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채굴보다 환경"..전기차 성장 변수 되나 [글로벌포커스]

박병희 2022. 8. 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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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개발, 환경·생태계 훼손 논란..리튬 생산에 필요한 물, 구리의 40배
남미 자원 민족주의도 생산 발목..볼리비아 국유화 실패로 생산량 제로
지난 1월7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리튬 채굴권 계약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AF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리튬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리튬이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만큼 전기차 시대를 맞아 앞으로 유럽에서 포르투갈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북부의 주요 광산 중 하나인 바호주 리튬 광산 인근 마을 코바스 두 바호주에서는 몇 년째 바호주 광산 소유주인 영국 광산기업 서배너리소시스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현지 마을 주민들은 환경과 생태계 훼손을 이유로 광산 개발을 반대한다.

서배너에 따르면 광산 개발을 위한 환경영향 평가 결과를 2000년 5월 당국에 제출했고 1년 뒤 1차 승인도 받았다. 하지만 최종 승인은 아직 받지 못했다. 포르투갈 규제 당국은 지난달 초 추가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고 결정했고 이날 9년간 재임한 데이비드 아처 최고경영자(CEO)는 광산 개발 지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발표했다. 서배너는 리튬 생산 개시 시기를 현재 2026년으로 늦춘 상태다.

◆리튬 광산 개발, 환경 훼손 논란=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면서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바호주 광산의 사례에서처럼 환경 훼손과 생태계 파괴를 이유로 광산 개발이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의 원료인 리튬이 되레 환경 파괴 요인이라는 역설적인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6월 리튬 아메리카스가 네바다주 타커 패스 리튬 광산 개발 계획을 연기했다. 해당 광산 개발 계획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승인이 났다. 하지만 환경론자들은 광산 개발로 인근 꿩과 야생동물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 연방법원은 트럼프 정부의 개발 허가가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타커 패스는 미국 최대 리튬 광산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개발이 이뤄지면 47만5000대 배터리 생산이 가능한 연간 3만t의 리튬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네바다주 훔볼트 카운티에 미국 최대 리튬 매장지로 알려진 타커패스 리튬 광산 개발을 반대한다는 뜻의 '리튬보다 삶'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있다. [사진 제공= 신화연합뉴스]

올해 초에는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BYD)가 칠레 정부로부터 리튬 광산 계약을 따내자 현지 주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현지 주민들은 리튬 광산 개발이 식수 부족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며 계약 철회를 요구했다. 호주에 이어 세계 2위 리튬 생산국인 칠레에서 구리 1t을 생산하는 데에는 물 70㎥가 필요한 반면 리튬 1t 생산에는 40배에 달하는 물 2800㎥가 필요하다. 칠레 대법원은 정부가 현지 주민들과 협상을 우선하지 않았다며 비야디와의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포르투갈 바호주 마을 주민들도 최근 시위 수위를 한층 높였다. 올해 유럽 대륙 전체가 극심한 폭염으로 고통받으면서 리튬 광산 개발 시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남미 자원 민족주의= 남미에는 세계 리튬 매장량의 55%가 집중돼 있는 리튬 트라이앵글이 존재한다. 리튬 트라이앵글은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3개국에 걸쳐 있는데 면적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비슷하다. 이들 남미 국가의 자원 민족주의도 리튬 생산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미국 지질조사국(USUG)에 따르면 볼리비아는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자원량을 따질 경우 2100만t으로 980만t의 칠레보다 많다. 하지만 국유화 실패로 볼리비아에서는 현재 리튬이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볼리비아 정부는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재임 때인 2008년 리튬 산업을 국유화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리튬을 바탕으로 볼리비아를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국으로 만들겠다며 국영 리튬 회사인 YLB를 설립하고 리튬 추출을 위한 공장과 기반 시설 건설에 9억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리튬 국유화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YLB에 따르면 지난해 볼리비아 탄산리튬 생산량은 540t에 불과하다. 이는 칠레가 하루 반 만에 생산할 수 있는 양에 불과하다.

2020년 잠시 YLB 경영을 맡았던 후안 카를로스 줄레타는 기술 부족 탓에 YLB가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회수율이 9%에 불과하다며 상업적으로 리튬을 생산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칠레의 대형 리튬 광산업체 2곳의 회수율은 5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에서도 리튬 산업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 3월 취임한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국영 리튬 회사 설립을 공약했다. 또 칠레 새 헌법 개정안이 9월 국민 투표를 통과할 경우 환경 규정과 원주민의 광산 개발에 대한 권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 헌법은 칠레를 생태적 국가로 규정하고 양성평등과 원주민 권리, 사회보장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나마 리튬 트라이앵글 국가 중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리튬 산업이 향후 전망이 밝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아르헨티나의 리튬 생산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2030년까지 리튬 공급난= 리튬 생산을 둘러싼 여러 논란 탓에 리튬 수급난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상장사 기준 미국 최대 리튬 생산업체 앨버말의 켄트 마스터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리튬 생산의 장기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며 공급난이 7~8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앨버말 분석에 따르면 과거 리튬 생산량은 항상 예상보다 적었으며 실제 생산량이 예상치보다 최대 25% 적었던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가 전 세계에 매장돼 있는 반면 리튬은 남미, 호주, 중국 등 매장지가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절반 이상이 매장돼 있는 남미가 전기차 시장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산 개발에서 실제 리튬을 생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암석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남미는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한다.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면 생산비용은 적게 들지만 광산 개발에 대락 8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공급난 속에 수요는 폭발하면서 현재 리튬 가격은 2021년 초보다 7.5배가량 올랐다. 유럽연합(EU)의 공동연구센터(JRC)는 2050년까지 리튬 수요가 현재 소비량의 60배로 늘 것으로 추산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감축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서둘러야 하는 EU는 리튬, 코발트, 흑연 등 친환경 시대에 필요한 원자재의 채굴 및 생산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는 새로운 원자재법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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