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인간 두뇌 활동 모방 '저전력 인공지능'에 주목하라

2022. 8. 2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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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개발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전력’ 문제일 것이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여 유명해진 ‘알파고’를 운영하기 위해 동원된 컴퓨터 자원은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훌쩍 넘어선다. 1200여개의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를 연결해 시간당 56㎾의 막대한 전력을 소모했다. 이세돌과의 대국 한 판을 둘 때까지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1㎿(메가와트)를 훨씬 웃도는 전기를 쓰게 된다. 일반 가정집 100가구가 하루 종일 사용하고도 남는 전력량이다.

현재의 AI는 컴퓨터 속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SW)다. 그러니 컴퓨터 성능이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AI 성능을 높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압도적인 컴퓨터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다. 연산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성능도 확실히 높아진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슈퍼컴퓨터급 자원을 활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AI를 활용하기 어렵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에 포함된 AI가 기대만큼 똑똑하지 못한 것은 이런 한계 때문이다.

차세대 ‘반도체’ 개발 한창

최근 개발자들은 어떻게든 적은 전력을 이용해 AI 성능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SW 개발에 집중해 한정된 컴퓨터 자원으로도 최대한 높은 성능을 발휘하는 AI를 개발하는 방법, 두 번째는 전기를 적게 소모하는 저전력 AI 시스템을 새롭게 개발하는 것이다. 대세는 두 번째 방식이다. 시스템 자체의 성능이 뛰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SW 성능을 높인다 해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시스템 성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CPU가 계산하고,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기억장치(RAM)에 넣어둔다. 그러니 명령을 한 개씩 차례로 처리한다.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병목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부담을 덜기 위해 여러 명령어를 동시에 처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AI 연산에 활용하는 기술도 이미 쓰이고 있다. GPU를 일부 개량해 AI 처리에 보다 적합하도록 만든 신경망처리장치(NPU) 등도 이미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연산장치 자체를 새롭게 개발하지 않으면 이 방법도 한계가 있다. 처음부터 AI를 구동할 때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과거의 몇십 배, 많게는 몇백 배의 성능 향상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대표적 성과로 꼽을 만한 것은 2020년 4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AI 전용 반도체 ‘알데바란’이다. 6년 전 이세돌과 대국했던 알파고가 사용한 컴퓨터 자원이 초당 30조번 연산이 가능했는데, 2년 전 개발한 이 시스템은 초당 40조번의 연산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성능이면서도 최대 전력 소모는 15W에 불과하다. 당시 연구진은 “NPU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최적화돼 있는 반도체”라면서 “해외 유명 기업 제품이 1000만원인데 비해 우리가 개발한 AI 반도체는 성능이 2배 이상 향상됐으면서도 수십만원이면 제품화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 두뇌 흉내 낸 ‘뉴로모픽’ 칩

인간의 뇌는 하나하나 일일이 다 계산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정보를 파악하고 추론을 거쳐 판단한 다음 꼭 필요한 부분만을 실행한다. 1000억개에 달하는 뇌세포가 동시에 일하고 동시에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컴퓨터로 이야기하자면 CPU와 RAM이 따로 분리돼 있지 않고 동시에 함께 일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인공지능 반도체는 인간의 뇌구조를 본뜬 '뉴로모픽'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pixabay 제공


이를 AI 개발에 도입하면 어떨까. 이런 시스템을 ‘뉴로모픽’이라고 부른다. 뇌세포(Neuron)와 영어 모픽(Morphic·모방하다)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인공두뇌’를 뜻한다. 즉 인간의 두뇌 활동을 흉내 낸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어 저전력·고성능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뉴로모픽 칩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사용해 온 방식은 사람의 뇌세포를 본뜬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것은 미국의 인텔이다. 인텔이 개발한 뉴로모픽 반도체 ‘로이히’는 기존 반도체로 같은 성능의 AI를 구동할 때에 비해 처리 속도가 최대 1000배 빠르고, 전력효율도 약 300배 높다. 앞으로 수년 정도면 이런 방식의 AI 시스템이 실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스커미온’ 등 차세대 전자소자 각광

하지만 이 방식도 한계가 있는데, 사람의 뇌 구조를 본뜬 반도체 회로를 구성하려면 적잖은 숫자의 반도체 칩이 필요해 저전력을 만드는 데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AI 성능을 현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유용하지만 시스템 크기를 아주 작게 만들긴 어렵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AI는 배터리가 전력을 충당하기 어려우므로 간단한 기능 이외에는 활용하기 어렵다. 필요할 경우 먼 거리에 있는 중앙 컴퓨터(서버)까지 명령어를 보낸 다음 처리해서 답을 알려준다. 직접 수행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서버 시스템은 많게는 수십만, 수백만명의 명령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고, 그 정보를 다시 스마트폰까지 보내줘야 한다. 재빠른 대응이 어렵게 된다. 즉 현재의 방법으로는 스스로 판단해 장애물을 피해가는 AI 자동차, 진짜 비서 같은 AI 스마트폰 등을 개발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스마트폰 프로세서는 최대 사용전력은 많아도 3W 정도. 고성능 AI 반도체의 전력 사용량을 이 이하로 줄여야 실용화 가능성이 생긴다.

이 때문에 압도적 성능의 차세대 ‘전자소자’를 개발하고, 이를 AI 반도체 개발에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실용화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AI 성능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기술을 나타낸 이미지. 3차원 수직 전극을 활용한 스커미온 소자 구현을 표현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2021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연구진은 ‘스커미온’이라고 부르는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의 양자역학적 움직임을 컴퓨터 기본 소자로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2020년 스커미온 소자 관련 핵심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이런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반도체 소자 크기는 1000분의 1, 사용전력은 100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뉴로모픽 구조까지 더하게 되면 AI 연산 과정에서 소모전력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낮아지게 된다.

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 황찬용 책임연구원은 당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스커미온을 활용한 시냅스 소자 등의 응용연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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