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가볍고 단순하게..잡동사니 청소서 얻은 생활의 지혜

최창연 2022. 8. 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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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3)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다음 집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바닥에 누워 방안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집이 무척 작게 느껴졌다. 작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작은 집에 쓸데없는 물건이 넘쳐난다는 말이 더 가깝겠다.

‘이 쓸데없는 물건들과 더 이상 같이 살 순 없지.’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 근데…. 이사를 하게 되면 이 잡동사니를 고스란히 담아서, 다시 새 집에 넣어두겠구나. 그러고는 다시 함께 사는 것이다. 으악. 잡동사니와 같이 사는 것도 싫고, 이 잡동사니를 몽땅 싣고 이사하는 것은 더 싫다. 그런데 큰 집으로 이사 가면 해결이 될까?

보지 않을 책들이 쌓여 있는 책장, 유행이 지나 더는 입지 않는 옷들이 그대로 걸려있는 옷장, 오만 것들이 첩첩이 쌓여있는 베란다. 그중에서도 제일 보기 싫은 건 싱크대 찬장이다. 대량으로 구매해 쌓아둔 각종 생필품과 화장품,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스파게티 소스와 도시락 김, 길에서 무료로 받은 물티슈, 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오며 사주었던 커피, 기념품으로 받은 컵.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마음으로 쑤셔 넣은 잡동사니들은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쓰지 못하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발견되곤 했다.

세상에는 물건을 쌓아두는 것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텐데 (넓은 다용도실을 가진, 정리 정돈을 잘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나의 경우엔 물건이 쌓이면 기분이 착잡해진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아무 생각 없이 사놓고는 정작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것이다. 버리자니 아까워 대충 쑤셔 넣고 모른 척 지내왔다.

[그림 최창연]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인 곤노 마리에는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타입, 둘째는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못하는 타입. 불행히도 나는 세 번째 타입이었는데, 그 두 가지를 혼합한 타입, 즉 버리지 못하면서 제자리에 두지도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싸다고 사거나, 공짜로 받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데, 심지어 그것을 정리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원룸에 살면서 얻게 된 것은 한정된 공간에 대한 감각이다. 아무리 공들여 정리하더라도, 물건이 많으면 결국 넘치게 되어 있다. 버리지 않으면, 결국은 내 공간을 빼앗긴다. 그것은 여행 배낭을 싸는 일과 비슷하다. 아무 생각 없이 넣다 보면 무거운 배낭을 거북이처럼 메고 다녀야 한다. 그래서 배낭을 쌀 때는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꼭 필요한 물건을, 이왕이면 취향에 맞는 물건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배낭이 빵빵해지면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 ‘이게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일까.’

원룸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사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물건에 치여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그 일요일 오후, 나는 방안을 휘이 둘러보았다. 그리고 부엌 서랍에서 분홍색 20L 쓰레기봉투를 꺼내 버릴 물건을 찾았다. 더 이상 입지 못하는 옷,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 여기저기 쑤셔놓은 비닐봉지, 더는 감흥이 없는 기념품들을 넣다 보니 금세 봉투 3개가 가득 찼다. 이게 뭐라고 그동안 쌓아두고 살았던 것일까.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원해.’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물건을 담으면서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모호한 마음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삶을 최대한 가볍게 꾸리고 싶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몰아세우는 대신 ‘이미 나는 충분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자유 시간이 아주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가볍고 단순한 삶은 무조건 아끼고 궁핍하게 사는 삶이 아니다. 기쁨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물건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삶이다. 고정 생활비나 카드 결제액이 줄어든다면,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배낭의 짐이 줄어들면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작은 원룸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덜어낸 만큼 공간은 여유가 생겼다. 말끔한 마음으로 빈 공간을 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해볼까 생각해 본다. 무엇을 갖고 싶다는 마음 대신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한다. 청소를 끝내고 바라보는 빈 공간은 그런 용기를 준다.

인생에서 의미 없는 것들을 사고 쌓아두는 대신에, 내게 맞는 것들로 공간을 꾸리고 가볍게 살아가야겠다. 나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이 세계에 온 여행자이니까.

그림작가·물리치료사 puzzlet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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