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정치공학적 발상만 난무하는 여야 비대위

박정태 2022. 8. 2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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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승리한 집권당이 당대표
몰아내기 위해 스스로 비정상
체제 만든 것은 전례없는 일

당권 둘러싼 이준석·윤핵관
사생결단 싸움은 당의 운명을
법원에 맡기는 비극으로 귀결

민주당은 꼼수 당헌 개정으로
이재명 방탄복 마련하고 강성
당원 운영 관여로 사당화 완성

비대위에 성찰과 혁신은 없고
변칙과 편법 가득차…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뻔뻔한 작태

지금 여야 정당은 정상이 아니다.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도, 승리한 국민의힘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다. 지난 3월 대선에서 지고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한 민주당이 비대위를 꾸린 것이야 사태 수습을 위한 긴급 조치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승한 국민의힘이 비대위로 전환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비대위는 당의 존립이 위태로운 국면일 때 어쩔 수 없이 가동되는 임시 기구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멀쩡한 당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비상 상황’이라는 자가진단을 내린 뒤 환호하며 수술대에 오르는 희한한 선택을 했다. 국민이 보기엔 아주 의아한 일이 정권 출범 석 달 만에 벌어졌다.

취임 100일을 갓 넘은 윤석열 대통령은 정권 초반 지지율이 속절없이 추락하는 상황에 봉착해 있다. 인사 난맥상과 정책 혼선 등이 주요 요인이지만 집권당의 내홍도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집권당이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정책을 뒷받침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필요할 경우 쓴소리도 해야 하는데 자중지란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으니 국민이 신뢰를 보낼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내전은 끝날 줄 모르고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는 윤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가 노출되면서 재점화된 분란은 주호영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면서 당대표(현재 6개월 직무 정지)에서 축출된 이준석과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사생결단 싸움으로 번졌다. 내후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당권 장악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사퇴 의사를 표명한 최고위원들의 상임전국위원회 소집 의결, 비대위 전환 조건인 ‘비상 상황’ 당헌 유권 해석 등 절차상·내용상 하자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몰아내기’는 일사불란하게 전개됐다.

이준석의 법적 대응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이준석은 비대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이어 본안 소송까지 법원에 제기한 상태다. 집권당 운명이 법원 판단에 좌우되게 생겼다. ‘정치의 사법화’라는 비극으로 결말을 맺게 됐다. 당의 총체적 난국을 초래한 이준석과 윤핵관 양측은 이제 거친 발언을 쏟아내며 서로를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처구니없는 막장 드라마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말대로 구질구질한 정치만 하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는 온데간데없다. 공멸하지 않으려면 비정상적 정치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난마처럼 얽힌 사태를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제1야당 민주당도 도긴개긴이다. 꼼수 정당답게 또 꼼수를 부렸다. 28일 전당대회 때 검경 수사를 받는 이재명 의원의 대표 등극이 확실시되자 방탄복을 입혀주기 위해 당헌 개정 절차를 밟고 있다. 우상호 비대위는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 1항은 유지하기로 했으나 대신 80조 3항의 구제 판단 주체를 윤리심판원이 아닌 당무위원회로 고쳐 정무적 판단으로 구제가 가능한 우회로를 만들어줬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방탄 장치의 핵심은 1항이 아니라 3항의 처분 주체이기 때문이다. 윤리심판원은 외부 인사 과반이 참여하는 독립 기구인 반면 당무위는 지도부를 주축으로 구성돼 ‘셀프 구제’가 가능하다.

당헌 80조는 2015년 야당 시절 소속 의원 30여명이 검경 수사를 받고 있었음에도 이듬해 총선에서의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혁신적 조항이다. 지금 와서 ‘정치보복 수사’를 가정해 뒤집겠다는 건 궁색한 주장일 뿐이다. 더 나아가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권리당원 전원 투표가 우선한다는 내용의 당헌 조항이 신설돼 친명계 강성 당원들이 당 운영에 공식 관여할 수 있는 토대마저 조성됐다. 24일 중앙위원회에서 당헌 개정안이 최종 확정되면 ‘이재명 사당화’가 완성되는 셈이다. 지난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도 무공천 원칙이 담긴 당헌을 고치는 꼼수를 썼다가 역풍을 맞았는데 공당의 헌법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고질병이 좀체 고쳐지지 않는다. 윤석열정부의 실정(失政)에 기대어 가만히 있어도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는 듯하다.

향후 근 2년간 선거가 없으니 여당이나 제1야당이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쇄신과 혁신을 구해야 할 비대위 체제를 오로지 기득권 세력의 당권 장악 방편으로 삼고 있다. 변칙과 편법, 꼼수로 점철된 정치공학적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당 정치의 퇴행이다.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고서는 여야가 이렇게 뻔뻔할 수는 없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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