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한 장에 70만원.. "명품, 너 좀 비켜줄래"

정신영 2022. 8. 20.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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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골프웨어 세계 최대 시장된 한국
게티이미지뱅크


200만원 외투, 70만원 티셔츠, 200만원 클럽백. 골프웨어에도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공식이 적용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골프는 비즈니스 접대 문화와 결합하면서 비싼 골프웨어가 유독 잘 팔리는 시장으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인증샷’을 즐기는 ‘젊은 골퍼’가 대거 유입되면서 골프웨어를 명품처럼 소비하는 흐름이 자리를 잡았다. 골프웨어 브랜드가 명품거리까지 진출할 정도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면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골프웨어=신명품

패션업계는 한국에서 골프웨어가 ‘신명품’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명품처럼 골프웨어도 더 비싸고 더 희소성 있을수록 잘 팔린다는 것이다. 업체들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신사동 일대에 앞다퉈 매장을 선보이는 이유도 ‘골프웨어=명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CJ ENM은 지난 6월 프리미엄 골프웨어 브랜드 ‘바스키아 브루클린’을 출시했다. 자사 TV홈쇼핑 채널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바스키아 골프’와는 다른 최고급 브랜드다. 백화점과 패션 플랫폼에서 판매한다. 모델들이 바스키아 브루클린의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CJ ENM 제공


지난 6월 프리미엄 골프웨어 ‘바스키아 브루클린’을 출시한 CJ ENM의 홍승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는 올해 골프웨어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뉴럭셔리’를 꼽았다.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기 싫고, 필드 위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골프웨어 생산 방식이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변화해 가격이 비싸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골프웨어 시장에서 수백만원대에 이르는 초고가 브랜드의 출시가 활발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3월 피케 티셔츠 하나에 70만원인 ‘필립플레인 골프’(왼쪽)를 선보였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한섬은 이달 말에 프랑스 명품 ‘랑방’과 손을 잡고 ‘랑방블랑’을 내놓는다. 각사 제공


이에 따라 수백만원대 골프웨어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한섬은 외투 하나에 200만원이나 되는 초고가 브랜드를 내세워 골프웨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달 말에 프랑스 명품 ‘랑방’과 손잡고 골프웨어 브랜드 ‘랑방블랑’을 내놓는다. 올해 가을·겨울 시즌 제품의 가격은 외투 49만~200만원, 상의 23만8000~89만8000원, 모자 12만8000~30만원 수준이다. 지난 3월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20~40대 ‘영 앤드 리치(Young&Rich)’ 골퍼를 겨냥하는 ‘필립플레인 골프’를 선보였다. 피케 티셔츠가 35만~70만원, 바지는 40만~70만원, 외투는 65만~90만원, 클럽백이 180~200만원대다. 비싼데도 지난달 말까지 매출은 이미 목표치 대비 200%에 이르렀다.

골프웨어 브랜드는 명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아쿠쉬네트가 운영하는 ‘타이틀리스트’는 명품거리에까지 진출했다. 지난해 9월 골프 브랜드 최초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브랜드스토어를 열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매장 맞은편 건물로,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오메가가 있던 자리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에 강남점 1층 명품관 한복판에 골프 팝업스토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골프거리인 도산대로도 최근 골프웨어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서면서 가장 활기 넘치는 상권으로 부상했다. 코오롱FnC에서 유통하고 있는 ‘지포어’는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앞에 VIP 멤버십 고객을 위한 전용 라운지, 프라이빗 바 등이 마련된 플래그십스토어를 선보였다.

가장 큰 골프웨어 시장


한국은 단일 국가 기준으로 사실상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골프웨어 시장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시장 규모는 약 5조7000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골프장의 42%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1조3000억원)보다 4배나 크다. 한국의 골프장 보유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홍승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별도 복장이 없는 미국 유럽과 달리 한국 일본에서는 골프웨어가 유난히 발달했다. 골프를 스포츠 그 자체로 여기는 미국 유럽과 다르게 한국 일본에서는 골프가 비즈니스와 연결된 ‘문화’로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30세대 ‘골린이’(골프와 어린이의 합성어)와 여성 골퍼가 대거 유입된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는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패션’ ‘브랜드’를 중요시하는 성향을 보이면서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2040세대 영 앤드 리치 골퍼들은 명품과 패션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실제로 프리미엄 골프웨어 브랜드 제이린드버그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62% 증가했는데, 구매 고객의 73%가 20~40대일 정도”라고 말했다.


골프웨어 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대를 돌파한 브랜드들이 쏟아졌다. 캘러웨이(1523억원), 타이틀리스트(1270억원), 파리게이츠(1257억원), JDX골프(1215억원) 등에 이어 PXG(1220억원), 핑(1106억원), 와이드앵글(1017억원) 등이 새롭게 ‘메가브랜드’에 진입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골프웨어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보다 11.4% 커진 6조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한국의 골프 인구는 564만명으로 처음으로 500만명을 넘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470만명이었다. 20~30대 골퍼는 지난해 115만명으로 같은 기간 배가량 증가했다.

골프웨어도 옥석 가리기?

시장에서는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면서 골프웨어 브랜드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급성장했다가 순식간에 거품이 꺼진 아웃도어 시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은 2014년 7조1600억원에 이를 만큼 커졌지만, 2019년 2조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에만 60여개의 새로운 골프웨어 브랜드가 생겨날 정도로 시장이 ‘레드오션’(경쟁자가 많아 포화상태인 시장)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수요가 골프 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엔데믹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우후죽순 생긴 업체들이 한번 싹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 골프 시장은 고가 브랜드도, 중저가 브랜드도 뭐든지 잘 팔리는 성수기를 맞고 있다. 엔데믹 전환 이후에도 골프 인구가 줄어들진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분간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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