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세계 인도주의의 날, 인류가 존엄한 이유

2022. 8. 2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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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


지난 2월 우크라이나 분쟁 발생 이후 6개월가량이 흘렀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대러시아 경제 제재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과 세계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농업 위기로 이어졌다.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 많은 사람이 이번 분쟁이 우리에게 미칠 경제적 타격에 집중하고 있을 때,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내 다른 지역이나 이웃 나라로 이동한 피란민 수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1400만명을 넘었다.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온 난민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다. 청장년층 남성은 징집 대상이어서 국경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순간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된 여성과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식량과 주거 공간 같은 생존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과의 이별, 낯선 곳에서의 삶, 끝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생활 등 더 큰 정서적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는 우크라이나 난민 아동들을 대상으로 인접국인 루마니아에서 심리사회적지원(PSS·Psychosocial Support)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여대, 한양대 연구진 등 국내 심리 전문가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이 프로그램은 재난을 겪은 아이들의 불안감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기획됐다. 2013년 시리아 내전과 필리핀 태풍, 2015년 네팔 대지진 등 전 세계 인도적 위기 현장에서 많은 난민들의 정서적 안정을 도운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심리사회적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기까지 난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크다.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같은 처지의 난민을 돕고 싶은 마음에 선뜻 자원봉사 활동에 동참했다. 이들은 모국어로 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잊고 희망을 얻는다고 말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분쟁 긴급구호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후원으로 조성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금을 통해 일부 프로그램이 운영돼 더욱 의미가 컸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서도 프로그램 효과성을 인정해 예산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굿네이버스와 같은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그들의 세밀한 필요를 단체별 다양한 강점으로 채우고 있다. 그래서 유엔난민기구(UNHCR) 유엔식량계획(WFP) 등 주요 국제기구 및 인도주의 단체들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집행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주요 공여국의 경우 공적개발원조(ODA)에서 인도적 지원 분야의 시민사회 협력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40%를 웃돈다.

국제사회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사업 효과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인도적 지원 분야의 시민사회 협력 예산은 7%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방침을 발표하며 총 1억 달러(약 1200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펼치고 있으나 정작 시민사회단체를 통한 집행 계획은 없었다. 사업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시민사회와의 적극적 협력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강제 이주민의 숫자는 1억명을 돌파했고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3억6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적 위기는 전쟁과 정치적 탄압, 자연 재난 등 다양한 유형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아주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누구나 언제든지 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은 ‘세계 인도주의의 날’이었다. 인류가 경제적 이익과 자기 이해에만 사로잡힌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약자를 도울 줄 아는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인도적 위기에 놓인 지구촌 이웃을 향한 관심과 지원으로 증명하길 바란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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