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포뮬러E, 무공해의 질주

정제원 2022. 8. 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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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 스포츠디렉터

‘F1, 본능의 질주’는 세계 최고 드라이버들의 경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전 세계 5대륙을 오가며 시속 320㎞가 넘는 빠른 속도로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 드라이버들의 애환을 담았다. 이들은 전투기 조종사와 같은 정신력으로 질주를 거듭한다. 그러면서도 늘 무사히 레이스를 마치기만을 기도한다. 드라이버가 두려움을 느끼면 은퇴할 때가 된 것이라는 말에 F1의 정신이 녹아있다. 그래서 그들은 포뮬러1(F1)이야말로 최고의 대회라고 말한다. 역대 최고의 드라이버로 꼽히는 ‘황제’ 미하엘 슈마허는 골프의 타이거 우즈나 메이저리그의 강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보다 많은 8000만 달러(약 1051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그런데 포뮬러1은 우리에겐 아픔으로 남아있다. 적어도 한국의 모터스포츠 팬들에겐 트라우마나 다름없다. 2010년 전남 영암에서 열린 ‘포뮬러1 코리아 그랑프리’.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히는 F1을 국내 유치했지만, 결과는 대참사였다. 흥행은 실패, 남은 건 빚뿐이었다. 여기에 보너스로 세계적인 망신을 당했다.

「 전기차 레이스 서울 대회 성공
12년 전 영암 F1 트라우마 극복
한국 기업들 진출도 늘어날 듯

잠실벌에서 열린 포뮬러E 챔피언십. 2014년 베이징 대회 이후 100번째 레이스다. [연합뉴스]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시설인 서킷을 개막 2주 전까지도 완공하지 못했다. 슈마허와 루이스 해밀턴, 페르난도 알론소 등 포뮬러1의 레전드들은 굳지도 않은 아스팔트 위에서 시험 주행을 했다. 주변 인프라는 ‘제로(0)’에 가까웠다. F1 관계자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렸는데 숙박시설이 모자라 애를 먹었다. F1 관계자들이 투숙한 모텔에선 낮 시간에 버젓이 대실 영업을 했다. 모텔 방안에 놓아둔 물건이 (대실 영업을 한 탓에)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더라는 코미디 같은 사연이 해외 토픽으로 전 세계에 전해졌다.

전남도가 F1을 개최에 쏟아부은 돈은 천문학적이었다. 5조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기대한다고 애드벌룬을 띄우면서 무려 4285억원을 들여 서킷을 건설했다. 대회 운영비까지 합치면 적자는 배 가까이 늘어났다. 전남도는 국제자동차연맹(FIA)과 7년 계약을 맺었지만, 약속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3년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림픽에 버금가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면밀한 사전 조사도 없이 성급한 의욕만 가지고 주최했다가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이다. 지금도 영암에 가면 덩그러니 서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눈에 띈다. 말 그대로 ‘하얀 코끼리’의 전형이다. 여기까지가 F1 코리아 그랑프리의 흑역사다.

2022년 8월 서울 잠실벌에선 다시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렸다. 지난 13~14일 열린 ‘포뮬러E 월드 챔피언십 서울 E-프리(E-PRIX)’. FIA가 주관하는 공식 대회인 건 똑같은데 10여년 전과 다른 건 ‘포뮬러1’이 아니라 ‘포뮬러E’라는 점이었다. 화석 연료를 태워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머신’이 아닌 배터리를 이용하는 전기 자동차 레이스다. 장소도 서울로 바뀌었다. 지자체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대회라는 점도 달랐다.

포뮬러E가 2010년의 전철을 밟는 건 아닐까. 많은 우려 속에 대회가 열렸다. 시속 280㎞ 속도로 도심을 질주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부우웅’ 하는 엔진 소리 대신에 ‘슉’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전기 자동차의 질주는 조용하지만, 강렬했다.

결과적으로 포뮬러E 챔피언십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냈고, 10여년 전 F1의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숙박 시설도 충분했고, 도심 아스팔트에서 질주하기에 새로운 트랙을 건설하느라 막대한 예산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포뮬러E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미래다.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닛산, 재규어 등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무공해와 탄소 중립을 표방하면서 하이테크 경쟁을 벌인다. 머잖아 포뮬러E가 F1을 대체하는 모터스포츠의 꽃이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무공해와 친환경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조류다. 내년부터는 시속 320㎞로 달리는 3세대 레이스카가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F1에 버금가는 레이스를 펼치게 된다.

전기 자동차 경주, 포뮬러E는 2014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작했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포뮬러E가 ‘세계의 굴뚝’으로 불리는 중국의 안방에서 1회 대회를 연 건 상징적 의미가 있다. 내년부터는 포뮬러E에 한국의 타이어 기업이 참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국 기업의 로고를 단 레이스카를 볼 날이 머지않았다.

정제원 스포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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