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명대사㉖]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에서 만난 "뭣이 중헌디"

홍종선 2022. 8. 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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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아이리시의 단편소설 '어쩌면 살인이 벌어졌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창' ⓒ출처=네이버 블로그 wkmom0606

감독의 페르소나는 꼭 주연배우일까. 감독의 분신, 페르소나 격의 캐릭터를 우리는 종종 영화에서 발견한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전달해 주거나 감독의 눈과 생각을 대변하기도 한다. 주연일 때가 많지만, 믿음직한 조연일 때도 적잖다.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영화 ‘이창’(REAR WINDOW, 뒤쪽 창문)에서도 감독의 페르소나는 창문 너머 이웃집을 엿보는 사진작가 제프리(제임스 스튜어트 분)도 아니고, 그의 아름다운 연인이자 열혈 탐정놀이에 몸을 사리지 않는 리사(그레이스 켈리 분)도 아니다.


카레이싱 촬영 도중 다쳐 왼쪽다리 전체에 통기브스를 하고 이미 5주를 보내 온몸이 굳어진 제프리의 등을 마사지하고 주사와 약을 주는 보험사 소속 출장 간호사 스텔라(델마 리터 분)가 히치콕 감독의 대변인이다.


영화 예고편에서 출연 배우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 델마 리터가 그레이스 켈리나 제임스 스튜어트보다 먼저 등장한다 ⓒ예고편 화면 갈무리

영화의 주요 장면이나 주제 의식과 관련된 것일 때도 있지만, 당시 세태에 관한 감독의 생각과 당 시대인들에게 말하고픈 바들이 스텔라의 입을 통해 말해지곤 한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마흔다섯의 나이에 늦깎이 은막 데뷔를 하고도 오스카 후보에 6번이나 오른 델마 리터는 남자주인공의 등을 쓱쓱 문지르고, 마사지를 위해 깐 호청을 척척 개면서 천연덕스럽게 감독을 대신해 세태를 개탄하기도 하고 영화의 중요한 단서를 말하기도 한다.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아름답고 잘생긴 전형적 주연배우가 아니라 삶의 페이소스가 그대로 드러나는 조연배우가 감독의 페르소나일 때 가능한 ‘짜릿함’이 있다. 어쩐지 가상의 세계에서나 통용될 것 같은 허상의 얘기가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선 세상에 대한 일갈이나 탁월한 식견으로 받아들여져 귀에 쏙쏙 들어오곤 한다. 영화와 감독 생각에 현실감을 드리운다는 얘기다.


또 작품의 기능 면에서 보더라도, 한창 ‘이야기 수레’를 땀 흘리며 굴리는 주인공이 주제어까지 말할 때보다 한결 흐름이 여유롭고 그 결과 관객에게 잠시 쉬어가는 지점을 제공한다. 그 망중한의 쉼표에서 관객은 세상이나 나에 얽힌 현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여 감독의 생각과 일치하는 본인의 생각을 공고히 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상이나 식견을 수용하기도 한다.


창문 너머 이웃집 창문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제프리는 관음증에 대한 문제 제기인 동시에 영화라는 창을 통해 세상 속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감독 혹은 영화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출처=네이버 영화정보

작품에 몰입해 숨 쉴 틈 없이 스토리를 따라가고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 영화 관람의 본류지만, 때로 짧은 쉼터에서 나와 세상을 돌아보게 되는 경험은 우리가 영화를 보는 중요한 이유이고 영화를 ‘오락’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예술의 존재 이유, 의미와 본질적으로 같다.


영화 ‘이창’만 해도 창문 너머 이웃집을 엿보다 살인 사건의 낌새를 눈치채고 이를 추적하는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흠뻑 즐기는 영화다. 남에게 보여주는 앞쪽 창문이 아니라 삶의 이면, 진실이 드러나는 뒤쪽 창문을 생각하게 하고 나아가 남의 일상을 엿보는 제프리를 통해 타인의 이야기와 삶을 엿보는 영화의 윤리성에 대해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장르적 재미와 주제 의식만을 추구하면 관객은 쉴 틈도 없고 작품도 되레 일차원적이고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 곳곳에서 작품의 본류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 해도 때로 시간을 할애해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피력한다. 그것은 부차적으로 인물의 성격, 인물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효과를 얻음과 동시에 앞서 말했던 쉼표 역할도 하고 무엇보다 작품을 현실에 뿌리내리게 한다. 허구의 이야기가 소소한 장면들에 의해 현실감과 박진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마침 그런 소소한 얘기들이 관객 자신의 고민과 접점이 있다면 영화는 더욱 쑥 우리 안으로 들어오곤 한다.


글로 쓰고 보니 거창한데, 필자가 영화 ‘이창’(1954)을 오랜만에 다시 보며 인생을 곱씹게 된 대사는 이 장면에서 만났다.


아래 대사가 나온 장면은 아니다. 단지 공간과 인물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daraksil_hyejin에 게시된 영상 화면 갈무리

중년의 간호사 스텔라는 자신의 담당 환자 제프리의 등을 마사지하고 있다.

스텔라: 뭐가 문제죠?

제프리: 리사 프리몬트

스텔라: 설마! 그렇게 참한 아가씨와 젊고 건강한 당신 사이에서요?

제프리: 결혼하고 싶어 해요.

스텔라: 정상이죠.

제프리: 난 그러고 싶지 않아요.

스텔라: 비정상이군요.

제프리: 아직 결혼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요.

스텔라: 좋은 여자만 있으면 준비는 다 된 거예요. 리사만큼 좋은 규수가 또 어디 있다고 그래요.

제프리: 괜찮은 여자죠.

스텔라: 싸웠나요?

제프리: 아뇨.

스텔라: 아가씨 아버지가 총을 들고 위협하던가요?

제프리: 뭐요, 스텔라?

스텔라: 전에도 있던 일인 걸요. 그렇게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부부도 있어요.

제프리: 내게 어울리는 여자가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스텔라: 너무 잘난 여자라 이거군요.

제프리: 너무 완벽하죠. 재능도 너무 많고. 너무 예쁘고 너무 세련됐어요. 하지만 내겐 안 맞아요.

스텔라: 뭐가 맞지 않는지 말해 줄래요?

제프리: 네? 간단해요. 리사는 고급이 어울린단 말이에요. 비싼 식당에 우아한 칵테일 파티. 현명한 사람은 상황에 잘 대처하죠. 아무것도 없는 사진사와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그녀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그녀가 평범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스텔파: 그러다간 평생 결혼 못 해요.

제프리: 아마 하긴 할 거예요. 내 생활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면요. 고상한 삶이나 밝히는 사람이면 곤란하죠. 난 그러니까,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즐거워할 여자가 난 필요해요. 다른 남자를 찾아보라고 하려고요.

스텔라: 알겠어요. 사랑하니까 헤어지자 이런 건가요? 제프리 씨, 전 많이 배운 여자는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두 남녀가 사랑하면 합쳐지는 게 당연해요. 한 병에 들어있는 이물질처럼 서로를 분석하는 짓은 그만두고 말이에요.

제프리: 결혼은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스텔라: 이성! 그놈의 이성이 세상을 망친다니까요! 현대판 결혼?

제프리: 우린 너무 감정에만 치우쳐 있어요.

스텔라: 허튼소리! 옛날엔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 결혼했어요. 요샌 책만 많이 보고 쓸데없는 지식만 늘어서는 뭐가 진짜로 중요한지 분간을 못 한다니까.

제프리: 사람마다 감성적인 기준이 달라서…

스텔라: 내가 남편과 결혼했을 때 우린 맞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도 전혀 맞지 않아요. 그래도 재미있게 살고 있어요.

제프리: 그만해요, 스텔라. 샌드위치나 만들어 줘요.

스텔라: 그러죠. 빵에 상식을 발라 주겠어요. 리사는 당신을 사랑해요. 충고할 말은 한 가지, 결혼해요.

제프리: 뇌물 먹었어요?

스텔라, 침묵으로 답을 대신하고 샌드위치를 만들러 주방을 향한다.


1954년 작이기에 현재와 결혼에 대한 사고가 다를 수 있지만, 그래서 더욱 시대를 초월한 사랑과 결혼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무려 68년 전에도 ‘옛날에는 사랑하면 결혼했는데 현대엔 너무 많은 걸 따진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결혼 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상대’이고,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 제일인 양 추앙하며 서로에 대해 분석하는 짓은 그만두고 ‘사랑하면 결혼하라’고 알프레드 히치콕은 스텔라의 입을 빌어 말한다.


한 인간의 실체, 삶에 관한 진실은 그가 앞으로 내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뒷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창, 인간과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통로 ⓒ예고편 화면 갈무리

결혼이 필수라든가 바람직한 결혼관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개인과 다양성이 중요한 21세기에 그런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다. 스무 살 갓 넘어 봤던 영화를 세월 속에 누차 감상하다 보니, 반백 년이 넘은 나이에 다시 보니 이 장면이 비단 결혼에 국한한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요샌 책만 많이 보고 쓸데없는 지식만 늘어서는 뭐가 진짜로 중요한지 분간을 못 한다니까”.


영상이 주류인 현시대에 맞춰 보면 ‘책’은 다른 콘텐츠로 바뀌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쓸모 적은 지식만 늘어, 본질을 벗어난 기준들만 자꾸 늘어 “뭣이 중한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장구한 시간 속에 개인의 경험이 사회적 지혜로 축적돼 세대를 넘어 이어질 법도 하건만 우리는 각자 ‘그 일이 처음이라’, ‘이생은 처음이라’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맴도는 정도가 아니라 순수한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빵에 상식을 발라 주겠어요.”


히치콕 감독은 긴 수다 끝에 ‘상식’을 말한다.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결정짓는 중대사를 선택하면서, 민감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섣불리 결심하기 어려운 일을 판단할 때, 필요한 건 인류 최고의 지성이 아니라 ‘상식’이라고 얘기한다. 인류의 오랜 역사 동안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해서 다다른 작은 결론, 대다수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상식에 해답이 있다고. 길고 긴 시간 동안 많은 실험구와 대조구를 통해 검증된 ‘상식’을 거부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겠지만, 자신의 실리와 욕망만 중요한 이들이 주인공인 세태 속에 이기적 지성과 본능을 이기는 상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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