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춘양면에서 2년 살아보니.. 이게 진짜 많습니다

김은아 2022. 8. 2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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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가 된 춘양역 앞 다방과 현재사를 쓰고 있는 억지춘양시장 인근 다방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봉화군 춘양면에서 살며 일하고 있습니다. 2년여 시간을 살면서 놓치고 살았던 삶, 공간, 이웃의 이야기들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삶은 누리는 자의 것이요, 인생은 나눌수록 풍요로워지니까요. <편집자말>

[김은아 기자]

"춘양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나 유명한 거 뭐 없을까요?"
"음……. 아! 춘양에는 할배가 많아요!

"네?"
"다방이 많거든요~~!"

한 모임에서 내가 나눈 대화다. 봉화군은 1읍 9면으로 면적의 85%가 산림인 아름다운 소도시이다. 내가 살고 있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은 말할 것도 없이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 아름다운 산야와 맑은 물은 기본이다. 여기에 나의 최애 24시 빨래방, 새벽까지 문을 여는 CU 편의점, 야간에도 불이 환해 밤 마실 나가기도 좋은 억지춘양시장과 춘양양묘장을 가로지르는 넓은 대로는 여의도 한강공원처럼 밤낮으로 즐길 수 있다.

50여년 전 춘양 모습 그대로
 
▲ 억지춘양시장과 양묘장을 잇는 대로 멀리 정면으로 무궁화호가 철선을 따라 달리고 있다. 좌측은 춘양 할매들의 돈줄이 되는 춘양양묘사업소, 우측엔 춘양면사무소가 있다. 불빛이 환해 늦은 밤이라도 걷기에 너무 좋은 곳이다
ⓒ 김은아
 
일부러 차까지 타고 가서 복고풍 감성을 찾는 도시의 젊은이들처럼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 비라도 내리는 날 밤에 찬찬히 걷다 보면 마치 50여 년 전 춘양 시내를 걷는 듯 묘한 아련함과 평온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 쓴다고 해도 단 하나의 연출도 필요하지 않은 춘양 시가지의 옛 모습. 첫 사람의 손길이 그대로 남은 듯 시간도 멈춰버린 듯한 모습이다. 춘양 시내의 모습은 퇴락했으나 화려했을 과거의 영광까지도 여실히 보여준다.  
 
▲ 지금도 영업중인 춘양정미소, 구시가지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베어있다. 사람손길이 그대로 묻어나는 구시가지가 춘양정미소와 더해져 도시의 깊은 맛을 낸다
ⓒ 김은아
 
▲ 춘양면 구시가지, 신진샷시 집 앞 한때 융성했던 신진샷시집, 억지춘양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 김은아
 
도시의 크고 화려한 공원은 아니지만 가로등 환하게 밝힌 억지춘양시장 주변 길, 운곡천 변, 지금은 천지에 피어 있는 달맞이꽃과 계곡 물소리가 더없이 아름다운 방죽길, 춘양우체국을 지나는 대로, 춘양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춘양양묘장까지 두어 시간이면 족히 걸을 길이 있다.

중간 중간에 있는 마을 정자와 춘양양묘장 앞 단아하기 그지없는 작은 정원, 그리고 길 여기 저기에 놓여 있는 오래된 벤치와 평상, 면사무소와 시장에 있는 개방화장실까지 이 정도면 공원 시설보다 못할 게 하나 없다. 그래서 잠을 쪼개 자듯 나는 짬이라도 생길 치면 급히 서둘러 길을 나선다.

이 길들은 억지춘양시장을 중심으로 춘양면의 모든 핵심 시설이 밀집된 춘양의 다운타운, 소위 '면세권'이다. 시장, 편의점, 의원, 세탁소, 24시 빨래방, 마트 그리고 밤 9시 넘어서도 급히 약을 살 수 있는 약국까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살림집이 같이 있는 철물점과 과일가게도 있어 급할 땐 야간에도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브라보 마이라이프'이지 않은가!

유별나게도 다방이 많은 춘양
 
▲ 지금 이 순간, 춘양역의 모습 오늘의 춘양역....옛 모습이 그립습니다
ⓒ 김은아
 
춘양면 다운타운에는 유난히도 다방이 많다. 내가 처음 춘양에 온 2년 전 쯤에 개업했던 구슬 다방, 작년에 문을 연 66다방, 그리고 내가 춘양에 오기 전에 있었던 우정다방, 만남다방, 금호다방, 약속다방, 샛별다방, 아씨다방 그리고 대박다방……! 참 많기도 많다.

억지춘양시장을 사이에 두고 좌청룡 우백호처럼 다방들이 즐비하다. 이름도 모두 네 글자다. 눈 씻고 찾아봐도 세 글자도 다섯 글자도 없다. 함께 걷던 지인에게 왜 다방 이름이 모두 네 글자냐고 물으니, "부르기 쉽고 박자가 맞으니까!"라며 당연하게 말한다. 인생은 정말 쿵짝쿵짝 네 박자뿐이던가!

무채색의 거리에 눈에 띄는 핫핑크, 사람대신 봉걸레 막대가 세워진 천사날개 포토존. 영월다방이다.
 
▲ 영월다방 춘양시장 옆 무채색 대로에 핫핑크의 영월다방이 눈에 띤다
ⓒ 김은아
  
사실 춘양면은 봉화읍보다도 강원도 태백, 영월이 훨씬 가깝다. 춘양면 인구가 5만 정도 할 때 이곳은 불야성이었다. 1980년대 영동선이 지나는 춘양역에는 태백, 철암, 동해, 강릉, 부산, 대구, 청량리 등 육지와 바닷가 도시까지 사람들이 넘나들었다.

빨간 고무대야를 가득 채운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과 춘양의 유명한 한우, 각종 과일과 쌀 등을 이고 지고 온 상인들과 장을 보러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하루에 200~300마리가 거래되었다는 춘양 우시장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대신 값싸고 질 좋은 한우정육점과 식당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큰돈이 오가는 오일장.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지나칠 쏘냐.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긴장한 몸도 마음도 풀어질 때면 콩새처럼 얼른 다방으로 쏙 들어간다. 주인장과 프리마, 설탕 듬뿍 넣은 달큰한 커피 한 잔 하며 푸짐하게 이야기 한 판이 벌어진다.

베이비붐 세대와 7080세대들에게 다방은 청춘의 상징이다. 신청곡을 종이 쪽지에 적어주면 묵직한 나무 전축에 LP판을 틀어주던 음악다방도 있었다. 춘양에는 서른 개가 넘는 다방이 있다. 춘양역 앞 안방마님처럼 자리를 지켰던 태양다방은 문을 닫은 지 오래이고, 역에서 나오는 길목에 있는 다방 거목은 문을 닫은 지 아주 오래인지 지붕도 허물어져 있다.

다방 안에서 손님을 맞던 낡은 소파 하나만이 빗속에 덩그러니 굴러다닌다. 도로 하나 사이에 있을 뿐인데 태양과 같이 찬란했던 역 앞 다방들은 과거사가 되었고 시장의 다방들은 현재사를 쓰고 있다.
  
▲ 춘양역 앞 태양다방 춘양역에서 나오자 마자 보이던 태양다방은 간판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김은아
 
▲ 다방 거목 춘양역에서 큰 길로 나가는 대로변, 목좋은 곳에 위치한 다방 '거목'은 사라지고, 낡고 허름한 건물만 남아있습니다
ⓒ 김은아
인생사 새옹지마라! 정말 쿵짝쿵짝 네 박자가 맞다. 영원한 번영도 영원한 쇠락도 없었다. 저녁 9시가 넘어가는데 다방에서 간간이 불빛이 새어 나온다. 주인장이 마실을 갔는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작은 텔레비전과 벽을 가득 메운 화려한 액자들만이 우리를 맞는다.
 
▲ 춘양면, 금호다방 기다려도 주인장은 마실을 갔는지 오지 않습니다
ⓒ 김은아
 
▲ 춘양면, 복다방 춘양에서 가장 촌스럽다는 복다방입니다. 그러나 가장 춘양스러운 멋이 느껴집니다
ⓒ 김은아
 
▲ 춘양면, 복다방 내부 나무 문이 정겹습니다. 오래된 다방이지만 정갈한 맛에 정이 갑니다
ⓒ 김은아
 
길을 나와 내 눈을 사로잡은 정겨운 서체 '복다방!' 네 글자도 아닌 세 글자 다방이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어보지만, 너무 늦은 시간인가 보다. 돌아서려는 그때 주인장이 문을 빼꼼히 열고 나온다.

'커피 마실 수 있을까요?'라며 들어가게 해달라 사정하는 듯한 우리의 애틋한 눈빛에 상냥한 주인장은 냉큼 문을 열어준다. 작은 주방 옆에 나무로 만든 옛날 문짝이 보인다. 주인장이 기거하는 방이란다.

다방이 정감 넘친다고 호들갑 떠는 나에게 주인장은 춘양에서 아마 제일 촌스러운 다방일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다방이 무엇인가? 밀물처럼 썰물처럼 인생사 오고 가는 곳이 아니던가. 촌스러우면 어떤가. 세 박자면 어떻고 네 박자면 어떠하리. 어차피 인생은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것을.

6천 원짜리 쌍화차 두 잔을 서둘러 마시고 계산을 한다. 천 원짜리 잔돈이 없는 우리에게 주인장은 만 원만 주고 가라 한다. 그리고 아침 8시에 문을 여니 커피 마시러 자주 오라고 살갑게 대해준다. 언제고 나의 깐부들과 아침에 꼭 다시 오리라.

춘향의 다방에는 삶이 있다
 
▲ 복다방 쌍화차 계란노른자를 톡 넣은 쌍화차. 파란색 땡땡이 차받침과 고동색 투박한 찻잔의 색감이 참 잘 어울리죠?
ⓒ 김은아
 
한때는 지성인들이 모이는 담론의 장이었고 또 한때는 불온한 곳으로 변질하기도 했던 다방. 단골 중심의 소위 '물장사'라고 말하지만 춘향의 다방은 사뭇 다르다.

올해 사과 농사는 잘 되었는지, 수매는 얼마에 할 것인지. 다가올 추석에 출하할 사과는 문제가 없는지, 작년에 헐값에 수매한 콩값이 올해는 짭짤한지, 내년엔 무슨 작물로 바꿀 것인지, 소를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식들은 자주 오는지 그리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농사할지 이런저런 걱정도 같이 거들어준다.

같이 늙어가며 집안사 훤히 들여다본다. 춘양 할매들은 나이 여든이 넘어도 일자리가 넘쳐나니 왕성한 경제 활동을 하는데 할배들은 농사 말고는 할 것이 없다. 아이 학교에 맡겨 놓고 하교까지 카페에서 기다리는 도시맘처럼 춘향 할배들은 다방에 앉아 할매의 퇴근을 기다린다.

이천 원짜리 커피 한 잔 시킨다고 주인장이 타박도 하지 않는다. 춘양면 다운타운에도 한두 개씩 모던한 카페들이 생겨나지만, 인구의 80% 이상이 고령층인 우리 춘양의 큰손인 할배들에겐 세월을 함께 한 정들고 익숙한 곳이어서일까. 춘양의 다방은 오늘도 달달한 커피 한 잔을 오래된 쟁반에 정겹게 담아낸다.
 
 어릴적 보았던 알루미늄 쟁반에 커피를 내온다. 미끄러울텐데...언니들은 기술이 참 좋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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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누구나 살아가야 하고, 또 살아내야만 하는 인생! 힘겹다고 느껴질 때 춘양에 오시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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