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약물중독·수면장애, 집에서 고친다..신약 블루오션 '디지털 치료제'

류지민 2022. 8. 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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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복용이나 주사제 투여 없이도 병을 치료하는 세상이 올까.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런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바로 ‘디지털 치료제’다.

미국 스타트업 아킬리인터랙티브랩스가 개발한 ‘인데버RX(EndeavorRX)’는 아동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비디오 게임이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게임 속 캐릭터를 움직여 정해진 코스를 돌면서 장애물을 피하고 목표물을 수집하는 방식이다. ADHD 진단을 받은 미국 8~12세 아동 중 약물 치료 경험이 없는 348명을 대상으로 인데버RX 게임을 4주간 주 5회, 하루 25분씩 플레이하도록 한 결과, 시험 대상의 73%에 달하는 어린이의 주의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인데버RX는 뇌의 인지 기능을 강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인정받아 지난 2020년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다.

디지털 치료제는 말 그대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치료 기법을 가리킨다. 게임을 비롯해 소프트웨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웹 서비스, 가상·증강 현실(VR·AR) 기기, AI 기반 도구는 물론 최근 급부상한 메타버스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그 효능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기술이 활용된다. 디지털 치료제는 1세대 치료제인 합성의약품과 2세대 바이오의약품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분류되기도 한다.

역사는 짧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정부가 올해 2월 발표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산업 육성 전략’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를 포함한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0년 기준 1525억달러(약 200조원) 규모에서 2027년까지 연평균 1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 디지털 치료제는 약물중독, 우울증, ADHD 등 정신질환이나 신경질환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당뇨병, 암, 천식 등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디지털 치료제가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 미국 FDA(식품의약국)로부터 아동 ADHD 개선에 효과가 있는 디지털 치료제로 승인 받은 아킬리인터랙티브랩스의 모바일 게임 ‘인데버RX’. (아킬리인터랙티브랩스 제공)

▶독성·부작용 없어 각광

▷비대면 진료로 실시간 환자 관리 가능

디지털 치료제는 비대면 치료가 가능하며 독성이 없고 부작용이 적어 안전하게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 의료·헬스케어 대안으로 각광받는다. 체내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중재(Behavior Intervention)를 통해 치료 효과를 개선하는 것으로, 기존 치료법에 비해 부작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또 시간과 비용에 구애를 받지 않고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건강 관련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도 디지털 치료제의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 중독 등 정신질환, 중추신경계(CNS)질환, 암 등 만성질환 분야에서 다양한 디지털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화학적 약물치료를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김석주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향후 원격 의료 등 이슈가 해결되고 보험이나 수가 등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면 확장성이 굉장히 높을 것”이라 강조했다.

국내서도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다. 지난해 10월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디지털 치료제 검증을 위한 디지털치료학회가 출범했고 정부도 디지털 치료제 플랫폼 개발을 위해 향후 4년간 정부 140억원, 민간 149억원 등 총 289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한미약품, SK, 동아제약, 한독 등은 디지털 치료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한미약품그룹과 KT는 최근 디지털 치료제 전문기업 ‘디지털팜’에 합작 투자를 결정했다. 디지털팜은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창업한 회사로 알코올, 니코틴 등 중독 관련 분야와 ADHD 분야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한다.

SK와 신약 개발 계열사 SK바이오팜은 지난 5월 공동으로 미국 디지털 치료제 기업 ‘칼라헬스’에 투자했다. SK바이오팜은 칼라헬스와 협력을 바탕으로 중추신경계질환에 집중된 신약 개발 역량을 디지털 치료제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와 한독 역시 각각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위해 메디컬아이피, 웰트에 지분을 투자하고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기업 임상 진행 활발

▷시야장애·호흡기질환·불면증 등

직접 개발에 뛰어든 기업도 있다. 현재 식약처 허가를 받고 디지털 치료제로 임상 중인 국내 개발 업체는 뉴냅스, 라이프시맨틱스, 웰트, 에임메드, 하이 등 5곳이다.

뉴냅스는 2019년 7월 국내에서 가장 먼저 디지털 치료제 확증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았다. 현재 뇌 손상 후 시야장애를 개선하는 ‘뉴냅비전’을 개발하고 있다. 확증 임상시험은 뇌손상 후 6개월이 경과한 시야장애 환자 84명을 대상으로 가상현실 기기에 의한 특정 자극을 통해 시각정보를 인지하도록 뇌를 훈련시킨다.

라이프시맨틱스는 폐암·만성폐쇄성 폐 질환자가 집에서 호흡기 재활을 할 수 있는 처방형 디지털 치료제 ‘레드필숨튼’을 개발 중이다. 현재 호홉기질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임상을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이 확인될 경우 국내 최초의 호흡기 재활 분야 디지털 치료제가 될 전망이다.

웰트는 지난해 9월 식약처로부터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필로우RX’에 대한 확증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필로우RX는 환자로부터 수집한 생활 습관 데이터와 수면 일기를 기반으로 맞춤형 수면 일정을 제시한다. 환자의 디지털 생체신호뿐 아니라 병원 데이터와 연동해 투약 정보, 기저질환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처방을 목표로 한다.

에임메드도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솜즈(Somzz)’ 개발 단계에 들어가 있다. 솜즈는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법(CBT-I)을 모바일 의료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적용·변환한 디지털 치료제다. 환자가 모바일 앱을 통해 매일 수면 일기를 작성하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수면 습관 교육, 자극 조절, 수면 제한, 인지적 기법 등 불면증 환자의 행동을 중재 또는 제한하고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하이는 강남세브란스병원과 협력해 범불안장애 디지털 치료제 ‘엥자이렉스’를 연구한다. 지난해 12월 식약처로부터 확증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엥자이렉스는 수용전념치료(ACT)와 자기 대화를 기반으로 3차례 진행된 연구자 임상에서 그 효용성을 인정받았다.

▶성장 가능성 높지만 걸음마 단계

▷처방·보험 등 명확한 기준 있어야

높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국내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디지털치료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는 1억2000만달러로 세계 시장 21억달러에 비해 약 20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20여종 제품이 FDA 허가를 받아 만성질환 관리에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임상만 진행 중일 뿐 아직 식약처 허가를 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없다.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디지털 치료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것은 2020년 8월이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처방 기준이나 보험 적용 관련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수가 문제도 남아 있어 개선해야 할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

디지털치료학회 관계자는 “최근 5년간 디지털 치료 관련 정부 R&D 투자가 연평균 25%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런 투자가 반짝 지원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며 “디지털 치료제가 보편화되면 환자들이 자신의 질환을 관리할 수 있게 되고, 의사들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효과적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3호 (2022.08.24~2022.08.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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