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로 내몰린 청년, 대책 없는 퇴거에 씁쓸함만

조현지 2022. 8. 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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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서 침수피해가 속출하자 서울시가 안전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해 '반지하 퇴출'을 선언했다.

그러나 청년 등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을 또 다른 취약주거로 내몰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상황과 입지조건, 주거환경 등을 감안했을 때 고를 수 있는 최대한의 주거 '반지하'를 없앨 경우 또 다른 취약주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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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 빌라 주변에 젖은 장판, 살림살이 등이 널부러져 있다. 폭우로 인한 침수피해가 발생한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여전히 복구가 되지 않은 모습이다.   사진=조현지 기자

#6년째 ‘서울살이’ 중인 A씨(26·남). 현재 거주 중인 관악구 반지하 원룸은 갓 취업한 A씨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서울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주거환경이 괜찮은 주거였기 때문이다. 최근 잇단 침수피해로 ‘반지하 퇴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도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반지하 없애는 거 좋죠. 근데 반지하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 고시원에 살았을 걸요?”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서 침수피해가 속출하자 서울시가 안전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해 ‘반지하 퇴출’을 선언했다. 그러나 청년 등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을 또 다른 취약주거로 내몰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앞으로 서울에서 지하·반지하는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8~9일 서울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거주민들이 고립돼 사망한 사고가 잇따른 데 대한 대응이다. 건축법 개정을 통해 주거용 지하·반지하를 전면 불허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하고 기존 건축물은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는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통계청과 서울시 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로 이 중 절반이 넘는 20만849가구(61%)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전국에서 29세 이하가 반지하에 거주하는 비율은 2.1%(3만7000가구)로 전 세대 중 유일하게 2%대를 넘어선다.

열악한 주거환경을 퇴출하고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반지하 거주 비중이 높은 청년층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소득상황과 입지조건, 주거환경 등을 감안했을 때 고를 수 있는 최대한의 주거 ‘반지하’를 없앨 경우 또 다른 취약주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년 세입자 연대 민달팽이유니온은 논평에서 “반지하 같은 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또 다른 반지하로, 옥탑으로, 쪽방으로, 시설로, 거리로 내쫓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업소에 중개 매물에 대한 정보가 붙어있다. 반지하 매물에는 ‘싼방’이라는 표현이 적혀있다. 통상 반지하층와 지상층의 가격차이는 전세 5000~7000만원, 월세 10~20만원.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현재 같은 조건에서 층수만 다른 전세 매물로 반지하는 6000만원,  지상은 1억3000만원에 올라와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조현지 기자

반지하에 살고 있는 청년들은 “주거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대방역 인근에 거주 중인 B씨(28·남)는 “반지하보다 더 좋은 비슷한 가격대에 지상층 주거환경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곳을 선택했을 것”이라며 “솔직히 말해 돈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 없이 반지하만 퇴출하겠다는 정책은 결국 거주자들을 쫓아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관악구 봉천동에 거주 중인 C씨(27·여)도 “최대 금액으로 가능한 지상층 집이 치안이 너무 안좋거나 지나치게 오래된 곳이었다. 고를 수 있는 최상의 주거가 반지하”라며 “정책 취지는 공감하지만 반지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반지하 거주자를 위한 주거공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노후 공공임대 재건축(258개단지)을 통해 23만호 이상의 공공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반지하 거주 가구를 대상으로 지상층으로 이주할 경우 월세를 보조하는 ‘특정 바우처’를 신설해 월 20만원씩 최장 2년간 지원하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다만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 후 반지하 거주자 이주까지 약 20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실효성 논란도 불거졌다. 이에 정부·지자체가 기존 민간주택을 매입한 뒤 개보수해 임대하는 ‘매입형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반지하 거주자들을 위한 실현 가능한 주거상향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며 “반지하 가구 밀집 지역의 경우 매입임대방식으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반지하 거주자에게 먼저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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