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레시피 | 직언의 조건, 리더의 신뢰가 있어야

2022. 8. 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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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언은 리더의 신뢰를 받는 자의 것이다. 세종은 허조를, 당 태종은 위징을 신뢰했다. 두 대신이 사심 없이 군주와 백성 그리고 나라를 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해서 두 사람의 직언을 감내하고 중용했다. 신뢰하지 않는 부하의 직언, 상사는 다르게 생각한다. ‘뭔가 나를 비꼬는 것인가?’라고.

▶직언의 3대 조건, ‘때, 장소, 신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국제 사회에 냉정한 메시지를 전한다. 바로, 누구도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싸워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과 EU가 군수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했지만 결국 러시아에 직접 맞서는 것은 우크라이나이다.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이 기르는 것, 냉혹한 국제 질서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라는 거대한 수렁에 빠져 러시아군은 수많은 인명 피해는 물론 상당량의 미사일, 탱크, 장갑차, 전투기를 잃었다. 전쟁 발발 시 러시아는 3일만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수 있다 판단했다. 물론 이는 푸틴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 정보기관과 장성들의 그릇된 정보에 의한 푸틴의 오판이다.

전문가들은 군과 정보기관에서 푸틴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즉 푸틴이 ‘개전=승리’라는 확증편향을 갖게 되었는데, 정보기관이나 군 장성들이 이에 다른 의견을 낼 용기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1인자의 생각, 신념을 뒷받침하는 이론과 정보는 제공했지만 이에 반대되는 이견은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인 독재체제에서 1인자와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다. 이처럼 1인자에게 정확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직장생활, 사실 편한 구석이 없다. 오죽하면 ‘남의 돈 받기 쉬운 줄 아냐’라는 말도 있다. 입사했는데 막상 적성, 전공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나마 일에 재미가 생겼는데 월급이 동종업계나 연차에 비해 형편없거나, 회사에서 내 미래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지점의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직장생활 최고 스트레스는 ‘상사 스트레스’이다. 상사 잘 만나는 것은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 할 정도다. 물론 모든 상사가 ‘진상이나 꼰대’는 아니다.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존경할 만한 상사도 분명 있다. 다만 그가 지금 내 앞에 없을 뿐이다.

상사는 딱히 ‘상사질’을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스트레스를 준다.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고, 내 인사고과를 담당해서만도 아니다. 직장인에게 ‘상사의 존재가 왜 스트레스인가’ 물어보면 ‘그냥 거북하고, 부담스럽다’는 답변이 많다. 직장에서 상사가 나만 구박하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직장인들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심지어 이직도 고려한다. 백 번 양보해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도 개선이나 발전을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상사를 만나기는 어렵다. 이런 관계의 지속은 악순환이다. 마음의 문을 열기는커녕 ‘그래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독불장군식 행보는 결과는 뻔하다. 물론 상사의 성질에 맞추는 것도 오래 할 짓은 못된다. 이는 주객전도이다. 직장은 일을 하고 그 대가를 얻는 곳이지 출근해서 퇴근까지 상사와의 관계에만 몰입한다면 이는 업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첫날부터 소통, 협의는 쓰레기통에 처박고 ‘내 생각만이 옳고, 내가 하는 것이 정의이고, 내가 말하는 것이 팩트’라고 외치는 상사와는 그 어떤 소통과 처세의 달인도 방법이 없다. 하지만 상사도 그 자리를 가위바위보해서 올라온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처음부터 불통의 리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온갖 방법을 시전해본 후 가장 효과적인 리더십을 선택했을 뿐이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리더십을 정한 것이다.

이런 상사들에게는 ‘금기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권위, 직급, 자존심, 능력을 건드리는 것이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가타다 다마미는 저서 『나쁜 상사 처방전』(눌와 펴냄)에서 무능한 상사의 마음에는 ‘과거의 성취’, ‘특별 의식’, ‘무능의 실체’가 있다고 썼다. 즉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그때는 집에 들어갈 생각도 못했어. 그 전설적인 프로젝트 알지? 그때 내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 계획을 완성했잖아. 이 회사 건물 3층 정도는 내가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야’라는 ‘영광의 추억’이 담겨 있다. 또 ‘내가 회사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야’라는 특별함을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게다가 세상의 변화에 적응 못하는 무지와 무능이 드러나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이런 상사가 최악의 상사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는 상사들에게 조금씩 내재된 공통의 특징이다.

이런 상사에게 접근하는 것은 조심성이 필요하다. 특히 그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예민함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제일 어려운 행동이 직언이다. 우리는 직언을 잘못해 쫓겨난 임원을 수없이 보았다. 그렇다고 ‘그래 네 회사 망하지 내 회사 망하냐. 될 대로 되라’며 상사의 오류에 눈 감는 것은 당장은 편하지만 분명 그 오류가 부서와 부서원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직언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것은 완벽한 리더를 만나는 것이나, 이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성군도 실수와 잘못이 있었다. 세종도 ‘직언을 일삼는’ 허조가 있었고, 당 태종 역시 ‘직언 대신’이 있었다. 물론 허조와 위징은 세종과 태종이 귀를 연 명군이었기에 가능했다. 암군, 폭군에게도 직언을 하는 신하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처형장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는 직언도 그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알려준다.

▶상사를 부정, 불의의 상대로 여기지 마라

직언의 조건, 그 시작은 리더가 신뢰하는 자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종은 허조를, 당 태종은 위징을 신뢰했다. 두 대신이 군주와 백성 그리고 나라를 위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뢰하지 않는 부하의 직언을 상사는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를 비꼬는 것인가?’, ‘지시와 명령을 거부하는 반대자인가?’라 생각한다. 이는 직언의 부작용이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과 그의 친구이자 참모인 보로실로프의 일화이다. 1939년 11월 스탈린은 핀란드를 침공했다. 바로 ‘겨울전쟁’이다. 당시 소련군과 핀란드군의 전력 차이는 100:1. 모두 소련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1940년 3월까지의 전쟁에서 소련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핀란드 국민은 소련군에 맞섰다. 한겨울, 소련군은 보급품이 끊기면서 고립되었고 핀란드군은 게릴라전을 펼쳐 핀란드군 1개 연대가 소련군 2개 사단을 전멸시키기도 했다.

스탈린은 분노했다. 그는 장군, 정치국위원들과 식사자리에서 참석자를 질타했다. 모두 스탈린의 분노에 몸을 사렸다. 그의 분노는 총사령관 보로실로프에게 향했다. “어떻게 이 모양인가? 총사령관은 책임져야 할 것 아냐?” 그러자 보로실로프는 접시를 스탈린에게 던지며 큰소리로 외쳤다. “뭐라고? 당신이 유능한 군 장교들을 다 죽여버려서 벌어진 일이야”라고. 그러자 모두 보로실로프는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화를 멈추고 식사를 마쳤다. 그 뒤 보로실로프는 해임되었지만 숙청당하지 않았다. 사실 스탈린은 레닌 사후 권력 투쟁에서 숙청을 단행했다. 특히 군에 대한 숙청으로 당시 장군 90%, 영관급 80%가 사형이나 유배를 떠나 군에는 유능한 장군들이 전무했다. 보로실로프는 이런 팩트를 스탈린에게 말한 것이다.

또 있다. 스탈린이 보로실로프와 술을 먹다가 농담을 했다. “자네 혹시 영국 스파이 아냐?” 그러자 보로실로프는 스탈린의 빰을 후려쳤다. 그러자 스탈린은 농담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스탈린과 보로실로프의 끈끈한 유대감,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스탈린의 유일한 술친구이자 모든 일은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보로실로프였다. 그렇기에 보로실로프는 스탈린에게 ‘직언’이 가능했다.

직언에 앞서 상사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상사가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먼저 살펴야 하고 직선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상사도 “잘못하고 있어요”라는 말에 “그런가, 내 잘못을 알려주어 고맙네”라고 하진 않는다. 직언의 좋은 방법은 비유 등 간접적 방법이다. 일테면 상사의 지시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이 때 “부장님, 분기 자료와 마케팅 조사 자료까지 참고하는 것이 영업2부 보고서보다 완벽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추가하는 것이 어떨지요”라든가, “부장님, 마케팅부에서 상무님께 올린 보고서에 시장 현황에 대한 지적이 나왔는데, 이 부분 자료를 더 준비하면 어떨까요”라는 합리적인 제언을 하는 것이 좋다.

즉 상사 스스로 오류를 인식하게 하는 방법이다. 또 이 직언을 받아들일 때 부장에 대한 상무의 평가가 고점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직언이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에게 이익이다’를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직언의 전제는 팩트이다. 소문, 짐작, 추정으로 상사의 지시나 결정을 반대, 부정해서는 안된다. 부장이 ‘박 차장, 그 제안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작년에도 그랬고 아무튼 감이 좀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라는 점쟁이 같은 말은 부장의 분노를 살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사를 불의나 부정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상사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상사의 지시나 결정에는 그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배어 있다. 이를 무조건 ‘틀렸고, 옳지 않다’고 직언을 하는 것은 금기이다.

▶직언이 일이었던 조선 시대 간관

‘사간원司諫院’. 조선시대 국왕 직속으로 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3사이다. 사간원의 기능은 간쟁과 봉박이다. ‘간쟁’은 왕의 언행과 지시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고 ‘봉박’은 정치행위의 부당함을 가려내는 것이다. 조선은 간관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사간원은 정3품 대사간 1명, 종3품 사간 1명, 정5품 헌납 1명, 정6품 정언 2명 등 7명이었지만 그들은 직급 이상의 권한을 행사했다. 이들은 왕의 경연에 참여했고 왕의 행차에도 동행했다. 또 5품 이하 관원 임용도 심사했다. 해서 이조전랑과 함께 사간 직책에는 늘 각 당파가 자기 사람을 앉히고 싶어했다. 또 간원들은 근무시간에 음주가 가능한 유일한 관리였다. 술기운으로 임금에게 ‘아니되옵니다’를 아뢰라는 나름의 배려이다.

원나라를 세운 칭기즈칸. 그는 몽골을 통일하고 대륙, 남아시아, 인도, 중동, 러시아, 동유럽을 정복했다. 그의 승리 요인은 저항하면 모든 사람과 동물마저 학살하는 공포의 초토화 작전. 또한 인종, 나라와 관계없이 필요하면 등용하는 화합 정책이었다. 칭기즈칸과 후계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 그는 대학살을 멈추게 했고, 농경을 장려했으며, 유학을 도입했다. 또한 법령과 세금제도를 마련하는 등 원제국의 제도와 통치 이념을 마련한 인물이다. 바로 야율초재이다.

야율초재는 출신 성분도 돋보인다. 그는 거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나라 관리를 지냈고 이후 칭기즈칸에게 발탁되었다. 출신의 불리함을 딛고 재상이 된 야율초재는 칭기즈칸, 2대 예종 툴레이, 3대 태종 오고타이 그리고 내마진 황후까지 4대를 보필했다. 그는 재상과 간관의 역할을 했다. 칭기즈칸이 오고타이에게 “그는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라고 극찬했다. 야율초재의 목적은 단 하나. 황제를 올바르게 보필하는 것, 그것이 민생 안정을 도모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황제가 그를 신뢰하자 각종 모함이 난무했던 것. 그러나 그는 ‘청렴함’과 성실함’으로 극복했다. 비록 내마진 황후와 간신들에 의해 배척 당해 55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야율초재의 존재로 원나라는 존속할 수 있는 힘을 비축했다.

야율초재는 칭기즈칸, 오고타이에게 날카로운 직언을, 때로는 황제에게 ‘무엇이 이익인가?’에 관해 부드럽게 제언을 했다. 오고타이는 땅을 없애고 초지로 개발해 목축업을 장려하라 명했다. 야율초재는 ‘더 나은 방법’을 제시했다. “목축업을 장려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한족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세금을 거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면 지속적인 수입원이 생겨 몽골은 부강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오고타이는 금나라 수도에 초토화 작전을 지시했다. 항복하면 살려주지만 저항하면 모두 불태워 없애는 공포의 전술이다. 이에 야율초재는 말했다. “전쟁을 하는 것은 땅과 백성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을 모조리 죽이면 의미가 없습니다. 금나라 수도에는 기술자, 학자와 천하 문물이 다 있습니다. 모조리 죽이면 폐하는 얻을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야율초재는 오고타이에게 어떤 것이 이익인지를 알려주고 선택을 하게 했다.

1241년, 오고타이가 죽었다. 권력은 황후 내마진이 장악했다. 간신의 시대가 온 것이다. 황실은 다시 부패해졌다. 황후와 귀족들은 야율초재를 멀리했다. 그들에게는 원칙보다는 변칙이, 공정과 정의보다는 독점과 편중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결국 야율초재는 조정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243년 55세에 죽었다. 황제에게 올바르게 직언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의 죽음이었다.

[글 박기종 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포토파크 인용 및 참조 『나쁜 상사 처방전』(가타다 다마미 지음 / 장윤서 역 / 눌와 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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