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열 3위' 리잔수 9월 방한 조율..'펠로시 패싱' 尹, 이번엔 만날까

강태화, 박현주 입력 2022. 9. 1. 16:14 수정 2022. 9. 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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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공식 초청으로 이달 중순 방한하는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달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아 '패싱 논란'을 일으켰던 윤석열 대통령이 같은 급의 리 위원장은 직접 만날지 주목된다.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중국 신화망.


"의장 공식 초청…예우 만전"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아시아 순방 일정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때와 달리 이번 리 위원장의 방한은 국회의장의 공식 초청 일정”이라며 “펠로시 의장 때와 달리 이번엔 의장실 차원의 외교 의전 등 예우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한국의 공식 초청으로 방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김 의장과의 공식 회담 외에도 윤 대통령과의 면담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 측이 윤 대통령 예방 일정을 우선 조율한 뒤 최종 방한 일정이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상무위원장은 한국의 국회의장 격으로, 시진핑(習近平) 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에 이어 중국 공산당 서열 3위다. 중국 상무위원장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장더장(張德江) 전 위원장 이후 7년만이다.

리 위원장은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하나다. 중국은 시진핑 시대 이후에 집단 지도 체제의 성격이 많이 퇴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대부분 결정은 정치국 상무위에서 내리는 구조다. 리 위원장은 과거부터 한국 주요 인사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한국에 대한 이해, 호감도가 상당하다고 한다.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 신화통신.


尹 면담 성사가 관건


국회의장실과 전인대 측은 리 위원장이 오는 15~17일 방한하는 데 잠정 합의하고 구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19~2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일정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방한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유엔 총회 참석 요청을 받았다.

리 위원장 측이 윤 대통령의 해외 출장까지 고려해 방한 일정을 겹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건 그만큼 윤 대통령과 면담 상사에 주안점을 둔다는 의미다. 이번 방한은 공식적으로는 지난 2월 박병석 전 국회의장의 베이징 올림픽 계기 방중에 대한 답방 성격이자 한ㆍ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한 협력 강화 목적이다. 다만 실제로는 윤 대통령 취임 후 시 주석과의 첫 한ㆍ중 정상회담에 대한 사전 조율이 핵심 의제라는 분석이다.

이광재 국회사무총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경우에 따라 방한 일정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게 될 다음달 16일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전후가 될 수도 있다”며 중국 측이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윤 대통령과의 면담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선 리 위원 방한에 이어 문재인 정부 내내 성사되지 않았던 시 주석의 방한이 연달아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중국의 국가 주석과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연달아 방문할 가능성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과거에는 집단지도체제 최상부를 형성하는 정치국 상무위원의 경우 한 국가에 한 해에 한 명만 간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새 그런 원칙이 많이 유연해졌다"고 설명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달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만나도 고민, 안 만나도 고민


외교가에선 “미ㆍ중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방한하는 리 위원장을 만나든, 만나지 않든 양쪽 모두 정치ㆍ외교적 부담을 안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말이 나온다.

딜레마의 핵심은 리 위원장이 지난달 방한했던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국가 의전 서열상 ‘동급’이라는 점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휴가를 이유로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는다고 밝혔다가, 뒤늦게 자택에서 전화 통화로 면담을 대신했다. 당시 펠로시 의장의 방한은 2002년 데니스 해스터드 전 의장 이후 하원의장으로는 20년만이었다.

당시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국 가운데 국가 정상과의 면담이 이뤄지지 않았던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펠로시 의장이 한국에 오기 직전에 대만을 전격 방문해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산 게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더해 펠로시 의장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한국 측 인사가 아무도 공항 영접에 나서지 않으면서 국내에서 ‘동맹 홀대론’이 불거졌고, 미국 측에서도 내심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외교적ㆍ정치적 동시 부담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리 위원장과는 별도 면담을 진행할 경우 당장 펠로시 의장 때의 전례와 직접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김흥규 아주대 미ㆍ중정책연구소장은 “만약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았던 윤 대통령이 리 위원장만 만나게 될 경우,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적 승리’라는 프레임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리 위원장과의 만남은 중국과 경쟁 전선을 확대하는 미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외교적 부담은 물론, 국내적으로도 자칫 윤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어 정치적으로도 부담이다.

리 위원장과 만나지 않는 선택지 역시 쉽지 않다.

1992년 한ㆍ중 수교 이후 방한했던 차오스(喬石)ㆍ리펑(李鵬)ㆍ우방궈(吳邦國)ㆍ장더장(張德江) 전 위원장 등 중국의 상무위원장들은 당시 대통령과 별도 면담을 했다. 만약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리 위원장과 만나지 않을 경우 상무위원장급 면담이 불발된 첫번째 사례가 된다. 또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고위급 인사를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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