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년차인데 왜 건보 안돼요?"..두 남자 울린 '뼈아픈 차별' [가족의 자격②]
■ 가족의 자격
「 가족의 자격을 새로이 법원에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연(緣)을 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법원은 어떤 해답을 줄까요. 또 법의 공백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중앙일보가 새로운 가족의 자격을 묻습니다.
」
10년 차 커플, 결혼 4년 차 부부다. 퇴근 후엔 일상을 공유하고 주말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수다를 떤다. 걸음걸이 속도부터 입맛까지 한참 다르지만 이제는 양보하며 사는 게 더 편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부부가 아니게 된다.
함께 살 집을 마련할 때 신혼부부 대출 혜택은 그림의 떡이었고, 연말정산 소득공제도 다른 부부들보다 불리하다. 보호자가 될 수 없어 한 명이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면회도 갈 수 없고, 세상을 떠나면 장례를 치러줄 수도 없다. 다른 가족들은 서로가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면 약도 대신 처방받을 수 있다는데, 역시 이들에게는 예외다.
동성 부부(同性夫婦) 소성욱(31)·김용민(32)씨, 두 신랑 이야기다.
여성가족부가 2021년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주거와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를 가족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실혼이나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에 대한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 역시 70.3%다. 사람들의 생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이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편을 겪거나 손해를 입는 일을 따져보면 몇십 가지는 족히 넘는다고 한다.
“좀 무뎌진 것 같다가도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일이 자꾸 생겨요. 서울시청에서 무료로 결혼식장을 대관해주는데 규정부터 ‘남녀 부부’라고 돼 있더라고요. ‘아 우리에게는 이것도 안 되는구나’. 훅훅 들어와요.” (용민)
이들은 "한국의 다른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누리면서 살 것인지, 아니면 2등 시민으로 살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면 권리를 누리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소씨가 김씨의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되기 위한 소송부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건강보험공단에 "사실혼 배우자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신고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고, 지난 2020년 2월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소씨가 김씨의 배우자로서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기쁨은 8개월짜리였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공단은 지난 2020년 10월 피부양자 자격을 무효로 했다. 이후 공단이 소씨를 지역가입자로 보고 건강보험료를 청구하자, 소씨는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가족이 아니라서, 법원 서류도 대신 못 받았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자주 들어야 했던 질문은 "지역가입자로 내는 보험료도 매달 얼마 되지 않는데, 왜 굳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되어야 하느냐"였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돈 문제'지만, 누군가에게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뼈아픈 차별'이라고 이들은 이야기한다. 사실혼 배우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박탈된 상태로 살아가라고 한다면, 차라리 싸우는 삶을 택하겠다는 거다.
"피부양자 자격은 아니어도 지역 가입자로 건강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별로 손해 보는 게 없다? 아주 기본적인 차별에 해당하는 건데 어디서부터 어떤 설명을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요." (성욱)
1심에선 졌다. 법원이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7일 재판부는 “세계적으로는 혼인할 권리를 이성 간으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 점진적인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 사례를 언급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선 혼인의 의미를 확대해 해석할 수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이 부부와 유사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고 인정했지만, “법과 판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인식은 남녀 결합을 혼인의 근본 요소로 보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10년차 동성부부, 법은 인정 안했다 "건보 피부양 자격없어" )
두 사람은 항소했다. 소씨는 “재판부가 국제적인 흐름을 언급하면서도 사실혼조차 인정하지 않은 것은 사회의 발전과 인권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법부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2심 재판은 오는 9월 23일 시작된다. 재판의 원고인 소씨가 집에 없는 사이 재판부 서류가 송달됐지만, ‘법적 가족이 아닌’ 김씨는 이 서류를 대신 받아주지도 못했다.
“동성 사실혼 인정해 일상적 차별 없애야”
대리인단은 2심 재판부가 이 사건에 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록 판례가 혼인을 남녀 사이 관계로 규정하고 있더라도, 사실혼 관계는 더 넓게 정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동성 커플이 ‘이성 사실혼 부부’에 비해 누리지 못하고 있는 헌법상 주거권, 노동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등을 보장하려면, ‘동성 사실혼’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대리하는 김지림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사실혼 관계까지 남녀로 한정 짓는 대법원 판례나 헌법재판소 결정은 없다”면서 “이 사건은 추가적인 입법이나 법 개정 없이도 법원이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법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법원이 전향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계획이다.
한국처럼 동성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국가들도 사회보장제도에서만큼은 동성 커플의 배우자성을 인정한다. 지난 2019년 홍콩 항소법원은 공무원인 렁춘퀑(Leung Chun Kwong)씨의 동성 배우자가 공무원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피부양자라고 판단했다. “공무원사무국이 피부양자 혜택 신청을 거부한 건 홍콩 기본법상 평등권 조항을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호주나 콜롬비아 역시 동성혼을 합법화하기 전부터 동성 배우자의 연금 수급권을 인정했다.
모두를 위한 싸움
좋은 동료에서 술친구로, 남자친구로, 인생의 반려자로. 두 사람이 가족이 되는 과정은 꽤 자연스러웠다. 이들은 '다양한 생김새를 가진 가족'이 존중받는 사회 역시 순리라고 믿는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거절당한 경험을 한 적이 없어요. 예식장에서도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으니 괜찮다고, 계약서에 있는 신랑 신부 구분을 펜으로 찍찍 그어주시는 거예요.” (성욱)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땐, 과거 윗세대 성 소수자들이 느꼈을 어려움에 대해서도 기억하려 한다.
“저희는 결혼식도 하고 소송도 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10~20년 전에 같이 사셨던 커플은 아예 그런 꿈을 못 꾸는 거예요. 꿈을 꿀 수 있다는 선택지조차 없었던 거죠.” (용민)
두 사람은 자신들의 권리 투쟁이 ‘우리만을 위한 싸움’은 아니라고 말한다. 동성 커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확장하는 건, 비혼 동거 가족이나 이성 사실혼 부부 등 다른 ‘별난 가족’들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모두가 평등하게 자신의 헌법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싸움이라는 취지다. 이들이 이번 소송을 넘어 민법 개정,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빈민과 홈리스의 주거권 투쟁이 사실은 모든 사람의 주거권과 연결돼요. 이주민이나 난민의 투쟁이 우리가 어떤 시민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해 영향을 미치고요. 여성들과 성 소수자들의 투쟁이 모든 사람의 성 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성욱)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회 운동이 되는 부부 살이. 힘들지는 않으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오히려 재미있다, 즐기고 있다”고 답한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가족의 자격은 뭘까. ‘서로가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성욱)’, ‘서로를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헌신하는 관계(용민)’라는 답을 정성스레 적어왔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내미는 가족의 자격 역시 이와 비슷하길 꿈꾼다. “가족의 생김새도 다양한 거잖아요, 몸과 마음의 생김새가 다양한 만큼.”(성욱)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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