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분할 결사반대' 뿔난 DB하이텍 개미들..지배구조 개편 악용 논란에 속 타는 DB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DB하이텍의 사업부 분할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분할 방식과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소수 지분을 모아 DB하이텍을 상대로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 제기 신청을 준비하는 등 소송전을 불사할 태세다. 이들은 LG와 SK처럼 ‘물적분할-자회사 상장-모기업 디스카운트’의 악순환을 우려하며 집단 행동에 나서고 있다.
최근 DB하이텍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파운드리 사업부와 설계(팹리스)를 담당하는 브랜드 사업부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분사를 포함해 다양한 전략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 분사의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 등은 특정하지 않았다.
DB하이텍 주력 사업은 반도체 위탁생산을 뜻하는 파운드리 분야다. 이번에 분사를 추진하는 사업부는 반도체 설계(팹리스)를 담당하는 브랜드 사업부다. DB하이텍이 분사를 추진하는 것에는 나름의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우선, 반도체 위탁생산과 설계는 단일 조직 아래서는 함께 성장하기 힘든 구조다. 현 조직 구조로는 글로벌 팹리스 업체의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하는 것부터 난제다. 글로벌 팹리스 업체가 반도체 핵심 자산인 설계도를 경쟁 기업인 삼성전자에 맡기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과 같은 이유다.
반도체 산업 환경도 종합주의 조직보다는 전문주의 조직이 생존에 더욱 유리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DB하이텍은 종합 반도체(IDM) 회사인 삼성전자와 달리 8인치 웨이퍼 기반의 시스템 반도체에 주력하는 전문주의 조직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가 적용되는 각종 IT 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표준화된 생산능력으로는 특화한 수요에 대응하기 힘들어졌다. 가령, 자율주행이나 인공지능(AI) 등의 영역에 쓰이는 반도체는 설계와 디자인이 모두 제각각이고 설계와 공정 난도가 무척 높다. 이에 따라, 반도체 산업은 종합 반도체 중심 IDM 모델에서 팹리스(Fabless) 또는 팹라이트(Fablite) 모델로 분화 추세가 뚜렷하다. DB하이텍 역시 설계 역량이 요구되는 별도 사업부 분할로 조직 체계를 정비함으로써 전방 산업의 맞춤형 수요 대응 역량을 고도화하겠다는 판단이다.

▶DB하이텍 지분가치 급등
▷실익 없는 지주회사 전환 이슈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소액주주가 분할 추진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개인 투자자들이 반발하는 배경은 DB하이텍 분할 추진이 DB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린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 때문이다.
이번 분할 추진과 맞물려 논란의 단초가 된 것은 공정거래법상 DB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다. 지난 5월 DB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주사인 DB Inc.(이하 DB)의 지주회사 전환을 통보받았다. 공정거래법 제18조 등에 따르면 지주회사는 매년 말 기준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이어야 한다. 자회사인 DB하이텍 지분가치(지분 12.4%) 급등으로 DB의 지주회사 전환 이슈가 불거진 것이다. 2020년 말 기준 DB 자산은 4843억원이었으나 지난해 말 기준 6104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DB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가치가 2812억원에서 4010억원으로 급증한 덕분이다. 공정위는 DB 측에 2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DB그룹 입장에서는 지주회사 전환 통보가 달갑지 않다. 그룹 차원에서 이를 의도한 것도 아녔고 지주회사 전환의 실익도 거의 없다. 특히 일반 지주회사는 금산분리 원칙을 따라 금융업, 보험업 등의 자회사를 둘 수 없다. DB그룹은 이미 DB를 중심으로 사실상 지주회사 체제를 완비한 데다 손보업계 3위 보험사를 거느렸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가 되면 자회사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점도 마뜩잖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DB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을 회피하려 DB하이텍 가치를 고의로 낮춰 분할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시장에서 확산 중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DB하이텍을 지배하는 DB가 2024년 1월 1일 이전까지 관련 요건에 따라 DB하이텍 지분을 30% 확보해야 한다. DB는 DB하이텍 지분을 17.6%가량 추가로 사들여야 하는데 올 상반기 기준 DB의 현금성 자산은 340억원대에 불과하다. DB하이텍 최근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상당 수준의 차입금을 일으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DB 측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DB하이텍 기업가치를 낮추거나, 채권 발행으로 부채를 늘려 총자산을 키우는 방식으로 자회사 지분가액 합계를 50%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DB의 부채를 일시적으로 늘려 자회사 지분가액 합계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방식은 미래에셋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을 회피하는 데도 활용됐다.
문제는 어느 선택지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시장은 DB하이텍 기업가치가 중장기적으로는 우상향할 것으로 내다본다. DB하이텍은 전문주의 조직으로 고전압·고전력 전력 반도체 칩 성능 개선에 중요한 BCD(Bipolar·CMOS·
DMOS) 공정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전력 반도체를 만들려면 아날로그 신호 제어 바이폴라(Bipolar) 공정, 디지털 신호 제어 코모스(CMOS) 공정, 고전력 관리 디모스(DMOS) 공정을 하나의 칩으로 구현한 BCD 공정 기술 등이 꼭 필요하다. 주력 시장 영역도 종합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 등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DB하이텍 주가가 오를 때마다 DB의 부채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하는데도 한계가 따른다. 인위적으로 DB하이텍 주가를 떨어뜨리는 것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에 대해, DB하이텍 측은 설계 사업부 분사 검토와 지배구조 개편은 전혀 연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DB하이텍 측은 “브랜드 사업부 분사는 과거부터 검토된 사안으로 각 사업부의 경쟁력 강화가 주된 목적”이라며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서는 대책을 마련 중이고 브랜드 사업부 분사 검토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DB 측이 DB하이텍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DB그룹은 사실상 지주회사인 DB의 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비용과 DB하이텍의 중장기적인 가치를 지속적으로 비교하며 지주회사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DB하이텍은 어떤 회사
8인치 웨이퍼 주력…6개 분기 연속 최고 실적
DB하이텍은 1997년 김준기 전 회장이 설립한 동부전자가 모태다. 2001년 사업 방향을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스템 반도체로 바꾸고 아남반도체 인수, 동부한농과의 합병 등으로 현재의 DB하이텍이 됐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1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DB하이텍은 2014년부터 흑자로 돌아서며 환골탈태했다. 2016년에는 세계 11위 파운드리 회사에 이름을 올렸고 현재 10위에 안착했다. DB하이텍이 주력하는 제품은 8인치 웨이퍼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세계 굴지의 파운드리 업체가 부가가치가 높은 12인치(300㎜) 생산에 집중하면서 자동차·가전·PC 등에 쓰이는 8인치 웨이퍼는 만성적인 공급난에 시달렸다. 이 틈을 타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8인치 생산에 주력했던 DB하이텍은 큰 수혜를 누렸다.
DB하이텍은 6개 분기 연속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올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4357억원, 영업이익은 213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보다 각각 59%, 162%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률은 49%에 달했다. 최고 실적 행진에도 DB하이텍 주가는 신통치 않다. 분할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주가를 끌어내렸다. 최근 주가는 올 초 고점 대비 반 토막 난 상태다.
[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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