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경제 '슬리포노믹스' 시대..현대인에게 꿀잠을 허하라

이승연 2022. 8. 19.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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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더위에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오직 그것뿐일까. 스마트폰에 넘쳐나는 콘텐츠로 밤 새는 줄 모르고, 직장, 업무, 공부 등에 허덕이며 스스로를 돌보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잠은 사치’라는 말 자체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수면에 대한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슬리포노믹스’(Sleep과 Economic의 합성어) 열풍을 탄 콘텐츠들이 주목받고 있다.

▶‘휴(休)’ 넘어선 ‘잠’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2011년 4800억 원 수준에 불과했던 국내 수면 관련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불면증과 수면장애를 겪는 현대인이 늘면서, 양질의 숙면을 위한 아이템 수요가 늘기 시작한 것. 숙면을 위한 소비를 가리키는 ‘슬리포노믹스’ 시장이 커지고 있다. 마켓컬리의 올해 상반기(1~7월) 수면 관련 상품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7.5배 늘었다. 특히 7월 한 달간 침구류 판매량은 전달보다 3.3배 증가했다. 매트리스 토퍼와 이불, 베개를 포함해 침구 스프레이, 아로마 오일, 건강기능식품 등 다양한 상품군에서 일제히 성장세를 보였다. 수면 케어 상품뿐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테크 제품에서도 사용자의 수면 습관을 분석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에 대해 보다 깊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마련하기도 하고, ‘잠의 적’으로 여겨지던 유튜브 채널에서는 ‘잠 오는 ASMR’, ‘수면 유도 명상’, ‘백색소음 자장가’ 등 시청자들의 수면을 돕는 기능의 채널 등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개개인의 수면 환경을 맞춤으로 고려한 초고가 제품들이 출시되는 등, 각 업계에서 ‘일상 속 수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수면 시장에 대한 성장세는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현대인들의 잠’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라이프스타일, 문화 콘텐츠가 눈에 띄고 있다.

호텔 업계들도 집에서 호텔 침구를 체험할 수 있는 베딩 굿즈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조선호텔앤리조트는 리테일숍 ‘더 조선호텔’에서, 글래드 호텔은 ‘글래드 베딩’,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스위트 홈 바이 워커힐’을 통해 쾌적한 숙면을 위한 다양한 베딩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애플워치는 워치OS 9의 수면 앱을 새로 선보였다. 수면 단계 기능과 FDA 심사를 통과한 심방세동 기록 기능으로 사용자의 건강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사진 애플).

▶잠자는 숲속의 현대인들 ‘숲속 꿀잠대회’

‘행복은 충분한 수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미국 소설가 로버트 앤슨 하이라인) 그렇다면 지금 우린 충분히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을까? 수면 부족은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면 시간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0~30대 불면증 환자수도 지속 증가하는 등 세대를 가리지 않고 수면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19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감까지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숲속 꿀잠대회 전경(사진 유한킴벌리)
‘잠 못 이루는’ 세대에게 잠깐의 꿀잠으로 행복을 선사하고자 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6월, 생활용품 전문업체 유한킴벌리가 개최한 ‘숲속 꿀잠대회’가 바로 그것.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숲속 꿀잠대회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의 일환으로 잦은 야근,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미래 고민 등으로 늘 잠이 부족하고 스스로를 돌보기 어려웠던 현대인들이 도심의 숲속에서 힐링하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계획된 이색대회다. 기후변화 위기에서 주요 탄소 흡수원인 숲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매년 참가 열기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숲속 꿀잠대회는 32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발된 35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지난 7월16일 토요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다. 대회는 참가자가 숲속에 마련된 에어 배드 위에서 꿀잠 어매니티(안대, 귀마개 등)와, 심박스 체크를 위한 미밴드를 착용하면 수면 중 자동 측정되는 심박수를 통해 베스트 꿀잠러를 선정한다. 안정적인 심박수로 올해 꿀잠대회 우승을 차지한 신청자는 “평상시 직장에 출퇴근할 때 피곤함에 졸다가 본 대회를 알게 되어 꿀잠이 필요해 참가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잠에 대한 고찰 ‘나의 잠’

문화역서울284 기획 전시 ‘나의 잠’(사진 문화역서울284)
문화역서울284에 입장하자마자 관람객들을 반기는 건 인트로 공간(중앙홀)에서 동물의 탈을 쓴 채 저마다 누워 있는 조각 12점이다.(-김홍석 ‘침묵의 공동체’, 2017~2019) 대학생, 태권도 사범, 전직 트럭 운전사, 유명 영화배우, 전직 경비원 등을 아우르는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잠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잠드는 것도, 쉬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오로지 ‘침묵’을 한 채 탈을 쓰고 누워 있다. 한낮에 잠들어 있는 이들은 모두 타인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의 잠은 은밀하고 사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는 공공의 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역서울284의 두 번째 기획전시 ‘나의 잠’은 인간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적 행위인 ‘잠’에 주목하여, 잠에 대한 사회 보편적인 통념을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해석으로 재탄생시킨 작업들을 전시하고 있다. ‘잠’은 인간 삶에 있어 쉼과 충전을 위한 기본 행위이지만,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줄여야’ 하는 시간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번 전시는 ‘잠’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1인칭’의 세계로 가정, 19팀의 작가들이 독자적인 시각을 투영한 작품을 선보인다. 70여 개의 작품은 회화, 조각, 설치미술과 같은 고전적 매체부터 다양한 영상 작업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업까지 두루 보여준다. 전시 구성은 하루 동안의 시간대를 기준으로 △한낮: 나의 잠, 너의 잠 △23:20: 반쯤 잠들기, △1:30: 작은 죽음, △3:40: 잠의 시공간, △새벽에 잠시 깨기 △7:00: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과 같이 구체적인 흐름에 따라 구성하되, 실제 전시장에서는 규칙화하기 어려운 잠의 단계를 컬러코드와 함께 자유롭게 흩어지는 작품 배치로 전달한다. 또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난 후 서측 복도 침대 포토월 등과 같은 휴식공간에서 편히 쉴 수 있다는 점 역시 이번 전시의 즐길 거리 중 하나이다.

‘나의 잠’을 기획 총괄한 유진상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잠’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고, 작품에 자신을 투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잠’이 ‘나머지’ 또는 ‘여백’이 아닌 삶의 커다란 영역으로 다루어지기를 바라며 관객들에게 이 전시를 바친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천일야화’ 같은 불면증 이야기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마리나 벤저민 저 / 김나연 역 / 마시멜로 펴냄)
잠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밀한 활동 영역이다. 특히 불면증의 경우엔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창백한 안색, 퀭한 눈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 메말라가는 몸과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다.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넓고 깊게 다뤄지지 못한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작가 마리나 벤저민은 자신의 불면증을 재료 삼아 책으로 빚어냈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마시멜로 펴냄)에서 저자는 불면증을 치료하는 병리학적 접근 대신 문학, 미술, 신화학, 역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사회학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잠과 불면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페이지 정도의 작은 책은 자신의 고통을 처절하게 읊는 회고록이기도 하고, 때론 동거인과 거쳐온 사랑의 역사를 숨겨놓은 서랍 속 일기가 되기도 하며, 때론 숨겨져 있던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한 비밀의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 이 ‘불면의 동지’는 가장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을 ‘잠의 세계’로 이끈다.

[글 이승연 기자 일러스트 포토파크 사진 및 자료제공 유한킴벌리, 문화역서울284, 각 브랜드 , 각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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