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식비 2만원 4인 가족이 외식비 줄이는 법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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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직감 했습니다. 지구가 망하지 않도록, 건강한 지구에 살고 싶어 생활 양식을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를 기록합니다. <기자말>
[이준수 기자]
중국 음식점에서 우리 가족 네 명이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결제 금액을 보고 흠칫 숨을 삼켰다. 오만 원이 넘는 액수가 영수증에 찍혀 있었다. 우리 부부가 각각 짬뽕밥 하나씩, 8세 6세 두 딸들이 짜장면 보통 한 그릇을 나눠먹고 탕수육 작은 사이즈를 시켰을 뿐이다. 그간 식비를 아끼려고 집밥 열심히 먹으며 잘 버텼다. 그러다 불볕더위에 통 입맛이 없어서 오랜만에 먹은 외식이었다.
이틀 치 식비보다 많은 돈이 한 끼 식사로 사라졌다. 그나마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이랍시고 고른 중국집이었다. 오만 원, 맞벌이 시절이었다면 그럭저럭 넘어갈 만한 외식비다. 그러나 현재 휴직 중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볍지 않은 액수다. 기분 내키는 대로 외식을 하다가는 휴직 라이프를 지속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휴직을 선택했다. 그러나 휴직은 수입의 감소를 의미하는 만큼 절약하는 생활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런저런 기분을 내느라 맞벌이 시절처럼 써 버리면, 외벌이 통장이 버티지 못한다.
외식비는 부담스럽고, 배달음식은 싫다면
우리 가족은 식비 절감을 위해 텃밭에서 야채를 수확하고, 집밥 위주로 먹었다. 제철 채소를 듬뿍 사용한 집밥은 건강에도 좋고, 비용도 얼마 발생하지 않는다. 양껏 즐겨도 비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러나 어려움도 있다. 자극적이거나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은 충동이 때때로 참을 수 없이 밀려든다. 이상하게 피자나 햄버거를 엄청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두 달에 한 번 꼴로 강렬하게 당긴다.
곤란하게도 초밥, 치킨 같은 메뉴는 집에서 맛과 모양새를 제대로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우리 집의 하루 식비는 2만 원으로 제한해 두었다. 2만 원으로 구현할 수 있는 상차림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이 해주는 음식'이 필요한 것이다. 맛있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 범위 안에서.
외식이 부담스러우면 배달 음식이라도 시켜먹으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배달 음식은 음식보다 나중에 정리해야 할 쓰레기가 더 많았다. 일전에 국물이 진하기로 유명하다는 설렁탕을 배달시킨 적이 있다.
▲ 배달음식을 먹고 나면 뒷정리에 분리배출까지 성가신 일이 너무 많다. |
ⓒ 이준수 |
외식비는 부담스럽고, 배달음식은 싫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해결책은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다. 제이슨 히켈의 <적을수록 풍요롭다>를 읽던 중 연필로 세 번 밑줄을 긋게 된 내용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품 전체의 3분의 1, 그러니까 20억 톤가량이 매년 버려진다는 것이다.
고소득 국가들에서는 외관상 예쁘지 않은 채소를 버리는 농민들, 불필요하게 엄격한 유통기한을 적용하는 슈퍼마켓들, 공격적인 광고, 벌크 할인, 원 플러스 원 방식 때문에 일어난다. (『적을수록 풍요롭다』 287쪽)
충격을 받은 나는 식품 폐기 문제를 자세히 알아보려 다른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2022년 3월 10일 KBS2 채널에서 방영된 <먹다 버릴 지구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방영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유튜브 '환경스페셜' 채널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었다. 방송 내용이 전반적으로 흥미로웠으나, 내 눈에 한 장면이 벼락처럼 꽂혔다.
대형 마트의 마감 세일 상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식품 폐기를 줄일 수 있었다. 내게 그 장면은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 일석이조의 아이디어였다. 방송에 나온 대형 마트 관계자는 폐점 시간이 임박해서 적용하던 마감 세일의 시간을 앞당김으로써 식품 폐기량을 20% 이상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나는 가끔 마감 세일 코너를 지나치면서도 왠지 품질이나 맛이 우려되어 선뜻 손을 뻗지 않았다. 먹어도 괜찮은 음식이니까 판매를 하겠지만 심리적으로 저항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마치 내가 덤스터 다이빙(쓰레기통에 버려진 재고 음식, 물건 등을 취득하는 행위)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왠지 비위생적일 것 같고, 맛도 별로 일 것 같은 편견을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많은 탓인지 방송에서는 마감 세일 상품의 안정성을 적극 강조했다.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전문가는 '생산 일자가 짧은 제품이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제품의 품질, 맛,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래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시청자를 고려했는지, 블라인드 테스트로 맛과 냄새만으로 유통기한의 남은 날짜를 추측하는 실험까지 보여주었다.
▲ 버려지는 음식의 양이 상당하다. |
ⓒ 환경스페셜 유튜브 화면 갈무리 |
마감 세일은 두 마리의 토끼다. 첫째, 꽤 특별한 식재료를 싼 값에 넉넉히 마련할 수 있다. 둘째, 폐기되는 음식량을 줄여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마감 세일을 적절히 활용하면 외식 욕구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쁨에 사로잡혔다.
사람이 붐비는 주말을 피해 평일 오후 아홉 시 대형 마트를 찾았다. 거의 3개월 만이었다. 올해 들어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지역 화폐를 사용하느라 동네 중소형 마트를 주로 다녔다. 만일 마감 세일이 최대 10% 할인폭인 지역화폐의 혜택을 능가한다면 향후 적극적으로 '알뜰 야채'와 '떨이 상품'을 구매할 여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세일 품목이 적거나, 정 살 만한 상태가 아니면 과감히 포기하자는 우려 섞인 다짐을 하고 매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곧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쇼핑 목록에 적어갔던 감자와 양파는 물론, 해산물과 육류 모두 마감 세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30% 할인이 적용된 양파망을 들어 비세일 양파와 비교해 보았다. 꼼꼼히 여기저기를 살폈으나 외관상으로는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냄새를 맡아도 마차가지였다.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감자와 양파를 카트에 담았다.
해산물 코너는 감동 그 자체였다. 여름이라 고객들이 해산물의 신선도에 유독 유난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할인폭이 최소 50%에 근접했다. 1팩에 정가 9980원인 국산 바지락, 모시조개가 5089원, 흰다리새우살도 반값에 팔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할 처지의 음식들이었다.
▲ 마감 세일에서 구입한 식재료 |
ⓒ 이준수 |
나흘 치 식재료를 원 없이 담고도 결제금액은 오만 원을 넘기지 않았다. 중국집에서 먹은 한 끼 외식보다도 쌌다. 지역 화폐로 결제해야 하는 집 근처 중소형 마트보다도 저렴했다. 심지어 식품 폐기량을 줄였다는 윤리적 만족감까지 덤으로 얻었다.
덤스터 다이버들이 희열에 가득 찬 얼굴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심리가 이해될 것도 같았다. 우리 가족은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쇼핑 이후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맛있게 요리를 해 먹었다. 흰다리새우살과 양파를 듬뿍 넣고 소금과 후추 간을 해 볶음밥으로 만들고, 문어 해물탕 육수로 칼국수를 끓였다.
이어서 간장 오리불고기와 마파두부, 국산 동죽조개와 대파로 끓인 해물라면까지 즐기다 보니 외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감 세일 장보기는 휴직자의 짠 식비 수준으로도 제법 호사를 누릴 수 있는 훌륭한 방편이 되어 주었다. 음식의 맛은 매우 근사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고소득 국가로서 생산이 넘친다. 매대에 전시된 알뜰 야채와 마감 세일 상품은 품질과 관계없이 넘치는 풍요 탓에 '떨이'로 분류되었을 뿐이다. 마감 세일 활용은 고인플레이션 시대에 대응하는 생활 팁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국의 덤스터 다이버들처럼 위험하게 거대한 쓰레기통을 기어오를 필요가 없다. 저녁 식사를 하고 느지막이 마트를 방문해 보자. 보호 헬멧이나 휴대용 랜턴도 필요 없다. 그저 할인 스티커가 예쁘게 붙은 식품을 슬쩍 집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없고, 여건이 마땅치 않아 친환경 생활에 뛰어들기 힘든 분들도 손쉽게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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