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빌라 '집값 = 전세금'..깡통전세 주의보
# 신혼집을 알아보던 한동희 씨(36·가명)는 1년여 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보증금 3억1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곳에 2년간 살다 분양받아놓은 아파트에 입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전세로 계약한 집과 같은 건물, 같은 평형 빌라가 최근 2억8000만원에 매매됐다는 것을 알았다. 더군다나 요즘 집값이 떨어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조바심이 난단다. 계약 기간이 아직 1년가량 남아 있다는 한 씨는 “혹시나 전세 계약이 만료됐을 때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을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불안해한다.
#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인 금천구 가산동 ‘비즈트위트바이올렛5차’ 전용 12㎡(5평)의 경우 지난 7월 11일 9500만원(11층)에 매매 거래가 이뤄졌는데, 6일 뒤인 19일에는 같은 층·평형에서 1억2800만원(11층)에 전세 세입자를 받았다. 지난 8월 11일에는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18만원을 내는 반전세 계약 거래가 15층에서 이뤄졌다.
기준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로 최근 서울·수도권 집값 오름세는 잠잠해진 모습이다. 일부 지역 집값은 본격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드디어 집값이 안정돼간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지만 역설적으로 떨어지는 집값만큼 전세 세입자 불안감은 커지는 와중이다.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 비율)이 높았던 지역은 매매 가격이 떨어지면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속출할 위험이 크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깡통전세는 집주인이 집을 처분해도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주지 못할 위험이 큰 거래를 말한다. 통상 전세가율이 80%를 넘으면 깡통전세 위험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경매로 넘어가 한 차례 유찰되면 최저 낙찰가는 감정가의 80%로 떨어지는데, 여기서 주택에 대출이 없거나 세입자가 최우선 순위인 경우에 겨우 전세금을 지킬 수 있어서다. 유찰이 두 번 이상 이어지면 전세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질 수 있어 세입자 피해는 더 커진다. 전셋값이 매매가를 넘으면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도 가입할 수도 없다.

▶서울 25개구 중 21곳 ‘깡통전세’ 위험
▷강서·금천·양천 전세가율 90% 넘어
서울에서는 신축 다세대·연립주택(빌라)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깡통전세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보다 매매 거래가 잘 안 되는 빌라는 거래량이 적다 보니 정확한 시세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전셋값이 여전히 아파트보다는 저렴한 편이라 임차 수요가 많다.
서울시가 최근 공개한 ‘전·월세 시장지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시 신규 계약 빌라 전세가율은 평균 84.5%로 집계됐다. 신축 빌라가 많은 강서구(96.7%)와 금천구(92.8%), 양천구(92.6%) 등은 전셋값이 매매가의 90%를 웃돌아 깡통전세로 전락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관악구(89.7%), 강동구(89.6%), 구로구(89.5%)에서도 전세가율이 90%에 육박했다.
박현정 서울시 주택시장분석팀장은 “강서·금천·양천구는 최근 5년 이내에 신축한 빌라 비율이 높은 지역들”이라며 “신축 빌라는 거주 환경이 좋아 전셋값은 높게 형성되지만 투자 가치는 낮아 매맷값은 높게 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서구 화곡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아파트 매맷값과 전셋값이 너무 올라 빌라 전세 수요가 늘었는데, 강서구는 서울에서도 시세가 저렴한 편이라 전세 수요가 더 몰렸다. 신축 빌라는 매맷값과 전셋값이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강서구는 앞서 부동산 플랫폼 ‘다방’의 서울 신축 빌라 전수조사 결과에서도 높은 전세가율 탓에 깡통전세 위험 지역으로 꼽힌 바 있다. 강서구에서 이뤄진 전세 거래 694건 중 53.3%(370건)가 전세가율 90%를 웃돌았다. 이런 ‘깡통주택’은 화곡동(304건)에 대거 몰려 있다. 올 상반기 서울에서 거래된 신축 빌라 전세 거래 5건 중 1건은 전세가율이 90%가 넘는 ‘깡통전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깡통전세가 주로 신축 빌라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신축’이라는 이유로 전셋값을 높게 받는 거래가 성행해서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분양업자는 세입자만 들인 뒤 전세금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갭투자자에게 집을 팔아버리고, 갭투자는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세입자 보증금으로 집을 구입하게 된다”며 “갭투자로 집을 산 집주인은 다른 세입자를 구하기 전까지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의 10%를 넘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이 지역 주택 가격이 10% 하락하면 바로 깡통전세로 전락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파트는 괜찮을까. 서울의 경우 전체 신규 계약의 평균 전세가율이 54.2%, 갱신 계약은 38.3%로 연립·다세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반면 금천구는 아파트의 새로 쓴 계약의 전세가율이 79.9%에 달해 다른 자치구보다 깡통전세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수도권 외곽, 지방에서도 깡통전세 아파트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경기 파주시의 B아파트 전용 59㎡는 직전 매매 가격 1억6140만원보다 1800만원 비싼 1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또 경기 안양시 C아파트 전용 84㎡는 매매 가격이 4억2500만원으로, 전세 가격과 500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해 8400만원에 거래된 인천 계양구의 D아파트 전용 39㎡는 현재 9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집값이 꾸준히 올라준다면야 깡통전세가 속출할 우려가 없다. 문제는 집값이 내릴 때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거나, 갭투자로 집을 산 집주인이 다음 전세 계약자를 구하지 못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셋값이 오른 상태에서 집값이 조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전세가율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갭투자가 성행한 지역을 중심으로 깡통전세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주택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을 중심으로 집값이 하락하면서 전세금을 돌려주는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세 계약이 끝나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는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 건수와 금액은 1595건, 3407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다·최대 기록을 나란히 경신했다. 기간을 1~7월로 늘려 잡아보면 보증금반환 사고 금액은 427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066억원)보다 40%나 늘었다.

▶내 집도 깡통전세? 보증금 지키려면
▷보증보험·등기부등본 확인 필수
불안한 깡통전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깡통전세를 피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볼 것은 전세가율이다. 법적 분쟁도 불사하겠다면 모를까 우선은 깡통전세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나 단지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은, 그러니까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이 모두 상승하는 시기에는 전세가율 높은 지역이 ‘갭투자’하기 좋은 지역으로 인식되고는 했다. 갭투자는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크지 않은 아파트 등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식이다. 하지만 연일 상승세였던 주택 매매 가격이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는 보통 아파트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깡통전세가 될 위험이 크다.
올 6월 아파트 전세가율이 가장 높았던 서울 자치구는 구로구(64.4%), 관악구(63.7%), 강북구(63.6%), 중랑구(63.1%) 등이다. 아파트 전세가율이 70~80%대로 절정에 달했던 2016~2017년보다는 낮아졌지만 이후 이들 지역 집값 상승폭이 컸던 점을 감안하면 전세 가격이 내리지는 않은 셈이다. 경기도는 여주(84.1%), 이천(32.6%) 등 동남권이나 안성(75.5%), 파주(74.5%), 광주(73.2%)에서 전세가율이 유독 높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강남 지역이나 용산 지역은 집값이 내려도 깡통전세 가능성이 아주 적다.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용산구(49.9%), 송파구(51.9%), 강남구(52.5%) 전세가율은 서울 자치구 가운데 노원구(51.3%)에 이어 가장 낮고 서초구(56.8%)도 전세가율이 평균(57.4%) 이하다. 물론 이들 지역도 2년 전보다 전세 가격이 하락해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전세보증금을 떼일 염려는 없다. 최악의 경우 집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매매 가격이 높아 충분히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미 전세 계약을 마치고 거주 중인 세입자라면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통상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 세입자는 별도의 보증(보험)료를 낸다. 이는 전세자금대출이 보증기관의 보증서가 뒤따르는 보증부 대출이기 때문이다. 이때 보증의 종류는 ‘상환보증’과 ‘반환보증’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전세자금대출은 크게 주택금융공사(HF), 서울보증보험(SGI),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보증하는데 상환보증은 모든 대출에서 필수로 가입해야 한다. 상환보증에 가입하면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은행에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을 경우 보증기관이 세입자 대신 대출금을 상환해준다. 다만, 지금 같은 전셋값 하락기에 상환보증만으로는 걱정을 100% 떨쳐내기 힘들다. 남은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을 완전히 덜고 싶다면 반환보증이 제격이다.
활용할 수 있는 반환보증은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나 SGI의 전세금반환신용보험이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HUG나 SGI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전세금이 하락하거나 집주인 신용에 문제가 생겨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전세보증금은 걱정 없다. 단 전세 계약 기간 절반이 지나기 전에 가입해야 한다.
▶최후의 수단 임차인 경매
▷주택 강제경매 신청 1.5배 증가
문제는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다.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임차인이라면 마지막 수단으로 경매 신청을 고려해볼 수 있다. 실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강제경매를 신청한 임차인이 최근 늘어나면서 관련 경매 진행 건수도 지난해 대비 1.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임차인이나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신청한 강제경매 진행 건수는 총 983건이다. 지난해 상반기(659건) 대비 약 49%(324건) 늘었다. 빌라의 경우 493채가 임차인·HUG의 신청으로 강제경매가 진행됐다. 지난해 상반기(291건) 대비 70% 늘었다. 아파트는 286건에서 316건으로, 주상복합은 82건에서 174건으로 증가했다.
아무 때나 경매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입자는 전세 계약이 만료되기 최소 1개월 전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혀야 한다. 나중에 혹시 모를 소송을 염두에 둔다면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 좋다. 그런 후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전세보증금을 모두 돌려받지 못하면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지급명령 신청 후 상대방(집주인)이 이의 제기를 2주 내에 하지 않으면 확정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생긴다.
이때 집이 바로 경매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입자는 법원에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한다.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하면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하거나 주민등록을 옮겨도 전세금에 대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보증금 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동시에 집주인이 별도 담보를 잡지 못하게 하거나 경매로 넘길 수 있다는 압박을 줄 수 있다. 이 경우 전세보증금은 물론 지연이자,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에 소요된 비용까지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등기부등본에 임차권 등기가 기입됐는지 확인 후 이사해야 한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법적 절차에 따라 경매에 넘어간다고 해도 낙찰가가 낮으면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며 “임대보증금 반환청구소송까지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전세가율 확인, 반환보증보험 가입을 미리 해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4호 (2022.08.31~2022.09.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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