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작가 정은혜 "포옹은 경계를 허무는 힘·사랑이에요"

서믿음 2022. 8. 2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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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다 얼굴이 예쁜데, 왜 본인이 못생겼다, 얼굴을 깎아라 그래요? 자기더러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책 ‘은혜씨의 포옹’에 나오는 말이다. 저자는 정은혜 작가. 발달장애인으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와 큰 주목을 받은 이다. 세상은 그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그는 편견을 걷어내고 세상을 바라본다. 모든 이가 저마다의 매력으로 ‘존재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유난히 포옹을 좋아하는 은혜씨는 많은 사람을 안고, 더 나아가 세상을 품는다. 그는 “사람을 안아주는 게 좋아요. 사람을 안으면 제가 따뜻해지죠. 따뜻하면 기분이 좋아요. 포옹은 사랑이에요”라고 말한다.

24일 인사동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은혜씨 포옹’ 출간기자간담회에는 정은혜 작가와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가 동행했다. 토포하우스는 은혜 작가의 개인전 ‘포옹전’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한 차례씩은 전시회를 열려고 했고, 올해도 고심하던 중 유난히 (은혜씨가) 포옹하는 사진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주제를 포옹으로 잡았다. 장차현실 작가는 “포옹은 사람 간에 경계를 허무는 몸짓이다. 대개 (비정상인은) 손 하나를 잡는 데도 여러 생각을 하지만, 은혜 작가는 그런 게 없다.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힘이 있다”고 전했다.

은혜 작가는 “무학력”이다. 어린 시절 비정상인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일반학교에 보냈다가 적응하지 못해, 작은 학교로, 시골 분교로, 대안학교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힘든 시기를 경험했다. 20살 무렵 “동굴”(자기 방)에 스스로를 가뒀을 무렵에는 틱 장애, 조현병 증상까지 나타났다. 거기에 그전에 지하철로 오가며 받았던 (장애인을 대하는 데 낯설었던 이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기인한 시선강박증까지. 그때는 “은혜씨로 인해 가족의 행불행이 결정되는 시기”(장차현실)였다.

은혜씨가 작가로 변모한 계기는 2013년 엄마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다. 용돈벌이를 위해 시작했던 일인데, “애들이 너무 잘 그리니까 샘나서” 그리기 시작하면서 재능을 발견했다. 2016년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캐리커처 부스를 운영하면서부터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온전한 은혜로 존재”하면서 틱 장애와 시선강박증이 사라졌다. 캐리커처를 그리며 약 4000명의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사람들의 시선으로 생긴 마음의 병이 사람들의 또 따른 시선으로 치유를 낳았다.”

간혹 캐리커처가 너무 못생겼다고 항의하는 이도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장차현실 작가도 처음엔 기존 미술 규칙을 가르치려 들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은혜 작가의 작법을 인정했다. 입시미술의 기준에 맞지 않을 뿐 어떤 면에서는 더 뛰어났으니까. 은혜 작가 역시 “내 그림엔 실수 없어요. 틀린 적 없어요”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은혜 작가가 특별한 경우라고 할 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나름의 환경이 마련된 건 사실이지만, 사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대다수가 미술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 장차현실 작가가 2108년부터 스무명 남짓한 발달장애인들을 모아 예술 활동을 벌이는 이유다. 달력 뒷면에, 어린이 스케치북에 ‘남다른 그림’을 그렸던 이들이 이제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이후 은혜 작가의 삶은 격변했다. 정확히는 은혜 작가는 그대로 인데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미쳤나할 정도”(장차현실)로 은혜 작가를 향한 세상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한몫했다. 장차현실 작가는 “우영우 캐릭터가 장애인이 대중적으로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 좋다. 그 관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 소중한 계기”라고 말했다.

작가로서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은혜 작가는 엄마에게 1순위다. 엄마는 “예전에는 일도, 인생도 성공하고픈 욕망이 있었는데 오래 전에 내려놨다”며 “지금은 은혜의 붓을 빨아 주고, 물통에 물을 받아주는 일을 하고 있고, 그게 좋다”고 전한다. 하지만 엄마로서는 은혜 작가에게 자신이 1순위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33살 은혜가 스스로 끌어가는 세상이 있어야 한다. 저는 빗겨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게 가능해지는 때는 우리 한국사회 복지가 잘 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은혜 작가의 개인전시회 ‘포옹전’은 이달 30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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