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너의 공정, 나의 공정

강준구 2022. 8. 1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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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세대 차이를 넘어서 나 몰래 문화적 국경선이라도 그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우는 아기도 안 달래는 맘충(mom+蟲)" "애 우는 거 싫으면 일등석이나 타라"처럼 이견을 보인 상대에게 비아냥이 쏟아진다.

단순한 법적 판단이나 직역·나이 같은 일시적 지위에 매몰된 주장은 공정한 게 아니다.

사회적 합의, 도덕적 기준, 배려, 관용 같은 가치 속에서 합리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공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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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구 사회2부 차장


이쯤 되면 세대 차이를 넘어서 나 몰래 문화적 국경선이라도 그어진 게 아닌가 싶다. 2010년 광복절 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새로운 국정 운영 철학으로 내놓은 뒤 모든 대통령이 이를 주요 국정 기조로 삼았다. 그런데 공정의 의미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누구에겐 공정한 법적 판단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이 밖에 기회, 과정, 평가, 분배, 수익에 이르기까지 한 이슈를 두고 너무 다른 생각들이 공정의 틀 안에서 치고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판단 기준이 단기간에 어떻게 이렇게 크게 달라졌는지, 이로 인해 생각이 다른 이들을 벌레나 적폐로 비난하며 몰아붙이는 지경까지 갔는지 낙담하곤 한다.

지난주 폭우로 반지하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 이웃들의 구조 작업마저 반지하의 방범용 창살에 막히고 말았다. 낮은 창문을 통한 외부인 침입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최후에 일가족의 안전을 가로막은 비극이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반지하 대책’을 두고 이견을 드러냈을 때 짜증부터 났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오 시장은 반지하 거주민의 주거 상향을, 원 장관은 저렴한 거주비에 방점을 찍으며 상이한 대응을 예고했다. 반지하 재난 피해를 막는 방법은 자연소멸로 귀결된다. 수도권에만 몰려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고려해 점진적으로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주거를 상향시키고, 이사를 독려할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낮은 주거비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살아있을 때 얘기다. 기후 위기 속 이번 같은 폭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다행히 지난 16일 서울시와 국토부가 협력 강화 의지를 밝히면서 정책 엇박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인터넷에선 엉뚱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뜩이나 서울에 집 구하기 어려운데 왜 이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느냐는 불만이다. 이건 공정의 가치에 위반되며,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청년 주택, 신혼부부 주택, 장애인 지원 주택과 각종 1인 가구 지원 방안 등 주거 약자를 위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주거 약자에 대한 복지를 분배의 공정 또는 이재(理財)의 논리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최근 1시간짜리 김포~제주 노선 비행기 안에서 술 취한 남성이 우는 아기의 부모에게 막말한 사건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아기가 우는 일은 한두 번도 아니어서 대체로 우리는 부모가 주변에 사과하며 열심히 달래면 눈감아주는 편이다. 음주 막말 남성은 항공기 안전에 위협을 끼친 만큼 상응하는 형사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런데 “우는 아기도 안 달래는 맘충(mom+蟲)” “애 우는 거 싫으면 일등석이나 타라”처럼 이견을 보인 상대에게 비아냥이 쏟아진다. 각자의 정의에 과몰입해 독설을 배설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런 현상은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직장 내 갈등 같은 주요 이슈로 확대된 지 오래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 등엔 이슈마다 자기만의 주장을 앞세운 광포한 표현들이 연일 등장한다.

공평하고 올바른 걸 공정(公正)이라 한다. 올바름은 ‘옳고 바르다’는 의미고, ‘바르다’는 ‘말과 행동이 규범과 사리에 어긋나지 않음’을 뜻한다. 단순한 법적 판단이나 직역·나이 같은 일시적 지위에 매몰된 주장은 공정한 게 아니다. 사회적 합의, 도덕적 기준, 배려, 관용 같은 가치 속에서 합리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공정일 것이다. 사회적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오랜 기간 지켜온 사회적 규범이 의미를 잃고 있다. 법으로만 세상만사의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시대가 안타까울 뿐이다.

강준구 사회2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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