찰총장에게 수사를 진두지휘케 했다.
수사 당국의 발표는 이렇다.
▲ 사라진 43명의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 이름은 통상 아요치나파(Ayotzinapa)로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Raul Isidro Burgos 농촌사범학교'다. 매달 26일마다 이 학교 학생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주축이 되어 시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지는 2022년 8월 26일, 95번째 <26일 시위>를 알리고 있다. 해당 포스터의 아래쪽에 "당신들을 만날 때까지 찾는 것을 멈추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 Antimonumento+43 페이스북 |
그러나 이들은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닿지 못한 채 이괄라 시에서 무차별 총격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학생 다섯 명과 무고한 시민 네 명이 죽었다. 죽은 자 아홉 명을 제외한 모두가 총격을 가한 무장 세력에 끌려갔다.
학생들에게 공격을 가한 이들은 해당 지역 마약 카르텔인 게레로스 우니도스(Guerreros Unidos)라는 조직이었다. 학생들을 서로 경쟁하고 있는 상대조직으로 오인하여 공격하였다는 것이다.
정부의 거짓말, 범인은 시장 부부와 경찰
그런데 연행되었다 되돌아온 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학생들이 탄 버스에 총격을 가한 이들이 지역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추후 밝혀졌다. 차량 탈취 신고를 받고 도난 차량을 저지하기 위한 총격이었다고, 경찰 측이 뒤늦게 말을 바꿨다.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한 자들이 카르텔 조직이든 경찰이든,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멕시코에서라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 덮인 채 묻혔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 시신들과 실종된 자식의 사진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선 부모들의 외침에 언론이 따라붙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초기 수사 선상에 오른 이들 스스로 말이 맞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한 세력도 경찰이었고, 경찰이 직접 학생 43명을 카르텔에게 넘겨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어 카르텔이 학생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소각한 후 유기했고, 심지어 신원확인을 방해하기 위해 치아를 발치해 따로 버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먼저 이괄라 시 경찰 서장이 도주했다.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카르텔 조직에 넘겨준 자였다.
▲ 사건 발생 8주년을 목전에 둔 지난 8월 18일 AMLO 정부는 43명 교대생 실종 사건을 '국가 범죄'로 규정하였다. 해당 사건이 단순히 이괄라 시 지방 정부와 마약 카르텔이 개입한 것을 넘어서 당시 연방 수사기관과 중앙 정부까지 깊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역사적 진실'에서 인용된 수많은 정보들이 조작되고 왜곡되었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지난 8월 26일 아흔 다섯 번째 26일 시위에서 한 소년이 "국가가 범인이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 Imagen 뉴스 |
경찰에게서 학생들을 받아 이들을 살해하고 소각한 지역 카르텔 게레로스 우니도스 두목은 그녀의 남동생이었다. 집안 대대로 마약 카르텔로 입지를 굳히면서 지역 정치를 주물렀을 것이다. 돈과 폭력을 앞세워 공권력을 아래에 두고 남편을 정계에 진출시키고 남편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본인도 그 단맛을 보려고 유세를 하는 와중에 시위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는 학생들이 거슬렸던 것이다. '치워버리라'는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시 경찰과 마약 카르텔이 손발을 맞춰 척척 움직였다. 경찰 서장에 이어 시장 부부가 도주했다.
봉인된 '역사적 진실'
▲ 2015년 1월 멕시코 정부에 의해 43명 교대생 실종 사건 수사 종결과 함께 '역사적 진실'이 만들어진 이후, 유엔 인권위원회는 '이중 부정不正'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행하였다(표지 이미지). 해당 보고서에는 아요치나파 43명 학생 실종 사건뿐 아니라 당시 검찰총장이 진두지휘했던 일련 수사과정의 불법과 부당 사례가 담겨있다. 본 보고서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아요치나파 교대생 실종 사건은 멕시코에 아주 오랜 시간 만성적으로 만연해온 폭력과 인권유린이 그대로 재현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희생자에 대한 무관심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 무력화는 멕시코 전역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
ⓒ 유엔고등인권위원회 멕시코 사무국 |
당시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검찰총장은 수사결과를 '역사적 진실'로 갈음하여 못 박았다. 절대 다시 바뀔 리 없다는 의미였다. 국내외 연구 조사 기관들이 여전한 의구심과 함께 상이한 조사 보고서들을 내놓았지만, 검찰총장이 직접 발표한 '역사적 진실'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미심쩍은 수사 종결은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겼다. '역사적 진실' 앞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검찰총장은 '피곤해 죽겠다'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지긋지긋하니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에 시민들이 검찰총장의 '피곤해 죽겠다'는 말에 해시태그를 달며 항의했다. 이 지긋지긋한 폭력으로부터 정작 피곤한 것은 국민들이라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소소한 응징이었다. 결국 검찰총장이 바뀌었다.
그 즈음 대통령 엔리케 페냐 니에토는 전국 대학 총장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역사적 진실'을 강조했다. 학생 43명의 생사를 알 수 없으니 분명한 비극이지만, 더 이상 국가와 국민들이 슬픔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슬픔은 역사에 묻고, 그 역사를 딛고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역사적 진실'에 가려 자식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부모들이 사라진 자식들의 사진을 목에 건 채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산 채로 끌려갔으니, 제발 살아 있으라!'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그 구호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같이 외쳐주었다. 매달 26일이면 어김없이 구호가 울려 퍼졌다. 결국, '역사적 진실'과 함께 묻혀버린 사건이 2018년 대선 기간 다시 쟁점화 되었다.
▲ 지난 8월 26일 2014년 실종된 43명의 아요치나파 학생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멕시코시티에서 정의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재수사... 서서히 드러나는 국가범죄의 실상
그로부터 1년 반 뒤, 2020년 6월 30일, 현 정부는 '역사적 진실'의 종말을 선포했다. 잘못 만들어진 역사이고, 거짓된 진실이란 이유였다. 2015년 성급한 수사 종결로 120여 명이 구속되었지만 그들 중 절반 이상이 다시 풀려난 상태였다. 하물며 43명 학생들을 죽이고 시신을 소각하여 유기한 마약 카르텔 게레로스 우니도스의 실세도 풀려났다. 수사 과정에서 강압과 고문이 있었다는 이유다. 수사 과정 전반이 엉망이었던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역사에서 결코 진실이 나올 수 없다는 현 정부 인권차관의 발언과 함께 '역사적 진실'이 무효화되었다.
재수사가 시작되었다. 유엔인권위원회가 다시 개입하였고 세계 각국 연구조사기관들이 참여했다. 이괄라 시 쓰레기 소각장 주변에서 수집된 뼈 조각들 중 학생 세 명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나머지 마흔 명은 여전히 생사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8주년을 목전에 둔 지난 8월 18일 AMLO 정부는 43명 교대생 실종 사건을 '국가 범죄'로 규정하였다. 해당 사건에 이괄라 시 지방 정부와 마약 카르텔뿐만 아니라 당시 연방 수사기관과 중앙 정부까지 깊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역사적 진실'에서 인용된 수많은 정보들이 조작되고 왜곡되었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분명히, 국가가 저지른 범죄였다.
▲ 8월 24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군인들이 아요치나파 교대생 43명 실종 사건 은폐 혐의를 받는 헤수스 무리죠 카람 전 검찰총장의 재판이 열리는 북부구치소에 도착하고 있다. 무리죠 카람 전 총장은 2014년 발생한 강제 실종에 관여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지난 19일 체포됐다. |
ⓒ 연합뉴스 |
지난 8월 24일 대통령 AMLO는 구치소에 수감 중인 전 검찰총장 무리죠 카람에게 공개적으로 물었다. '43명 교대생 실종 사건의 조작과 은폐를 당신에게 명령한 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더불어 아직 죽음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 나머지 40명에 대한 증거가 완전히 확인되고 모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때까지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종결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 AMLO 대통령이 대통령궁에서 실종된 43명 교대생들의 가족을 만나고 있다. AMLO는 대통령 당선 이후 매년 수차례씩 실종 학생 가족들과 만나 분명히 약속을 이행할 것을 강조했다. |
ⓒ 대통령처 |
오는 9월 26일은 사건 발생 8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지난 아흔 다섯 번의 26일처럼 멕시코 곳곳에서 절규와 같은 외침이 울릴 것이다.
▲ 지난 8월 26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실종자 가족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실종자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비닐막을 목에 건 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비닐막에는 어김없이 "산 채로 끌려갔으니, 제발 살아 있으라!"는 문구가 사진과 함께 새겨져 있다. |
ⓒ Antimonumento+43 페이스북 |
▲ 지난 8월 26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 여성이 실종자 얼굴이 새겨진 비닐막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비닐막에는 어김없이 "산 채로 끌려갔으니, 제발 살아 있으라!"는 문구가 사진과 함께 새겨져 있다. |
ⓒ Antimonumento+43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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