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높이고, 성장률 낮추고..한은, 경기 침체 우려 속 베이비스텝

안효성 2022. 8. 2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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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물가 압력 속 높아진 경기 침체 가능성에 한국은행이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택했다. 경기 침체 우려에도 물가 안정을 위해 당분간 긴축의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겠다는 뜻도 명확히 했다. 한은은 이날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5.2%로 높이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6%로 낮춰 잡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기자협회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5일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상 첫 4연속(4·5·7·8월) 인상 결정이다. 지난 4월과 5월에 각각 0.25%포인트, 지난달 0.5% 포인트(빅스텝) 인상에 이은 추가 인상이다. 이날 금통위의 금리 인상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이창용 총재가 그동안 밝혀온 ‘점진적으로 0.25%포인트씩 인상’이라는 경로에서도 벗어나지 않았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문(통방문)을 통해 “국내외 경기 하방 위험이 증대됐지만 높은 수준의 물가 상승 압력과 기대인플레이션이 이어지고 있어 고물가 상황 고착을 막기 위한 정책 대응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인상으로 한국 기준금리와 미국 기준금리(연 2.25~2.5%) 상단이 같아졌다. 다만 Fed가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최소 0.5%포인트 인상할 것이 유력한 만큼 한·미 기준금리 역전은 상수(常數)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 격차가 커지면 외국인 자본 유출을 자극해, 약세를 이어가는 원화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 총재는 “한·미 금리 역전만으로 (자본유출 등) 우려가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금리 인상이 지금 현재 올라가고 있는 환율(원화가치 하락) 제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는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 보다 6.9원 오른(환율 하락) 달러당 1335.2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한은은 수정 경제전망도 발표했다. 물가 상승 압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의 4.5%에서 5.2%로 상향 조정했다.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1998년 1월(9.0%)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은은 내년 물가 전망치도 2.9%에서 3.7%로 큰 폭으로 올렸다.

한은 김웅 조사국장은 “기상여건 악화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 등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과 거리 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도 높아진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물가 정점이 빨라질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지난 2개월 동안 국제 유가가 하락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당분간 물가(상승률)가 5%대를 유지하는 등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어, 정점을 지났다는 것이 물가가 안정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경기에 대한 우려는 커졌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7%에서 2.6%로 낮춰잡았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4%에서 2.1%로 0.3%포인트 낮췄다. 이날 통방문에는 '경기 하방위험이 커졌다'는 평가도 등장했다. 이 총재는 “하반기 이후 글로벌 경기 둔화 영향으로 수출 둔화 폭이 점차 커질 것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는 지난해 흑자 규모(883억 달러)의 절반에 못 미치는 37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내년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340억 달러)로 올해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지만, 여전히 국제통화기금(IMF)이나 한덕수 총리가 언급한 성장률 전망치(2.3%)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과 관련해 이 총재는 “지난 2개월간 민간 소비가 놀랄 정도로 좋았다”고 밝혔다. 한은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을 5월 전망치(3.7%)보다 높은 4.0%로 예측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물가·고금리로 소비 여력이 줄어 당초 기대만큼 민간 소비 회복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며 “기업 투자가 줄고 정부도 재정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만큼 수출 둔화를 상쇄할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요인에 따라 한국 경제 상황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불확실성’이란 표현을 24차례 사용했다. 향후 금리 인상 등의 전망도 3개월을 뜻하는 '당분간'으로 한정했다.

이 총재는 “(경기) 경착륙 없이 물가 안정을 달성할 수 있느냐는 외부충격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국제) 유가가 더 큰 폭으로 뛰거나, 중국이나 미국 경제가 나빠진다면 한은이 그 문제를 컨트롤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물가 상승) 우려는 커졌다. 다만 이 총재는 “전 세계 성장률이 다 낮아지는 데 한국만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매우 많은 무리가 따른다”며 “한국 성장률이 2%대 이상을 유지하면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만큼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이다.

시장의 관심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언제 멈추느냐다. 이 총재는 “당분간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하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올해 연말 금리수준이 연 2.75~3%라는 시장 전망도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채권 금리는 급등(채권값 하락)했다.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0.22%포인트 오른 연 3.531%에 장을 마감했다. 3년물 국채 금리가 3.5%를 넘어선 건 지난 6월 30일(연 3.55%) 이후 처음이다.

한화증권 김성수 연구원은 “한은이 성장보다 물가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이번 회의는 매파(통화 긴축)적으로 해석된다”며 “금리 인상 사이클이 2023년 초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김연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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