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엠마 톰슨_요주의여성 #69
거울을 마주 보고 선 여자는 샤워가운을 벗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맨 몸을 조용히 응시하는 여자. 그녀의 눈빛에서 부끄러움이나 나르시시즘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숨기거나 평가하고 않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엠마 톰슨이 주연을 맡은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가 극장에서 상영 중입니다. 주인공 ‘낸시’는 60대의 은퇴한 교사로 최근 남편이 죽고 혼자가 된 상태. 사회적 틀에 얽매여 정해진 역할에 따라 살았던 지난 세월에 회의감을 느낀 그녀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성적 만족을 경험하고자 섹스 서비스를 신청합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젊고 다정한 남성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맥)’와 소통하면서 낸시는 자신을 가둔 경계를 넘어서고 삶의 활기를 되찾습니다.
억눌린 자아를 지닌 여성이 성적 행위에서 해방을 얻는다는 설정은 더 이상 참신한 것은 아니죠. 그것도 성매매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지지하는 데 망설이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엠마 톰슨의 연기는 이러한 한계와 우려를 뛰어 넘습니다. “낸시와 나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그는 기꺼이 영화에 뛰어들었고, 상대역을 맡은 신인 배우 다릴 맥코맥과 근사한 호흡을 펼칩니다. 영화는 진지하고 유쾌한 대화가 넘치며, 엠마 톰슨의 용기가 빚어낸 ‘마지막 신’은 특별한 여운을 남깁니다.
엠마 톰슨은 오랫동안 ‘지성적인 배우’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하워즈 엔드〉 〈센스 앤 센서빌리티〉 등 영국 대문호의 소설을 옮긴 시대물에서 지혜롭고 품위 있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지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센스 앤 더 센서빌리티〉 각본 작업에도 참여해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러브 액츄얼리〉를 비롯해 〈해리 포터〉 시리즈,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 〈칠드런 액트〉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완숙한 연기력을 지닌 명배우로 살아왔지요.
그런데 60대에 이르며 엠마 톰슨의 필모그래피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보다 더 독특하고 다채롭고 흥미로워진 것. 〈레이트 나이트〉에서 오만하고 까칠한 토크쇼 스타 역을 맡았고, 〈이어즈&이어즈〉에서는 괴물 같은 극우 정치인, 〈크루엘라〉에서는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냉혈한을 연기했지요. 미국 ELLE.com과 나눈 인터뷰에서 엠마 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5~10년간, 내가 그전에 한 작품들보다 훨씬 흥미로운 역할을 많이 했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들을 연기했죠. 여자 판사를 연기했고, 여성 토크쇼 진행자 역할도 했어요. 심지어 〈크루엘라〉에서는 끔찍한 살인자 역할까지! 지난 몇 년 동안 아주 특별한 기회들이 찾아왔고, 그중 대부분은 여성들에 의해 쓰였어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특권이고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40대 때 제안받은 역할들은 정말 지루했어요. 전부 누군가의 아내 역할이었죠. 그래서 다른 것들을 했고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의 각본가 케이티 브랜드는 처음부터 ‘낸시’ 역에 엠마 톰슨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고 하죠. 〈레이트 나이트〉의 민디 컬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엠마 톰슨은 말합니다. 몇 년 전이었다면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같은 작품을 선택하지 못했을 거라고. 40년의 커리어를 지닌 존경받는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옷을 벗는 건 누가 생각해도 쉬운 결정이 아니겠죠. 그러나 엠마 톰슨은 그렇게 했습니다. 기꺼이 여성 동료, 젊은 창작자들의 손을 잡고 마음을 흔드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엠마 톰슨이 있었기에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속 낸시의 해방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담대한 63세 배우 엠마 톰슨, 그의 모험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