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할 때를 아는 매미는 군자의 상징 [한의사와 함께 떠나는 옛그림 여행]
[윤소정 기자]
"맴맴맴~ 매앰"
▲ 매미(일부) 조정규, 조선 후기, 지본담채, 22.1 x 9.1cm,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
ⓒ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
<근역화휘 인첩>에 수록되어 있는 매미 그림이다. 근역화휘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서예가인 오세창(1864~1953)이 편집한 화첩이다. 천, 지, 인 3첩으로 구성되며, 산수·인물·사군자·화조·동물·물고기와 게·초충의 7개 주제로 총 67점의 그림이 있다.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신사임당, 마군후 등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화보집이다.
▲ 홍료추선(일부) 정선, 18세기, 비단에 채색, 20.8 x 30.5, 간송미술관 소장 |
ⓒ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초충도 '붉은 여뀌와 가을 매미'이다. 여뀌는 한자로 '료(蓼)'인데, '了(마칠 료)'와 발음이 같아, '학업을 마치다'는 의미를 가진다.
매미는 문(文;글), 청(淸;맑음), 염(廉;청렴), 검(儉;검소), 신(信;믿음)의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고 하여, 유교에서 군자를 상징한다.
▲ 유사명선 심사정, 18세기, 종이에 담채, 28 x 22.2 cm, 간송미술관 소장 |
ⓒ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CC BY |
계절에 응한다는 믿음의 덕목은, 매미의 삶을 생각하면 덧없고 안타깝다. 매미의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여러 해 동안 오랜 시간을 땅 속에서 지내다가 성충이 되고나서는 막상 며칠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죽음마저 때에 맞춰 받아들이기에 욕심 없이 순리에 따라 산다는 신의를 의미하지만, 그 인고의 세월은 어쩐지 아깝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버드나무 등걸에서 매미가 울다'를 그린 심사정(1707~1769)은 어릴 적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고, 그 이후 많은 그림을 그리며 백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심사정은 한때 명문가이었지만 대역 죄인의 집안으로 전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생계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며 평생 불우하게 보냈다. 또한 뛰어난 그림 실력에도 당시에는 화가로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보기에 매미는 군자와 선비보다는 허망함과 덧없음을 대변하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약재로 사용하는 매미 허물
이렇게 많은 선비와 화가들에게 사랑받았던 매미는, 지금까지도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소중한 약재이기도 하다.
매미는 땅 속에서 나와 성충이 될 때 허물을 벗는데, 이것을 말린 것이 선태 혹은 선퇴라 부르는 약재이다. 풍열(風熱)을 없애는 작용을 하여, 경련을 진정시키고 열을 내린다. 파상풍, 홍역, 두드러기 등에 효과가 있다.
이때 풍열이란 풍사(風邪)와 열사(熱邪)가 겹친 것으로, 사기(邪氣)는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몸을 해칠 수 있는 나쁜 기운인 사기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저항력과 회복 능력은 정기(正氣)라고 한다. 정기가 튼튼하면 사기가 침입하지 못하므로, 정기를 요즘 우리가 강조하는 면역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 선태 |
ⓒ 윤소정 |
오랜 시간 유충의 상태에서 참고 견뎌 어른이 되는 매미는 인내의 대명사이며, 그 과정에서 허물을 벗는 행위는 재생과 부활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긴 허물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는 좋은 약재가 되기도 한다.
무더운 날이면 마냥 시끄럽게만 느껴지던 매미소리가 왠지 달리 들리는 것 같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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