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종화 2022. 8. 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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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탓이다.

평소 법조문, 공문서의 어색하고 딱딱한 문장들이 국어 파괴의 주범 중 하나라고 굳게 믿어왔다.

중소기업·벤처를 담당하다 보니 그 제한, 규제에 울화통을 터뜨리는 기업인들을 많이 만난다.

지난 17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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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이게 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탓이다. 평소 법조문, 공문서의 어색하고 딱딱한 문장들이 국어 파괴의 주범 중 하나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아니함이 아니하고 류의 정신 혼미해지는 문장도 사랑스럽고 뿌듯한 주인공이 찰진 운율로 읊으니 꽤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조문 해석을 두고 설득 논박하는 그 이성적인 의사소통의 모습은 우리가 목말라하는 공정성, 합리성의 욕구를 채워주는 감동마저 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법대로 해보자’ 하는 말의 몰상식과 폭력성은 너무 싫지만, 약자와 정의의 편에 서서 법대로 하자 하는 판타지가 통쾌하기도 했다.

가능한 법을 잘 몰라도 되는 채로 살고 싶지만, 법 모르고 법 없이 살기란 불가능하다. 이미 우리 삶, 일상적인 행동 세세한 부분까지도 매우 촘촘한 법률, 규칙, 지침들로 제한된다. 중소기업·벤처를 담당하다 보니 그 제한, 규제에 울화통을 터뜨리는 기업인들을 많이 만난다.

전문적인 식견, 판단력이 있는 많은 이들이 참여해서, 충분한 의견 청취, 토의와 토론을 거치며 앞뒤 사정과 논리를 따진 끝에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이 만들어질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상당히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지난 17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가 열렸다. 중소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개선안을 제안하는 자리로, 정부 측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유제철 환경부 차관 등이 참여했다.

이때 한 총리에게 전달된 484쪽 분량의 '규제개혁 과제집'에는 환경, 입지, 인증, 신고, 창업, 인력, 금융·세제 등 11개로 분류된 229건의 규제 애로사항이 담겨 있다. 분량이 무시무시했지만 끈기를 내어 훑어보니, 예를 들면 이런 지적들이다.

2020년 7월에 환경오염 관리 규정이 강화되면서 다수의 아스콘(아스팔트콘크리트) 업체들이 단속기준을 못 맞춰 불법운영 시설이 될 상황이라 유예를 호소했다. 현재 기술로는 법에서 정한 수준까지 유해물질을 저감시킬 수가 없어 환경부가 2022년부터 3년간 오염방지시설 기술개발 연구용역을 하고 있으니 그때까지 만이라도 봐달라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정해 고시하는 식품 표시기준은 소비자 보호와 직결되는 사항이 아닌 글자 자간 설정, 단락 변경 같은 표시방법이 수시로 바뀐다. 식품업체는 그때마다 기존 포장재는 못쓰게 되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등의 불편이 크니, 변경을 자제하거나 있는 포장재를 소진할 수 있게 유예기간을 달라고 한다.

의료기기 유통구조를 개선하고자 의료기기가 제조사에서 도소매점, 병원 등으로 납품될 때마다 유통업체들이 식약처에 보고를 하게 한 제도가 붕대, 체온계 같은 소모성, 저위험성 품목에까지 확대 적용됐다. 영세업체들의 일손 부족이 가중된 데다, 의료기 명칭, 규격 등 정보가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아 혼선이 크니, 보고품목을 선별해주고, 등록 시스템도 개선해달라는 요청이다.

규제당국이 내세운 다수 국민의 권익보호라는 목적은 거창한데, 앞뒤가 안 맞거나 실효성이 참 빈약하다. 시행령 한 줄이 여러 소상공인 중소기업인의 비명을 부른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제대로 하려면 작은 부분까지 챙겨봐야 한다. 숙제를 받아든 정부는 더 미루지 말고 실질적인 개선성과를 내주기 바란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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