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확장 플랫폼, 왜 '슈퍼앱 함정'에 빠졌나..덩치만 집착하다 출혈 경쟁 '부메랑'

배준희 2022. 8. 3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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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업은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주류는 이커머스다.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 시장 특징은 지배적 점유율을 차지한 1위 사업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했고 신세계그룹이 국내 3위 사업자인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G9)를 흡수했다. 이처럼 적자를 감수한 출혈 경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판도를 바꿀 만한 ‘한 방’은 목격되지 않는다. 롯데와 신세계 등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이 이커머스 시장에 뛰어들었는데도 점유율은 정체 상태다. 플랫폼 기업이 자초한 전략의 함정을 집중 분석한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 카카오는 기능별 조직이 지나치게 분산돼 플랫폼 내부의 상호작용이 제한을 받는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카카오 사옥 모습. (매경DB)

▶싱글호밍 → 멀티호밍, 환경 변화

▷아마존식 GBF 전략, 가격 경쟁 자극

전문가들은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 성장이 정체 양상을 보이는 것을 플랫폼 환경 변화에서 찾는다. 플랫폼 성장 정체는 곧 네트워크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초기 플랫폼 사업자는 네트워크 효과를 높이려 아마존식 ‘GBF(Get Big Fast·빠르게 성장하며 규모 키우기)’ 전략을 공격적으로 폈다. 양면시장의 어느 한쪽에 파격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며 참여자를 늘리는 GBF 전략을 펴왔다.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아마존은 미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50%가량 점유율을 차지하며 과점 사업자로 등극했다.

그러나 파격적인 보조금 지급을 기반으로 한 GBF 전략은 양면시장에서 적어도 어느 한쪽의 ‘싱글호밍(Single Homing)’ 상황에서 효과적이었다는 게 학계 진단이다. 싱글호밍은 단일 플랫폼만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멀티호밍(Multi Homing)’은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다.

플랫폼 이론 선구자로 평가받는 장 티롤·장 샤를 로쉐 툴루즈1 대학 교수가 2003년에 쓴 논문 ‘양면시장에서 플랫폼 경쟁(Platform Competition in Two Sided Markets)’을 보면, 참여자 양쪽 모두의 멀티호밍을 상정하지 않았다. 한쪽에서의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한 싱글호밍과 그에 따른 가격 경쟁 효과를 분석했다. 선두 사업자였던 아마존과 쿠팡 등은 경쟁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플랫폼 참여자의 싱글호밍 환경에서 과감한 GBF 전략을 구사했고 ‘승자독식(Winner Takes All·WTA)’ 효과를 누리며 점유율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최근 플랫폼 환경은 기술 발전으로 양면시장 참여자 양쪽 모두에서 발생하는 멀티호밍이 일반적이다. 멀티호밍 환경에서는 공격적인 보조금 지급 전략이 네트워크 효과를 키우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플랫폼 간 끊임없는 가격 경쟁을 자극하고는 한다.

야니스 바코스(Yannis Bakos)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은 2020년 ‘경영과학(Management Science)’ 저널에 실은 논문에서 플랫폼 양쪽이 멀티호밍을 할 경우, 총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느 한쪽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전략의 의도된 효과는 제한되거나 심지어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미국 아마존이나 중국 알리바바처럼 지배 기업으로서 위치를 차지한 과점 사업자가 등장하지 못하고 ‘춘추전국시대’가 전개 중인 것도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이해가 된다. 결국 플랫폼 멀티호밍 환경에서는, 후발 주자가 아마존식 GBF 전략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출혈 경쟁의 성과를 낙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지나친 분산은 플랫폼에 毒

▷플랫폼 기능 시너지 상실

국내 플랫폼 기업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카카오그룹은 최근 성장 둔화세가 뚜렷하다. 핵심 사업인 플랫폼(톡비즈·포털비즈) 부문에서 성장성에 관한 의구심이 확산 중이다. 올 2분기 톡비즈 매출은 전분기 대비 2% 줄었고 포털비즈 매출은 10% 감소했다. 매출이 줄며 수익성은 더 악화했다.

전문가들은 카카오 성장성 둔화를 지나친 ‘분산(Decentralization)’에서 찾는다. 학계에서 조직 구조를 크게 ‘집권화(Centralization)’와 ‘분권화(Decentralization)’로 구분한다. 전자는 수직적, 중앙 집권적인 구조다. 후자는 수평적, 분권형 구조다. 이 가운데 카카오는 후자 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가령, 카카오는 신사업을 추진할 때 조직 내 별도 조직으로 ‘CIC(Company in Company)’를 두고 권한을 거의 다 맡긴다. 이런 식으로 카카오는 엔터, 모빌리티, 금융, 게임 등 수많은 조직과 기능을 분화시켰다. 8월 기준 계열사만 134곳에 달한다.

문제는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해 필수적인 여러 기능이 곳곳에 별도 조직으로 흩어졌다는 데 있다. 플랫폼 구조를 다루는 기술조직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로 분리됐다. 반면 참여자를 유인할 도구인 음악, 영상 등의 콘텐츠 조직도 별도 법인으로 분사됐다.

배성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플랫폼이 지속 성장을 하려면 양쪽 참여자를 끌어들여 상호작용을 자극하기 위한 여러 도구와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카카오는 이런 기능이 지나치게 분산돼 유기적 연결과 통합적인 기능 구축이 어려워졌다. 이들 개별 조직이 분사한 뒤 독자적인 생존 기반을 다지려 외부 투자가 줄줄이 이뤄지며 주주 구성이 파편화된 점도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가로막는다. 이는 각 조직과 기능 간 연결과 통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투자 유치를 위해 카카오나 계열사를 찾는 PE가 많지만 한결같이 ‘카카오그룹 찾아가봤자 의사 결정이 안 된다’는 푸념만 한다”며 “카카오그룹 계열사는 대부분 2대, 3대 주주 등으로 주주 구조가 분산돼 있는데 이 때문에 카카오 측에 투자 제안을 해도 ‘우리가 단독으로 의사 결정을 못하니 2대와 3대 주주까지 다 만나서 컨펌을 받아와야 한다’는 답만 돌아온다”고 귀띔했다.

▶전략적 트레이드오프

▷슈퍼앱 전략, 모호성 자초

국내 플랫폼 기업이 유행처럼 추구하는 ‘슈퍼앱’ 전략은 전략적 모호성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슈퍼앱 전략은 단일 플랫폼 아래 서비스 카테고리를 지속적으로 추가하는 것을 뜻한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배민스토어를 열고 화장품, 꽃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의류, 편의점 상품도 입점시켰다. 여가 플랫폼 야놀자는 전시 예매 전문관을 새로 열었다. 신선식품을 판매하던 마켓컬리는 여행과 여가 상품으로 상품군을 확장했다. 당근마켓은 브랜드 프로필 서비스를 시작하며 대형 프랜차이즈 광고까지 시작했다. 그러나 여러 플랫폼의 이런 슈퍼앱 전략은 의도했던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슈퍼앱 전략이 전략적 모호성을 초래해 당초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네트워크 효과를 저해한다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

슈퍼앱 전략은 서로 양립하기 힘든 복수의 가치를 동시에 좇는 하이브리드 전략의 한 종류다. 많은 플랫폼 기업이 슈퍼앱 전략을 밀어붙이며 더 많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해 공격적인 보조금 정책을 펴는 동시에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공급자와 독점적 계약을 맺어 네트워크 효과를 높이려 한다. 플랫폼 성장을 위해 ‘깊이(고품질·독점적 상품)와 확장(범위·다양성)’ 전략을 동시에 펴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 실증 연구에서는 이 두 가지를 병렬적으로 단순 결합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트레이드오프(Trade-off·상충)가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서로 다른 전략을 결합할 경우 각 전략별로 강조할 요소와 우선순위를 낮출 요소를 결정해야 한다. 하이브리드 전략은 복잡성이 높아 이런 의사 결정이 쉽지 않고 종국에는 전략적 포커스가 모호해져 각 전략의 이점 또한 감소한다는 게 다수 실증 분석의 결과다.

카르멜로 세나모 코펜하겐비즈니스스쿨 교수 등은 2013년 ‘경영과학’ 저널에 기고한 논문에서 미국 비디오게임 산업을 분석한 결과, 앱 생태계 참여자 수를 늘리는 ‘확장’ 전략과 콘텐츠 독점 공급자를 늘리는 ‘깊이’ 전략을 동시에 추구할 때 각 전략의 이점이 감소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최근 ‘성장 중심’에서 ‘수익성을 담보한 성장’으로 이커머스 전략의 방향을 바꾼 이마트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이 따른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성장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다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모호한 방향성 가운데 불확실성은 여전해 당분간 주가 상승 동력을 찾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커뮤니티 기반 패션 플랫폼인 무신사는 양쪽 참여자 간 활발한 상호 전환으로 고속 성장 중이다. 사진은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 (무신사 제공)

▶대중·틈새시장 동시 공략

▷요구되는 역량 서로 달라

대중시장(Mass Market)과 틈새시장(Niche Market) 공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도 최근 플랫폼 기업에 자주 목격된다. 두 시장을 동시에 노리는 이유는 어느 한쪽 시장을 선택한 데 따른 리스크를 헤지(Hedge)하기 위해서다. 대중시장은 소비자 기반이 넓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틈새시장은 소비자 기반은 얕지만 상대적으로 경쟁의 강도가 낮다.

통상 대중시장을 기반으로 한 종합주의 플랫폼 조직은 틈새시장으로, 틈새시장을 기반으로 한 전문주의 플랫폼 조직은 대중시장으로 영역 확장을 시도한다. 이는 앞서 전략적 트레이드오프의 함정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다소 결이 다르다. 전략적 트레이드오프의 함정은 상호 양립하기 힘든 가치를 좇는 데서 각 전략의 이점이 상쇄된다는 점이다. 반면 대중·틈새시장 동시 공략의 함정은 서로 다른 두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역량이 근본적으로 다른 데서 빚어진다.

가령, 글로벌 플랫폼 기업 가운데 널리 회자되는 사례가 블랙베리다. 당초 블랙베리는 기업 사용자에게 특화한 다양한 메시징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전문주의 플랫폼으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구글 안드로이드와 애플 iOS 등 새로운 대중시장이 등장하자 전략을 수정했다. 블랙베리는 카메라, 비디오게임 등 범용 사용자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확장하는 전략을 폈지만 결국 실패했다. 제한된 자원으로 서로 요구되는 역량과 속성이 상이한 두 시장 공략을 동시에 추구하다 보니 역량의 분산이 빚어졌다. 그 결과, 기업 사용자의 수준 높은 특화 수요를 충족하지 못했고 범용 시장의 소비자 이질성에 걸맞은 폭넓은 상품 구색을 갖추는 데도 실패했다.

이는 국내 플랫폼 환경에서도 목격된다. 종합주의 이커머스 플랫폼인 쿠팡은 식품과 식료품, IT 등 대중시장에서 확보한 소비자 기반을 발판 삼아 패션 시장에 진출했지만 유독 부진하다. 쿠팡이 패션 사업을 강화하려 패션 전문관 ‘C.에비뉴’를 연 지 2년여 지났지만 성과는 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신사와 지그재그, 에이블리, W컨셉 등 패션만 전문으로 하는 버티컬 커머스의 성장에 치이기 때문이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지난 6월 발표한 ‘온라인 쇼핑 멤버십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쿠팡에서 패션 의류와 잡화를 구입한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은 16%로 경쟁 이커머스 업체에 크게 밀렸다. 반면, 카테고리 전문몰에서 패션 의류를 소비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93%로 압도적이었다. 패션 잡화의 소비 비중도 64%로 다른 플랫폼보다 훨씬 높다.

플랫폼의 핵심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사용자 수 기반만 놓고 보면 쿠팡과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대중·틈새시장 소비자 특성의 차이와 플랫폼 기업에 요구되는 역량이 상이한 데서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대중시장 기반 종합주의 플랫폼은 상품 구색을 수평으로 끊임없이 확장하는 ‘롱테일 효과(잠깐용어 참조)’를 추구한다. 반면, 틈새시장은 수평적 확장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파고들어 소비자 선호에 맞는 깊이 있는 카테고리를 갖추는 게 생존에 유리한 전략이다.

틈새시장에 특화한 전문주의 플랫폼과 종합주의 플랫폼은 개방성을 대하는 관점도 다르다. 한 예로, 아마존식 성장 전략을 좇는 쿠팡은 성장 초기 상품 구색을 수평적으로 확장하며 높은 개방성을 띤 오픈마켓을 지향했다. 사용자 기반이 특정 수준에 도달하자 쿠팡은 직매입·직배송으로 상징되는 중앙 집중적인 생태계를 구축해 플랫폼 신뢰도를 다졌다. 반면, 패션 업체는 오픈마켓에 입점할 때 플랫폼 기업에 판매 전권을 넘기기보다 업체 스스로 판매 전략과 가격 결정권 등에 있어서 주도권을 갖기를 원한다. 중앙 집중적인 플랫폼 구조를 기반으로 가격과 배송 정책 등에 있어 독점적 권리를 확보하려는 쿠팡과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런 이유로, 쿠팡은 패션 부문에서 공급자와 사용자, 양쪽 기반을 다지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잠깐용어*롱테일 효과 IT 발달로 온라인 공간에서 보다 넓은 틈새시장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오프라인에서는 물리적 공간 확장에 제약이 따르지만 온라인에서는 ‘긴 꼬리’처럼 카테고리를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4호 (2022.08.31~2022.09.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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