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클래식 김선욱과 임윤찬이 빚어낸, 뜨겁고 영롱한 멘델스존

2022. 8. 2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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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클래식 선배 김선욱 지휘 KBS향과 멘델스존 협연
강렬한 타건과 조탁한 음색, 큰 동작과 넉넉한 여유
김선욱과 나란히 앉아 모차르트 소나타 포핸즈 연주
데뷔 1년 반, 발전이 기대되는 김선욱의 지휘
2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김선욱(가운데)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협연하고 있다. 사진 롯데문화재단


20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롯데콘서트홀. 뜨겁고 묵직한 갈채 속에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등장했다. 김선욱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협주곡 1번 연주를 시작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최초의 단독 협연인 이날 공연은 롯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일정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석 매진돼 화제였다.
k-클래식을 빛낸 선후배 피아니스트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주목 받았던 이벤트였다. 김선욱은 2006년 한예종 재학 중 리즈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한 이후, 화려한 연주 경력을 쌓고 지금은 지휘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작부터 강렬했다. 굳건하면서도 고음의 영롱함이 살아있는 타건을 연속으로 들려주며 인상을 남겼다. 질풍노도를 연상시키는 열정적인 피아노에 오케스트라가 민첩하게 따라붙었다. 피아노의 밀물과 오케스트라의 썰물이 갈마들더니 고음이 모래사장의 조가비같이 반짝였다.

양감이 느껴지는 명료한 타건에는 습기와 건조함이 적절했고 모차르트 같은 재기와 베토벤 같은 억셈이 섞여 있었다. 물불 안 가리는 패기가 곡을 전진시켰고 마감은 야무졌다.

임윤찬의 연주에는 시각적인 요소가 적절했다. 확신한 듯 머리를 흔들거나 팔의 큰 동작은 그와 어울리는 연주와 함께했다. 지휘대의 김선욱은 화덕에 장작을 계속 집어넣듯 악단에 뜨거운 연주를 주문했다. 멘델스존 협주곡은 임윤찬과 잘 어울렸다.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타듯 볼륨을 높이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느린 2악장에서는 명상적이고 맑은 기운이 흘렀다. 독백하듯 자기 소리를 뚜렷이 내는데 조탁한 음색과 종소리 같은 트릴이 귀를 즐겁게 했다. 위안을 주는 뭉클함이 있었고 보석에서 반사되듯 미묘한 음색이 돋보였다.

3악장은 금관의 팡파르로 시작됐다. 적극적인 오케스트라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고 기교적인 악구를 연주하는 피아노는 힘찬 터치의 연속이었다. 그런 중에도 한 음 한 음 구별 가능한 임윤찬의 타건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끔씩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시각적인 존재감을 보인 임윤찬의 연주는 음악적이었다. 서커스 같은 긴장감보다는 아름다운 음색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떤 속도에서도 넉넉한 여유가 느껴지는 임윤찬의 연주는 곡이 끝나기 전까지 청중의 흥분감을 고조시켰다.

2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K-클래식 선후배인 김선욱(위)과 임윤찬(아래)이 나란히 앉아 포핸즈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 롯데문화재단

커튼콜이 이어지다가 공연장 스태프가 피아노 의자를 하나 더 갖고 나오자 객석의 환호가 더 커졌다. 앙코르로 협연자 임윤찬과 지휘자 김선욱이 나란히 앉아 포핸즈 연주를 시작했다. 모차르트 네 손을 위한 소나타 K521이었다. 저음을 맡은 김선욱이 듬직했다면 고음을 담당한 임윤찬은 영롱했다.

포핸즈 앙코르 만으로는 아쉬웠는데 이번엔 임윤찬이 혼자 피아노에 앉아 멘델스존 판타지 Op.28 중 1악장을 연주했다. 김선욱은 오케스트라 좌측 하프 옆에 앉아서 경청했다. 묵직하게 긴장감을 자아내다가 건반에 불이 붙는 듯 열정적인 연주였다.

김선욱은 노련한 피아니스트지만 지휘자로는 새내기다. KBS교향악단과 연주했던 지휘 데뷔곡은 협연을 겸했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7번이다. 작년 1월 12일 음악 팬들의 관심 속에 데뷔한 그는 활발한 지휘 활동을 펼치고 있다. 14일 광화문광장 재개장과 광복 77주년을 기념한 서울시향 연주회를 지휘했고 내년엔 정기연주회 지휘도 예정돼 있다.

협연에 앞선 첫곡이었던 코른골트 ‘연극 서곡’ Op.4에서 김선욱은 작곡가 특유의 관능적인 미묘함을 큰 동작으로 이끌었다. 머리칼의 움직임도 가시적이었고 곡 분위기는 축제적인 총주에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두터운 화성과 아기자기함 등 다층적인 작품의 특색이 잘 드러났다. 팀파니의 연타를 당당하게 독려했고 연주 뒤에는 각 악기군을 기립시켜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2부에서 김선욱은 멘델스존 교향곡 4번을 암보로 지휘했다. 등장하자마자 경쾌하게 곡을 시작했고, 진행되는 연주를 계속 지켜보다 보니 지휘 동작에서 정명훈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지휘 동작의 제어가 전보다 훨씬 더 엄격해졌다. 그 음악은 어땠을까. 템포를 경쾌하게 가져가면서 중용적인 연주를 지향했다. 차분하고 정교하고 소리를 확실하게 내는 스타일이었다. 주변 맥락은 순조롭게 흘러가지만 막상 핵심은 비껴갈 때가 종종 눈에 띄었다.

2악장에서 비극성이나 비애감이 옅었고 객관적이라서 좋은지 몰라도 재미없는 해석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3악장도 특이점 없이 온화한 해석이었고 4악장 살타렐로에서는 리듬을 타며 곡의 흐름이 살아났다. 김선욱의 지휘가 성장하는 중이라고 볼 때 안전 운행에서 좀 더 극적인 효과를 주는 쪽으로 다가설 것으로 예상된다. 관록 있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음악 세계에 비해 풋풋한 지휘자 김선욱의 음악에서는 더욱 드라마틱한 변화가 요구된다.

임윤찬은 27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마을에서 열리는 제8회 계촌클래식축제에 참가한다.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윌슨 응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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