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다독가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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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지만, 차고 넘치게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때론 많아서 불편할 때도 있으니 세상만사 평화롭게 살려면 많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적당함이 최고다.
"저기, 거, 있잖아요? 에밀리 디킨슨하고 이름 비슷한 작가요. 그 사람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 쪽인데,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있고." 그러면 나는 "아! 찰스 디킨스 말씀이신가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 찾으세요?"라고 퍼즐 맞추기 추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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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지만, 차고 넘치게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때론 많아서 불편할 때도 있으니 세상만사 평화롭게 살려면 많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적당함이 최고다. 그래서 ‘중용(中庸)’이 예로부터 논어, 맹자, 대학과 함께 사서에 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헌책방을 예로 들자면, 가게에 책이 너무 많아도 처치 곤란이다. 무한정 넓은 매장이 아니라면 천장까지 쌓인 책은 곧 주인장이 내쉬는 한숨의 높이와 같다. 독자 처지에서도 비슷한 고민에 빠진 분들을 종종 만난다. 책을 많이 읽어서 때로는 읽은 책들끼리 내용이 섞여 머릿속에 돌아다니기도 한다. 분명히 읽은 책인데 제목이나 작가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거나 기억이 서로 엉켜있는 경우도 흔하다.
헌책방 주인장인 나 역시 이런 증상으로 자주 시달리다 보니 손님의 작은 실수는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이해하는 편이다. 이제 나는 손님이 “‘그리스도인 조르바’ 책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꺼내 준다. ‘젊은 베르세르크의 슬픔’을 달라고 하면 곧장 문학 책장으로 가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가져와 보여 준다.
물론 이런 일은 손님이 책을 많이 읽어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경우도 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손님은 일단 기억나는 것부터 말하는 습성이 있다. “저기, 거, 있잖아요? 에밀리 디킨슨하고 이름 비슷한 작가요. 그 사람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 쪽인데,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있고….” 그러면 나는 “아! 찰스 디킨스 말씀이신가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 찾으세요?”라고 퍼즐 맞추기 추리를 시작한다. 하지만 대개는 이쯤에서 끝나지 않는다.
“맞아요, 찰스 디킨스! 그런데 스크루지가 아니라, 거, 왜, 혁명 나오고 그런 내용이요. 마지막에 주인공이 친구 대신 단두대로 가잖아요.” 그러면 또 나는 “그건 ‘두 도시 이야기’ 말씀이시군요? 그 책이라면 있습니다!”라고 명쾌하게 말하며 책을 꺼낸다. 그런데 손님은 손사래를 친다. “그렇지, ‘두 도시 이야기’. 그런데 내가 찾는 건 그 책하고 비슷한 내용인데 얘기가 더 길어요. 그리고 디킨스가 아니고 다른 작가가 쓴 겁니다. 프랑스 작가요.”
여러분은 정답을 아시겠는지? 손님이 찾는 책은 ‘레 미제라블’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 읽은 책인데도 그 제목이 금방 생각이 안 나서 찰스 디킨스와 스크루지, 그리고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까지 등장한 것이다. 웃자고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얼마 전 우리 책방에서 있었던 실화다.
요즘은 뭐든 다 넘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많기보다 잘하기가 더 중요한 시절이기도 하다. 많은 책을 건성으로 읽기보다 한 권을 읽어도 잘 읽으면 좋고, 지갑에 든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가진 걸 얼마나 잘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렇듯 균형을 잡고 생활하는 게 다름 아닌 잘 사는 기술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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