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배터리 패권' 쟁취도 가능할까..장기 목표되겠지만 단기는 '물음표'

정동훈 2022. 8. 2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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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하며 공식화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 시행은 첨단 산업분야의 또다른 전쟁을 예고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킨 채 첨단 산업의 공급망을 옥좨고 패권을 쥐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특히 이런 미국의 의지가 두드러진 분야가 배터리 산업이다.

20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IRA는 '우려 국가'의 전기차 배터리 광물이나 부품이 포함되면 세액 공제 혜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IRA는 알루미늄, 흑연, 리튬, 니켈 등 배터리 광물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되거나 북미 지역에서 재활용된 광물이어야 최대 지원금의 절반(3750달러·약 491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 비율은 당장 내년 40%로 시작해 2027년까지 80%로 늘려야 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등 주요 배터리 부품을 북미 지역에서 제조 혹은 조립해야 절반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2023년 50%에서 2024~2025년에는 60%, 2026년 70%, 2027년 80%, 2028년 90%, 그 이후엔 100%까지 미국 내 제조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中이 이미 장악한 밸류체인…미국이 서두르는 이유=배터리 분야는 미국이 자국의 산업경쟁력을 놓칠 수 없는 분야기도 하다. 지금은 전기차용 배터리만이 주목받고 있지만 에너지·모빌리티 혁명 속에서 배터리는 중심이 놓일 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에너지의 저장과 공급에 쓰일 ESS(에너지저장장치), UAM(도심항공모빌리티), IoT(사물인터넷) 등을 비롯해 배터리는 대부분의 탈 것과 에너지, 가전 분야에 접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업체들의 합작법인을 통한 배터리 공장이 수십조원의 투자 속에서 건설되고 있다. 미국은 배터리 산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장기적인 대안으로 IRA를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 배터리 고립' 전략이 단기적으로 통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이미 배터리 밸류체인(가치사슬)을 대부분 장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국 배터리 고립 전략의 영향이 북미 지역으로 국지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다.

중국은 배터리에 쓰이는 광물의 채굴부터 제련·가공 분야에서도 글로벌 시장 대부분을 흡수한 상태라는 데 있다. 중국은 흑연을 제외하면 배터리에 필요한 광물을 자국 내에서 채굴하지는 않지만 아프리카와 남미 등 주요 해외 광산 채굴권을 확보한 상태다. 이를 다시 자국 내 공장으로 가져와 배터리 소재 화합물로 생산하고 있다. 가공·제련 분야에서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소재별로 50~70%에 이른다.

미국 정부나 기업이 북미나 남미에 채굴과 제련 공장을 '뚝딱' 만들 수도 없다. 배터리 정보업체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배터리 소재 광물을 생산하는 광산과 제련공장을 짓는 데 7년 가량이 소요되고 배터리 공장을 짓기까지는 2~3년이 소요된다. 미국이 광물의 채굴부터 제련까지 배터리 공급망을 확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인데 IRA는 당장 내년부터 까다로운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

북미 못지 않게 큰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존재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한다해도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성장세와 내수시장의 규모가 북미를 능가한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2030년 전 세계 시장의 약 57%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전년 대비 167% 성장해 중국의 전기차 침투율은 9%까지 올랐다. 올해에는 12%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향후 2030년에는 5489만대로 전기차 침투율이 57%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韓 배터리 없이 못달리는 美 전기차=미국 3대 완성차 업체와 모두 손잡은 한국 배터리 업체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GM·포드·스텔란티스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완성 배터리셀 업체는 물론 포스코케미칼·에코프로비엠 등 소재기업들과도 북미 현지에서 조단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대부분 원료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한다.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한다지만 중국을 완전히 배제한 체 배터리를 만들 수가 없을 정도로 의존도가 심한 상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양극재의 원료가 되는 전구체에 들어가는 산화텅스텐, 수산화칼슘, 수산화망간 등의 원재료 수입액은 19억9512만달러(약 2조3500억원)였다. 이 중 92.8%인 18억5081만달러(약 2조1800억원)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또 다른 양극재 소재인 산화코발트, 음극재 핵심 소재인 인조흑연의 중국 의존도는 각각 63.9%와 67.0%로 나타났다. 3대 배터리 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 원재료 역시 중국 의존도가 60.8%에 달했다.

여기에 배터리 제조 기업들은 연구, 생산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과의 합종연횡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제조 뿐 아니라 배터리 분야와 관련한 수많은 기관과 대학 등 연구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IRA 내용중 부품은 완성품 생산 공장을 현지에 짓고 있어 큰 무리 없는 상태다. 광물 분야에서는 채굴, 제련·가공 국가 등 어떤 세부 기준을 세우느냐에 따라 중국 고립 전략은 궤를 달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용두사미'로 끝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의 배터리 분야 중국 '고립 전략'은 실패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 원료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에 외교력을 발휘해 세부 법령을 유리하게 가져가거나 예외 적용 등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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