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쩨쩨해 보이는 감사원

손병호 2022. 8. 1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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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감사원이 정권과 세게 부딪쳤던 일 중 하나는 2005년에 있었던 행담도 개발사업 감사였다. 서해안 고속도로상에 있는 행담도를 해양레저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공기업들이 편법을 동원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고, 청와대 수석급 인사들까지 연루된 일이었다. 감사가 시작되자 청와대와 여당은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전윤철 감사원장은 본인부터 ‘여권’ 사람임에도 감사를 강행했고, 감사 과정에서 행담도 개발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감사원이 막판에 청와대 인사들을 수사 요청 대상에서 제외해 ‘봐주기 감사’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감사 착수 자체만으로도 노무현 정권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정권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감사원의 독립적 지위를 오롯이 지킨 케이스다. 그는 2020년 4월 이후 공석이 된 감사위원 자리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려 하자 ‘친정권 인사’라 정치적 중립에 위배된다며 퇴임할 때까지 임명 제청을 거부했다. 퇴임 전까지 청와대 인사들이 숱하게 항의도 하고 부탁도 했지만 끝까지 소신을 지켰다.

감사원 사람들은 평소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 기구로 돼 있으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된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자랑삼아 얘기한다. 그게 헌법과 법률에도 나와 있다는 걸 강조한다. 자신들은 다른 행정부 조직과는 달리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말대로 그게 감사원의 존재 의의다.

그런 감사원이 요즘 걸핏하면 정치적 중립과 관련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야권은 감사원이 정권에 코드를 맞춰 표적 감사, 보복 감사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한다. 전 정권 사람들이 앉아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대한 감사와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 선거관리위원회 감사 등과 관련해 그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최재해 감사원장이 국회에서 감사원 역할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발언을 두고서도 독립적 지위를 스스로 무너뜨린 말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런 논란에 대해 감사원은 연간 감사계획에 포함돼 있던 감사였지 표적 감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 선관위 감사와 서해 피격 감사에 대해선 ‘국민적 의혹이 큰 사안에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게 감사원의 기본 임무’여서 감사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2020년 가을에 발생한 서해 피격 사건의 경우 지난해에도 줄곧 국민적 의혹이 큰 사안이었지만 그때는 하지 않다가 지금 하는 건 이상하게 비친다.

권익위를 상대로 갑자기 복무기강 감사에 나선 것도 석연치 않다.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감사원이라면 전현희 권익위원장의 퇴진 문제를 놓고 여야 공방이 격화된 지금은 오히려 감사를 피할 타이밍이다. 게다가 장관급 인사에게 지각 등을 문제 삼는 감사라니 명분도 쩨쩨해 보인다. 전 위원장을 쫓아내기 위한 감사가 아니냐는 의혹에 감사원은 “제보와 언론 보도를 토대로 자체 판단으로 감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럼 앞으로 윤석열정부 인사들과 관련해서도 ‘제보’와 ‘언론 보도’만 있으면 똑같이 초스피드로, 검찰의 특수부 격인 특별조사국을 투입해 감사할 것인지 묻고 싶다.

국민 사이에선 검찰 경찰 등 현 정부 사정기관들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검찰 출신 대통령에, 최근에는 행정안전부에 경찰을 관할하는 기구까지 생겼다. 야당을 제외하곤 감사원이 그나마 대통령실과 행정부를 견제할 만한 사실상 유일한 조직이다. 역대 어느 때보다 감사원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위상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감사원을 둘러싼 중립성 시비는 그런 위상이나 국민의 기대와는 퍽 거리가 먼 듯하다.

감사원 직원 명함에는 암행어사의 상징인 마패가 그려져 있다. 세상의 부정부패를 일소해 정의를 세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는 자부심에서일 것이다. 그 정의 세우기를 더 온전히 하기 위해 독립성,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 테다. 감사원이 특정 세력을 쳐내는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비에서 속히 벗어나 행정부를 감시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바란다.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현 구성원들은 감사원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는 이들로 기록될 것이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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